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세계소리축제>, <아시아·태평양음악 국제학술회의> 세계화 모색

국악의 '대중화' 운동에 힘입어 이제 국악은 생활 곳곳에서 만날 수 있게 됐다. 초등학교의 음악 교과서에는 국악이 양악 못지않은 비중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출근길 지하철 환승역에서는 경쾌한 국악 선율이 울려 퍼진다. TV의 음악 프로그램에서는 국악 그룹이 등장해 대중가요가 지배하는 가요계에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는다.

'생활화'를 지향했던 국악이 다음으로 노리고 있는 것은 '세계화'다. 최근 전주세계소리축제와 국립부산국악원에서는 국악의 세계화를 표방하는 행사들을 잇따라 주최했다. 그동안 퓨전국악이나 창작판소리 같은 새로운 양식의 실험들을 선보인 국악은 이제 어떤 방식으로 세계와 소통하며 공명할까.

창작 원년 선포, 세계 보편의 소리를 고민하다

최근 판소리는 뮤지컬 <서편제>를 통해 다시 대중 관객의 품으로 돌아왔다. 영화 <서편제> 이후 오랜만의 귀환이다. 하지만 우리 소리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아직도 <서편제>의 정서에 머물러 있는 만큼, 국악계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전주세계소리축제 개막공연 '천년의 사랑여행'
10월의 첫 날을 연 전주세계소리축제의 고민도 비슷하다. '세계축제'를 표방하는 만큼 전주세계소리축제의 관건은 다시 '우리 소리의 세계화'다. 어떻게 해야 우리 소리의 진정한 매력을 효과적으로 세계에 알릴 수 있을까. 신종플루로 지난해 행사를 치르지 못한 전주세계소리축제의 고민은 2년째 쌓였다.

5년 동안 행사를 이끌던 안숙선 명창의 뒤를 이어 축제를 맡은 김명곤 조직위원장은 그런 고민 끝에 축제의 이곳저곳에서 대대적인 변혁을 시도했다. 특히 그는 올해 소리축제만의 고유한 기획을 바탕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소리의 원형과 이를 재해석한 다양한 기획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개막작인 <천년의 사랑여행>은 김 조직위원장의 야심이 그대로 드러난 공연이다. 그가 직접 기획하고 대본을 쓰며 총감독한 이 작품은 산유화가, 서해안 용왕굿, 정읍사가 등 옛 백제가요와 신비로운 해외 전통가무악을 조화시켰다. 국악관현악과 심포니오케스트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단의 연주와 합창이 어우러져 완성시킨 우리만의 뮤지컬이라고 할 수 있다.

축제 측은 매년 새로운 창작 작품을 기획·제작해 브랜드화하고, 소리축제만의 창작 기반을 세울 예정이다. 축제 관계자는 "서양 뮤지컬의 전통과 역사성을 부러워하기보다는, 노하우를 축적하면서 세계적인 문화상품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판소리 담론도 이번 축제부터 그 존재 고민의 결과를 내놓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판소리는 전통의 다섯 마당만 '정통'으로 인정받았다. 때문에 최근 젊은 국악인들을 중심으로 다섯 마당 외에서 벌어지는 소리들은 일종의 변종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하지만 혼종과 해체의 시대를 맞아 옛 틀 안에만 머물러 있는 소리는 점점 관객과 멀어져 왔다.

소리 오작교 - 첫째 마당
이번 축제에서 처음 기획되어 선보인 '소리 오작교(五作交)'는 판소리가 가진 고민에 대한 해법 중 하나다. 판소리가 문학과 록(Rock), 영상, 미술 등 다른 장르와 결합돼 새로운 예술을 탄생시킨 것이다.

작고한 명창 임방울 선생이 생전에 부른 호남가를 2D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는가 하면, 판소리 다섯 마당 중 하나를 선택해 '사운드 페인팅'을 시도하는 전시 기획도 있다. 5명의 소리꾼과 함께하는 5팀의 또 다른 예술가들은 전통 판소리의 맥을 잇는 한편, 미래의 우리 소리를 만들어가는 과감한 실험을 선사한다.

창작판소리에 대한 조명은 이번 축제가 지향하는 바를 잘 드러내준다. 임진택과 이자람의 '창작판소리 초대전'이 그것이다. 새로운 판소리의 필요성을 가장 먼저 인식해 '새로운 창작판소리 12 바탕 추진위원회'를 꾸리며 왕성한 활동을 해온 임진택 명창은 이번 무대에서 물질만능의 현대사회를 신랄하게 풍자하는 창작판소리를 보여줬다.

또 임진택을 잇는 이자람은 최근 관객의 많은 호응을 이끌어낸 <사천가>를 다시 한 번 선보였다. 공연 관계자는 "이번 창작판소리 두 세대의 배치는 대중에게 판소리의 현대적 가능성을 느끼게 하는 기회가 됐다"고 의미를 부여한다.

소리는 머무르지 않는다, 국악 문화의 개척

창작판소리 초대전, 임진택
외국에서 한국의 전통예술은 종종 '신비로움'으로 평가된다. 대표적으로 '한(恨)'의 정서는 그들의 정서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코드였다. 하지만 이런 우리만의 정서와 행보는 동시에 세계무대에서 그 입지를 좁게 했던 것도 사실이다. 한국 고유의 예술이지만,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예술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전주세계소리축제는 소리의 세계화를 위해 올해 '전주 우드스탁'을 시작했다. 이번 축제의 야심작이라고 할 수 있는 '(Sori Frontier)'가 그것이다. 이전의 소리축제가 '소리'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면 이제 '축제'에 좀 더 무게를 두려는 움직임이다.

우드스탁이라는 콘셉트를 지향하는 만큼 캠핑장이 마련된 야외 공연장에서 관객들은 맥주와 함께 1박 2일 동안 퓨전국악을 포함한 월드뮤직을 만날 수 있다. 얌전하게 공연을 관람하는 행사보다 날 새며 즐기는 새로운 공연문화를 만들려는 주최 측의 의도가 엿보인다.

는 축제인 동시에 대회이기도 하다. 해외 진출 가능성이 높은 창작 국악 혹은 퓨전국악 아티스트 10개 팀이 무대에 올라 경선 방식을 통해 1개 팀이 로 선정된다. 로 선정된 팀은 국민은행이 후원하는 'KB 소리상'과 함께 1000만 원의 창작지원금을 받는다.

행사 관계자는 이에 대해 "한국음악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새로운 실험과 도전을 통해 음악적 지평을 넓혀가고 있는 젊은 뮤지션들에 대한 응원이자 투자"라고 말했다. 팀은 이듬해 소리축제와 네트워크를 맺은 해외 축제의 초청권도 갖게 된다. 따라서 는 월드뮤직으로서의 국악의 가능성을 점검하는 토대가 된다.

소리 프론티어
세계 음악시장과의 본격적인 교류가 늦은 감이 있는 만큼 이번 축제에서는 실질적인 시스템도 가동되기 시작했다. 국내외 월드뮤직 시장의 예술가나 기획자, 공연 전문가 사이에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는 월드뮤직 심포지엄을 마련한 것. 심포지엄에서는 한국의 퓨전국악이나 월드뮤직 아티스트들이 해외진출을 할 때 필요한 실질적 접근과 함께 세계무대에서 대중성을 얻기 위한 방법들이 논의됐다.

특히 이 심포지엄은 논의만으로 끝낸 것이 아니라 아트마켓의 역할도 했다. 한국 아티스트들과 세계 유수의 축제 관계자와 공연기획자들이 모인 자리는 그 자체로 소리 세계화의 메신저 기능을 했다. 소리축제 홍보 담당자는 "와 월드뮤직 심포지엄은 '세계 속의 소리축제'를 시스템화하가는 과정"이라며 "이번 행사들은 세계진출을 위한 첫 시스템 가동인 셈"이라고 말했다.

한국만의 예술이 아닌 아시아-태평양의 예술로

한편 10월 첫 날에는 부산에서 국악의 세계화를 위한 다른 움직임도 있어 눈길을 끌었다. 국립부산국악원(원장 박영도)이 한국국악학회와 공동으로 개최한 <아시아·태평양음악 국제학술회의>이 '아시아의 몸짓과 소리'를 주제로 이틀간 열렸다.

장악과의 김추자 홍보담당자는 "국립부산국악원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민족음악 중심기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해외 음악학자들과 적극적인 교류를 발판으로 국악의 세계화에 기여하고자 마련했다"라고 개최의 취지를 밝혔다.

'아시아의 몸짓과 소리' - 지전춤
주제는 '아시아의 몸짓과 소리'이지만 이번 학술회의는 특히 '몸짓'에 주로 비중을 두었다. 그동안 국악이라고 하면 주로 음악 부분에만 치중해왔던 행사들과는 달리 전통춤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국악계뿐만 아니라 무용계에서도 적지 않은 관심을 보였다.

학술회의에서 발제를 맡은 이들의 면면과 주제에서도 이 같은 점이 뚜렷이 나타났다. 중국, 인도, 일본, 베트남, 한국 등 4개국 8명의 학자들이 주제발표자로 참여한 첫날 학술회의에서는 최해리 한국춤문화연구원 연구위원이 '춤문화의 탈맥락화 현상'을 주제로, 임미선 전북대 교수가 '조선말~이왕직아악부 시기 궁중정재의 변모양상'을 주제로 우리 춤의 특성과 전개 양상을 해외 학자들에게 전했다.

둘째 날도 송미숙 진주교대 교수가 '살풀이춤을 통해 본 한국춤의 미'를, 채희완 부산대 교수가 '미적 체험으로의 신명과 한국 연행예술의 극적 생성적 시공간'을 주제로 발표했다.

특히 양일간 이뤄진 행사에서 중국의 가오진롱(高金榮) 중국 서북민족대 교수는 돈황벽화에 남아 있는 고려악무의 자취를 발표하고, 일본의 아악무 권위자인 미타 노리아키(三田德明) 아악중앙연수소 교수는 일본 아악무와 고려악무와의 관계에 대해 발표하며 자연스레 국악의 아시아교류사가 거론되기도 했다.

국제학술회의의 개최를 기념해 이뤄진 특별기획공연은 '아시아춤'으로서의 한국춤이 다른 나라의 전통음악과 춤과 교류하는 시간이었다. 부산 지역의 토속성이 진한 지전춤과 좌수영어방놀이가 말레이시아의 대나무춤(Magunatib), 인도네시아의 가면무와 개성을 주고 받으며 아시안 댄스로서의 정체성을 재확립하는 시간이 됐다.

'아시아의 몸짓과 소리' - 좌수영어방놀이
그동안 많은 전문가들은 국악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교육과 산업이 유기적인 관계를 이루면서 그 실천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충고해 왔다. 마치 더 이상 국내에만 머무른 국악이 되지 않겠다는 듯, 우리 음악과 춤은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며 변화의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