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구 조각전7년 만에 국내전, 절정의 모델링 성숙한 조형 선봬

김선구 작가가 세종문화회관 광장에 설치된 작품 'Full of energy'(400x120x200(H)cm, bronze)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바람을 가르며 질주하는 말, 금방이라도 돌진해올 듯한 소, 대지를 향해 치켜든 날 선 도구, 그리고 인간을 이고 어디론가 향하는 거대하고 생생한 손들.

이들 형상의 조각을 마주하면 온 몸으로 다가오는 속도감과 힘, 베일 듯한 날카로움에 자연스레 움찔하게 된다. 그러나 한 걸음 물러나 평상심으로 찬찬히 바라보면 조각에서 전해오는 '기운'이 기분을 돋우고 경쾌하고, 일견 코믹한 역동성은 잔잔한 미소를 짓게 한다.

조각가 김선구의 작품이 지닌 특색이자 힘이다. 이를 확인하고 감상할 수 있는 김 작가의 조각전이 15일,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렸다. 주로 중국과 국제무대에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가 7년 만에 갖는 정식 국내전이다. 이번 전시는 시민들과 함께하는 조각전으로 (재)세종문화회관 후원으로 세종문화회관 본관 광장에 대형작품 4점이 설치되는 등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전시 작품들은 말이나 소, 사람 등 인체와 동물이라는 평범한 소재를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작가 특유의 독창성과 치밀한 구성의 조형미로 조각의 진수를 보여준다. 이러한 김선구 조각의 독특한 모델링 양식은 이미 정평이 나있다.

김 작가는 홍익대 대학원을 졸업하던 1986년부터 스승인 최기원 교수를 사사하며 각종 조각공모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988년 미술대전 특선, 이듬해 서울 현대조각공모전과 1992년 '오늘의 한국미술전' 대상을 수상하며 일찍이 그 재능을 인정받았다.

'질주ⅡS', 60x30x50(H)cm, bronze
특히 1995년 일본 이와테현 경마 조합회에서 공모한 '국제말조각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으며 조각가로서 그 역량을 세계에 널리 알리게 됐다. 당시 공모전에는 1억5000만원이라는 거액의 상금이 내걸려 세계 각국에서 쟁쟁한 작가들이 참여해 160여점이 경합했는데 김 작가는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대상을 받았다. 당시 심사위원장인 도쿄현대미술관장은 "김선구의 작품은 그 어떤 미술사조에도 속하지 않은 유일하고 독창적인 작품"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이후 2003년 선화랑 전시로 새로운 작품세계를 보인 김 작가는 이듬해 베이징, 2005년 상하이, 독일 쾰른 아트페어에서 출품작이 모두 매진되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2005년 상하이 야외조각비엔날레에서는 정부 기관인 상하이문화발전기금회에서 작품을 모두 구입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 조각계의 100대 대가를 뽑는 '중국조소 100가 연전'과 마카오 시각예술 페스티발에서 외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김 작가의 이번 국내전에는 그간의 축적된 경륜과 여전한 독창미가 응축돼 있다. 작품 대상인 인체나 동물의 경우 해부학적으로 분해된 것과 같은 골격과 근육의 모습은 색다르다 못해 이질적이다. 대게 인체를 골격이나 근육 상태로만 표현하면 친숙하고 정감 있게 접근하기 어려운데 김 작가의 조각은 절묘한 구성과 독특한 표현형식이 의외의 신선함과 묘미를 준다.

해부학적 토대 위에 근육의 매스들을 부드러운 선으로 연결, 변형을 가한 골격과 근육은 놀라운 생명력과 약동감을 발산하다. 또한 해부학적인 신체구조를 작가 특유의 입체적인 각면 처리를 한 각면(角面) 양식은 역동적인 포즈와 맞물려 용솟음치는 에너지를 분출한다. 최근에는 부드러운 선과 입체, 각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조각들로 새로운 세계를 열고 있다.

2003년 선화랑 전시 때 '질주', '활', '손' 등의 작품이 보여준 참신한 역동성과 에너지는 이번 전시에서 '질주ⅡS', '거인', 'Walking hand S' 등의 작품을 통해 그대로 발현되며 한층 세련되고 여유로운 힘을 느끼게 한다.

'개척자(開拓者)', 80x50x110(H)cm, bronze
소를 형상화한 대작 'Full of energy'는 작품명처럼 곳곳의 거친 표면들이 살을 뚫고 나올 듯한 에너지를 상기시키고, 또 다른 작품 'Bull(황소)'은 이중섭의 '소' 이미지가 오버랩되며 삶의 강렬하고 도전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조각에 깊이가 더해진 변화도 신선하다. 조각을 하는 노동과 연계된 치열한 삶과 김 작가의 내면이 투영된 작품들이다.

그는 경기도 김포 작업실에서 직장인처럼 하루 일정한 시간을 작업한다. 전시나 아트페어를 앞두고는 철야도 부지기수다. "몸이 작업을 지배해야지, 일한테 지면 작품도 끝장입니다."

그의 삶을 닮은 'Walking hand S', 'Morning', 'Night', '개척자' 등에는 작가의 신성한 노동과 영혼이 배어있다. 그리스신화 속 시지프스를 연상시키는 '바위' 는 인간의 고단한 삶과 더불어 조각을 향한 작가의 불굴의 의지가 엿보인다.

이번 조각전에는 부르델의 '활 쏘는 헤라클레스'를 떠올리게 하는 '거인'을 비롯, 'Flying Ⅱ', 'Start' 등 생동감이 충만한 작품이 다수이지만 'Rain', 'wind' 같은 로맨틱한 작품도 빛을 발해 다양한 신작을 감상할 수 있다.

'Walking hand S', 70x40x68(H)cm, bronze
이재언 미술평론가는 "요즘 '조각다운 조각을 하는 작가'가 날로 줄어들고 있는 국내 조각계 현실에서 김선구 작가는 탄탄한 기본기와 고전적 해석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조각세계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했다.

모처럼 조각다운 조각을 감상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10월 8일까지. 02)734-0458


'기상 S', 80x35x80(H)cm, bron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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