제12회 서울변방연극제<도시기계…> 등 현시점 도시 공간에서의 이슈와 삶의 실존 진지하게 탐구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는 듯했다. 그리고는 말을 하기 시작한다. "우리 집이 사라졌습니다. 꿈이기를 바랐습니다. (하략)" 서울변방연극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된 <모는 집으로 가는 길을 모른다>(무브먼트 당-당, 연출 김민정)는 갑작스럽게 집을 잃은 남자가 집을 찾아 헤매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올해로 12번째 개막한 서울변방연극제의 변화는 개발을 목적으로 원주민의 살 곳을 빼앗아 가는, 우리 사회의 민감하고 골치 아픈 문제들을 무대 위로 끌어낸 이 개막작에서부터 읽힌다. 10~30분 정도의 실험적 형식이 돋보였던 이전의 개막작품과 달리 동시대의 문제에 대해 1시간 30분의 긴 호흡으로 탐구하듯 살펴보고 있다는 점이다.
변방연극제는 <도시기계: 요술환등과 산책자의 영리한 모험(Urban Machine : Clever adventure of Phantasmagoria and Flaneur)>을 올해의 테마로 잡았다. 급격히 산업화, 자본화되었던 19세기부터 20세기 사이, 파리에 살던 많은 예술가들은 변화하는 도시와 공간을 예리하고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산업화된 도시를 일컫는 '도시-기계' 속에서 수동적인 '부품'이 되지 않기 위해서 그들이 선택한 것은 도시를 어슬렁거리며 관찰하는 산책자(flaneur)의 역할이었다. 변방연극제에 모인 연출자들 역시 동시대에 대한 사유의 끈을 놓지 않는 산책자가 되어 공연예술을 통해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통찰하고 있다.
남산 일대의 터널, 도로, 성당, 쇼핑센터, 가정집, 그리고 사무실은 과거 누가 살다 갔으며 무엇이 사라졌을까. 남산 삼일로 창고극장을 주 무대로 남산 일대를 사운드로서 재구성하는 작품은 Collective ps(연출 김진주)의 <리스닝컴퍼니 : 남산에서의 분쟁제기>이다.
사운드 맵 프로젝트라 불리는 이것은 명동과 남산 일대 주변의 숨겨진 이야기, 발굴한 이야기가 이곳을 돌아다니는 관객들에게 헤드폰을 통해 전해진다. 눈에 보이는 것이 현재라면, 헤드폰 속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는 과거인 동시에 현재의 시점이다.
오복동이라고 하는 가상공간으로 관광을 떠나며 관객과 유토피아의 현실 가능성을 타진해보는 <오복동 행복관광>, 전쟁을 화두로, 잊혀지는 감각을 이야기하는 <의붓기억-억압된 것의 귀환>, 말해지고 보여지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이야기하는 <햄릿머신-prototype> 그리고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에 대한 치열한 탐구와 사유의 과정을 그린
사회적 메시지를 강하게 담고 있으면서도 이들은 공연 공간의 확장, 다큐멘터리 렉처-연극, 듣기 투어, 복합장르, 공연 현장에서 연출가의 사건 개입 등 이전 변방연극제가 담고 있던 실험성과 공연의 미학성 역시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 1999년, 기존의 희곡을 바탕으로 한 천편일률적인 연극으로부터의 탈피를 표방하며 등장했던 서울변방연극제. 이제는 변방이 변두리가 아니라 예술의 최전방으로, 혁신과 실험, 미학을 담보하며 동시대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고민들까지도 포용하고 있다.
지난 9월 2일에 개막해 이달 19일까지 계속되는 서울변방연극제는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명동 삼일로 창고극장, 문래예술공장, 명동과 남산 일대 (남산 2호 터널 부근), 당인리 서울화력발전소 앞 Anthracite coffee roasters (카페 무연탄), 서울연극센터, 책방 이음 등에서 장소를 옮겨가며 공연된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