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컴퓨터음악제 2010악기, 컴퓨터음향, 영상 등 충돌하고 조화… 전자음악의 실험과 시도들 솟구쳐
무대 위에 보이는 수많은 전선들, 그곳엔 노트북이나 조이스틱이 놓이기도 한다. 무대 전면을 차지하는 것은 연주자나 퍼포머이기도 하지만 스크린일 때도 있다.
마치 기계의 속살을 보는 듯한 이곳은 음악과 테크놀로지가 조우하는 서울국제컴퓨터음악제 현장이다. 여느 해보다 두 달 앞당겨진 9월 2일부터 5일까지 나흘 동안 열린 서울국제컴퓨터음악제는 올해로 열일곱 해를 맞았다.
1994년에 시작해 초기에는 해외의 작곡가들에게 위촉한 곡을 연주하는 방식을 취했던 음악제는 이후 곡을 공모하고 해외의 유명 작곡가들이 내한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해마다 이루어지는 공모에는 꾸준히 전 세계 17개국에서 200여 편을 보내온다. 아시아는 물론, 유럽, 미국, 남미까지 아우른다.
불과 2년 전에 생긴 베이징컴퓨터음악제 관계자들이 벤치마킹을 해갈 정도로 아시아에서 독보적인 역사를 가진 서울국제컴퓨터음악제. 공모를 통해 3년 내에 작곡된 곡만을 받고 있어 세계 전자음악의 조류를 빠르게 반영한다는 점도 이 음악제만의 특징이다.
일본의 니조성과 같은 성이나 절에서 볼 수 있는 나이팅게일 마루는 사람들이 걸을 때마다 새소리가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외부인의 침입을 막기 위해 쓰인 이것은 캐나다 출신의 작곡가 데이비드 베레잔에게 영감을 주었다. 나이팅게일 마루는 일본의 과거와 현재의 여러 목소리에 대한 탐구로 이어져 '니조'란 곡으로 태어났다.
이 곡은 테이프 음악으로, 스피커로 소리만 재생된다. 전자음악의 적지 않은 곡들이 테이프 음악의 형식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무대로 분산되는 시선을 거두고 음악 자체에 집중하게 하는 미학이 숨어있다. 무대와 객석 곳곳에 스피커를 놓아두어 공간을 소리에 활용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비디오 화면을 하나의 악기로 사용하는 일본의 치카시 미야마는 이미지와 사운드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연주를 하기도 했고,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시시포스'를 테마로 작곡가 프랜시스 도몽과 조형예술가 이네스 비그만의 오디오 비주얼 콜라보레이션 작업도 눈길을 끌었다.
선정이 아닌 초청 연주단체 중에는 유럽에서 가장 유서 깊은 현대음악 전문 앙상블 아방튀르(Aventure)가 내한했다. 15인의 멤버 중 플루트, 클라리넷, 트롬본(튜바) 연주자 세 명이 내한해 전자음악의 거장인 이탈리아 작곡가 루이지 노노의 작품을 연주하기도 했다.
전자음악을 하는 작곡가 중에는 클래식 공연장에서 열리는 현대음악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그 관객층은 현저히 차이가 난다. 오디오 비주얼 작품이나 무용이나 미술과의 협업이 이루어지는 무대 덕에 음악이 낯설어도 음악제를 꾸준히 찾는 이들이 적지 않아, 3층까지 열어놓는 자유소극장의 객석은 대학생이나 젊은 층 관객들로 가득 찬다.
"관객들을 보면 어떤 분들일까 나 역시도 궁금할 때가 많다. 의외로 컴퓨터 음악을 대중적인 음악이라고 생각하고 오는 분들도 있다. 종종 당혹해하는 이들을 보기도 하지만 일반 현대음악과 다른 메커니즘을 보면서 재미있어하는 분들도 많다."(문성준)
아직은 대중적이기 어려운 공연이지만 관객들이 흥미롭게 볼 수 있도록 영상이나 콜라보레이션 작품을 한 편 이상 분배하는 서울컴퓨터음악제는 세계의 유명 작곡가들도 한 번쯤 오고 싶어하는 음악제로 성장해가고 있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