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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드라마 아기 관객에 손짓하다

베이비드라마 국제 심포지엄 열려, 예술적 역할·필요성·문화전승 대안 등 논의
  • 베이비드라마 '라움스(Rawums)'
어린이들이 아니라 '아기'에 가까운 어린 관객들이 엄마의 손을 잡고 공연장에 들어온다. 공연장은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는데다, 공연의 진행과 관계 없이 이 어린 관객들은 눕기도 하고 떠들기도 하며 편안한 관람을 즐긴다. "애 좀 조용히 시키세요" 같은 뒷자리의 불만 가득한 항의는 찾아볼 수 없다.

지난 5월 극단 민들레는 국내 최초로 이 같은 '베이비드라마' <꽃사랑>을 선보였다. '베이비드라마'란 3세 이하의 영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연극. 말 그대로 기저귀를 차고 고무 젖꼭지를 문 아기들이 보는 공연이다.

유럽에서 새롭게 출현해 공연계에 자리잡고 있는 베이비드라마는 그동안 세계 아동청소년극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루어왔다. 특히 지난 10년간 그 활동은 세계 곳곳의 모든 문화권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이에 국내에서도 베이비드라마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얼마 전 극단 사다리와 의정부 예술의 전당이 주최하고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한국본부(ASSITEJ Korea)가 주관한 '베이비드라마 페스타(BabyDrama Festa)'가 그것이다. 이 행사에서는 베이비드라마를 국내에 소개하고 학술적으로 접근하기 위한 국제심포지엄을 열고, 워크숍과 해외초청공연을 통해 베이비드라마를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달 28일 의정부 예술의 전당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국제심포지엄은 '베이비드라마, 연극으로서의 가능성과 한계'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이날 행사에는 캑스 허버거 아동예술센터 아트워크의 관장인 미국의 로저 버다드(Roger Bedard)를 비롯해, 스웨덴을 포함해 전 세계의 아동청소년극을 격상시킨 극단 웅가 클라라(Unga Klara)의 예술감독 수잔 오스틴(Suzanne Osten) 등 세계 곳곳의 전문가들이 참여해 발제와 토론을 벌였다.

  • 공연이 끝난 후 무대에 올라가 소품들을 만지며 체험하는 관객들
로저 버다드는 '베이비드라마의 복잡한 협상과정'을 주제로 발표에 나서 '베이비드라마의 예술적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는 그동안 아기를 바라보는 문화적 관점은 '가장 원초적 수준으로 느끼고 생각하고 인지하는 생명체'에서 변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이 같은 인식은 연극의 예술성에 어떠한 기여도 하지 않는다"라고 비판했다.

이어서 그는 뉴욕타임즈에 실린 예일대 폴 블룸(Paul Bloom) 심리학과 교수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아기는 더 이상 어른에 비해 부적절한 관객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그는 "성인인 우리가 무언가 공감할 수 있는 이슈를 보기 위해 연극을 찾는 것처럼, 아기를 포함한 어린이들도 마찬가지"라며 베이비드라마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수잔 오스틴은 자신의 실제 경험과 인터뷰 기록을 통해 아기들의 공연 인지 능력을 증명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것(The main thing)>이라는 작품의 공연을 사례로 거론하며 공연이 끝난 후 가진 인터뷰를 통해 아기 관객들 역시 연극의 진가를 알아보는 본능이 있다는 점을 설파했다.

도쿄시립대학 아동학과의 고바야시 유리코 교수는 '아기에게 베이비드라마가 필요한 이유'를 발표하며 베이비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친밀감'과 '즉흥성'이라고 분석했다. 고바야시 교수는 "베이비드라마는 아기들이 숫자나 언어교육을 받는 것처럼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더 잘 놀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며 "이는 아기뿐만 아니라 아기의 부모에게도 부모로서의 즐거움을 발견하게 해주는 유익한 기회가 된다"고 해석했다.

한편 베이비드라마를 실제로 제작하며 관련 워크숍을 개최하고 있는 이탈리아의 연출가 겸 극작가 로베르토 프라베티(Roberto Frabetti)는 베이비드라마를 만들 때의 필수조건들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최근 부상하고 있는 베이비드라마에 대한 관심을 반기면서도 그것이 단순히 유행에 그치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베이비드라마는 단순히 새로운 장르가 아니라 아주 세심하게 다루어져야 할 장르"라고 말하며 "깊은 통찰력으로 다뤄지지 않으면 그저 피상적인 경험으로 끝이 날 수도 있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 수잔 오스틴의 워크숍 중 '어린 시절 상상하기'
하지만 이날 가장 많은 관심이 쏠린 것은 최영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 교수, 극작가 고순덕, 드라마테라피스트 장은주로 이뤄진 한국 리서치 팀의 발표였다. 리서치 팀은 '지나치게 서양 문화의 세례를 많이 받는 점', '막강한 에듀테인먼트에 침식당하는 점', '공동체적 놀이 문화의 쇠퇴', '성장을 재촉하는 상업문화의 만연' 등의 이유로 한국의 영유아들은 문화적으로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진단했다.

이들은 "우리 문화에 대한 고민만 있다면, 여러 부분에서 문화 단절을 회복할 수 있는 지점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하며 "소리의 음악성, 이야기의 문학성, 움직임, 미술적 요소가 강한 소품 등 모든 예술적 요소들을 갖추고 있는 베이비드라마가 이런 위기의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리서치팀은 또 베이비드라마가 지금의 부모 세대가 해주지 못하는 문화 전승의 대안 가능성도 점쳤다.

심포지엄 다음날 열린 공연 <라움스(Rawums)>는 이런 베이비드라마의 가능성을 더욱 높여주었다. 공연은 아기 관객의 눈높이에 맞게 사다리와 의자, 낚싯대, 풍선 등의 소품으로 전개됐다. 아기 관객들은 무대 위 배우들의 간단한 연기와 몸짓만으로도 높은 관심도를 보여줬다. 쉴새없이 터져나오는 '까르르-' 하는 객석의 웃음은 이미 그 자체로 좋은 예술교육이라는 점을 입증하고 있었다.

  • '베이비 페스타' 국제심포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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