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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문화 르네상스의 진수

<거화추실(去華趨實)> 전
'풍계임류' 등 진귀한 옛 그림과 명품 도자기 100여 점 선보여
  • 겸재 정선 '풍계임류(風溪臨流)'
서울 인사동에 모처럼 고미술의 진수를 감상할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복합문화공간 공아트스페이스에서 지난달 29일부터 열리고 있는 <거화추실(去華趨實)>전이다.

지난 40여 년 인사동 터줏대감 노릇을 해온 고미술 전문 공화랑이 인근으로 이전 개관한 것을 기념해 열리는 특별전으로 진귀한 옛그림과 명품 도자기 등 100여 점을 선보인다.

'거화추실'은 화려함과 겉꾸밈을 버리고 실질, 즉 알맹이로 나아간다는 뜻으로 공아트스페이스가 지향하는 가치이자 우리 예술에 있어서도 내실을 추구한다는 의미이다.

그에 걸맞게 이번 전시작들은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거나 도록으로만 알려져온 명작이 여럿이고 미술사적 가치와 예술성을 겸비한 작품들로 꾸며졌다. 공아트스페이스 공창호 대표는 "고미술 인생에서 열정을 바쳤던 귀중한 작품들을 국내외에서 모아 마련했다"고 밝혔다.

전시작은 조선 문화의 르네상스기라 불리는 17~19세기 영·정조 시대의 것이 대부분이다. 이는 공화랑이 지난 4월 연 <문심(文心)과 문정(文情)전>이 문기(文氣) 넘치는 '선비 그림'에 초점을 둔 것이나 지난해 6월 <안목(眼目)과 안복(眼福)전>이 명품 위주로 전시한 것과도 비교된다.

  • '백자청화산수문호형주자(白磁靑畵山水文弧形注子)', 18세기
거화취실을 대변하는 작품으로 우선 겸재 정선(1676~1759)의 '풍계임류(風溪臨流)'를 꼽을 수 있다. 조선의 선비들이 지금의 인왕산 계곡을 산행한 후 시내에서 땀을 씻는 모습을 담은 그림으로 정선이 즐겨 사용하던 미점(米點)이 두드러지고 농묵을 능숙하게 사용해 푸른빛이 감도는 심산유곡이 압권이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풍류를 느낄 수 있는 이 그림은 정선이 작품에 등장하는 보기 드문 수작이다.

단원 김홍도(1745~?)의 '고사관해(高士觀海)'는 기암절벽에 걸터앉은 고사가 광활한 바다 멀리 수평선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 흔치 않은 소재의 선택이 독특하다. 당나귀를 몰고 고사에게로 향하는 시동의 모습이 시선을 끌고 수묵 위주의 묵법에 전반적으로 담청의 맑은 담채를 가하여 산뜻한 느낌을 준다.

호생관 최북(1712~1760)의 '헐성루망금강도(歇煋樓望金剛圖)'는 금강산 만폭동 계곡의 금강대, 향로봉, 비로봉 등 빼어난 주봉들을 한 눈에 볼 수 있고, '연강귀주도(煙江歸舟圖)'는 강가의 풍경을 그린 것으로, 조선 후기 화가들이 먹의 운용에 집중한 미법산수의 전형을 보여 준다. 눈을 치우는 그림 '설청도(雪淸圖)'는 세심한 구성과 호방한 필치가 조화를 이뤄 소박하고 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국보 제240호 '자화상'으로 유명한 공재 윤두서(1668~1715)의 '호랑이(虎圖)'는 바람에 휘날리는 나무 아래 용맹한 호랑이 한 마리가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그림으로 굳게 다문 입과 무언가를 응시하는 눈, 털 한 올 한 올을 세밀하게 그려 윤두서 특유의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풍속화로 화명이 높았던 긍재 김득신(1754~1822)이 노새를 타고 좁은 다리를 건너는 선비일행을 묘사한 '과교도(過橋圖)', 아버지인 단원 김홍도의 영향이 짙게 묻어나는 긍원 김양기(생몰 미상)의 '고사인물도(高士人物圖)', 중국 한나라 때의 미인 왕소군을 그린 인물화에 강세황이 화평을 쓴 담졸 강희언의 '소군출세(昭君出塞)' 등도 눈길을 끈다.

  • 백자진사포도문팔각병(白磁辰砂葡萄文八角甁)', 18세기
대원군 이하응이 청나라 유배기간 중 위안스카이(袁世凱)에게 그려준 것을 다시 정군(鄭君)이라는 주한 일본대사관 서기관에게 전달된 '석란도(石蘭圖)'는 우리 근대사의 일면을 엿보게 한다.

이번 전시의 특징 중 하나는 출품된 도자기, 연적, 벼루 등이 서화(書畵)와 관련돼 있다는 점이다. 18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백자청화산수문호형주자(白磁靑畵山水文弧形注子)'는 형태나 양식이 국내에 드문 도자기로, 몸통의 양면에 산수문이 그려져 있고 각 면마다 당나라 시인 장계의 시구가 들어 있다.

18세기 전반의 것으로 보이는 '백자청화산수문호(白磁靑畵山水文壺)'는 능화형(마름모꼴) 창을 두고 그 안에 산수풍경을 그려 넣었다. 길쭉하고 잘록한 목에 풍만한 몸체를 가진 팔각병 형태의 '백자진사포도문팔각병(白磁辰砂葡萄文八角甁)'은 몸체에 포도덩쿨과 포도송이가 리드미컬한 필치로 그려져 있다.

학과 사슴 등이 그려진 '백자양각청화진사장생문필동(白磁陽刻靑畵辰砂長生文筆筒)과 양각, 음각, 투각을 모두 사용해 정교하게 용을 조각한 '백자청화용문투각필통(白磁靑畵龍文透刻筆筒)'은 19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종래 볼 수 없었던 명작들이다.

그밖에 제작 연대가 명기된 백자 벼루는 조선 사대부들이 사용했던 벼루의 양상을 살펴볼 수 있고, 받침대가 없는 '백자청화모란문호(白磁靑畵牧丹文壺)'는 궁에서 사용된 것으로 조형성이 뛰어나다.

  • 공재 윤두서의 '호랑이(虎圖)'
'대교약졸(大巧若拙)'이란 말이 있다. 가장 큰 기교는 아무런 꾸밈을 나타내지 않는 데서 비로소 성취된다는 뜻으로 <거화추실>전은 우리네 예술뿐 아니라 우리의 삶도 그러해야 한다는 울림을 준다. 10월 22일까지 전시. 02)735-9938

  • 단원 김홍도의 '고사관해(高士觀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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