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지적 재산권 규정 아래 있는 대중문학 풍토 반영

9월 25일 한겨레신문 독자투고란에 실린 일본 작가 혼마 야스코의 편지가 문학계 화두로 떠올랐다. 베스트셀러 <덕혜옹주>가 자신의 책 <덕혜옹주 :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를 표절했다는 것이 이 편지의 요지이다.

혼마 야스코는 이 글에서 "그 소설은 난해한 소 다케유키의 시를 비롯하여 내 책의 내용을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이 무단차용하면서도 표현을 바꾸는 식으로 저작권법상의 그물망을 피하려 하고 있었다"며 "타인의 저작을 이용하는 것치고는 상식의 도를 넘어선 것이었다"고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그런데 이번 표절 논란은 기존 국내 문학계 표절 사건들과 전혀 다른 경우란 점에서 이목을 끈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소설 <덕혜옹주>가 60만 권 이상을 출간한 초대형 베스트셀러라는 것. 둘째, <덕혜옹주>의 출간 당시부터 작가 권비영 씨가 <덕혜옹주 :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에 영향을 받았음을 언급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작자가 표절을 말하고 있다는 점. 셋째, 초대형 베스트셀러의 표절 논란이지만 현재 이에 대해 코멘트 할 수 있는 전문가가 전무하다는 점이다.

덕혜옹주 표절 논란, 이전과 다르다

소설 덕혜옹주
<덕혜옹주>는 출간 직후부터 대형서점과 인터넷 서점의 1위를 차지하며 올 상반기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그러나 <덕혜옹주>의 성공은 업계는 물론 출판사의 예상도 뛰어넘은 선전이었다. 이에 대해 작가 권비영 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현재 울산에 거주하고 있는 그는 3일 본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지방의 이름 없는 작가가 쓴 소설이었기에 책이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라고 말했다.'(2월, 동아일보 인터뷰 중에서)

그러나 어쨌든, <덕혜옹주>는 베스트셀러가 됐고, 이후 제도권 언론에서 인터뷰를 싣기 시작한다. 이때 는 수 차례 <덕혜옹주 :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를 참조했음을 공식적으로 밝혀왔다.

'처음엔 혼마 야스코의 책을 상당부분 참고해 소설을 썼다. 그런데 그 사이 그의 책이 한국어로 번역돼 나왔다. 비슷한 내용인데 어쩌나 싶어 허탈했다. 3, 4개월 손을 놓고 방황하다 완전히 다시 재창작을 하기로 마음을 추슬렀다. 만약 처음 썼던 작품이 그대로 출간됐더라면 분명 표절시비에 걸렸을 거다.'(7월, <중앙선데이> 인터뷰 중에서)

'혼마 야스코의 번역본이 나오지 않았다면 그냥 책을 냈을 거예요. 그런데 혼마 야스코의 책이 나오는 바람에 주춤했죠.'(8월, <오마이뉴스> '저자와의 대화' 중에서)

권비영 작가
작가가 <덕혜옹주 :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에 영향을 받았음은 소설책 후반 '작가의 말'에서도 언급한 바 있다.

'그녀가 쓴 <덕혜옹주 :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는 가장 완벽한 참고자료였다' (<덕혜옹주>, 지은이의 말 중에서)

일의 시간 순서를 되짚어 보자면, 일본인 혼마 야스코가 평생에 걸쳐 덕혜옹주를 연구해왔고, 사실을 바탕으로 평전 <덕혜옹주 :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를 썼다. 2000년대 중반부터 는 덕혜옹주 소설을 구상하고 준비해 왔다. 2008년 5월 평전 <덕혜옹주 :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가 국내 번역 출간되고, 는 이를 읽고 잠시 절필했다가 초고를 다시 써서 2009년 12월 출간했다. 그리고 베스트셀러가 됐다. 지난 25일 <덕혜옹주>가 평전 <덕혜옹주 :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를 표절했음을 주장하는 편지가 한겨레 독자투고에 실렸다.

표절의 기준은 뭔가?

9월 28, 29일 이틀간 전문가들에게 두 작품의 표절 유무를 문의했다. 편지가 실린 지 3일이 지난 시점에서 두 작품을 모두 읽은 문학평론가는 없었고, 포괄적인 의미에서 문학의 표절에 관한 정의와 표절 논란 사례, 이번 케이스의 차이를 들을 수 있었다.

평전 덕혜옹주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 국내 저작권법에 시와 소설 등 문학작품에 관한 명확한 표절 규정은 없다. 김기태 문학평론가는 "표절 관련 객관적인 기준이나 관련 심의기관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김 씨는 지난해 12월 발족한 한국저작권위원회 산하 표절위원회 초대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그는 "표절위원회에서 가이드라인이나 표절 검색 소프트웨어 등을 만들고 있지만, 외부로 공표하지 않은 상태다.

표절위원회 역시 상징성은 있지만, 법적 효력이 있는 기구는 아니다"고 말했다. 참고로 논문의 경우 여섯 단어 이상의 연쇄 표현이 일치하는 경우, 생각의 단위가 되는 명제 또는 데이터가 동일하거나 본질적으로 유사한 경우, 다른 사람의 창작물을 자신의 것처럼 이용하는 경우 등이 표절에 해당된다. (교육인적자원부, 논문표절 가이드라인 모형)

그렇다면 문학계에서 이전의 표절 논란들은 무엇을 기준으로 논의됐던 것일까? 문학에서 표절의 정의는 '동일 장르에서 숨기려는 의도를 갖고 원작자의 동의 없이 작품을 도용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오창은 문학평론가(중앙대 교양학부 교수)는 "표절하겠다는 공공연한 의도가 보여야 하고, 엄격하게 대치했을 때 한 단락 내에서 동일한 문장이 반복될 때, 문장의 구조가 유사할 때다. 그러나 이 요건을 충족시키는 표절은 거의 없으므로 이런 방식으로 밝혀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평론가들은 표절 시비가 있는 두 작품을 단락별로 대비해서 증명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문학평론가 이성욱 씨가 1992년 <한길문학> 여름호에 발표한 <'심약한' 지식인에 어울리는 파면>이다. 이 씨는 이인화의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와 공지영과 무라카미 하루키 등의 소설 속 문장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소설의 표절을 논증했고, 이인화의 소설을 "예술적인 한 방법인 차용이나 도용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작품 속 갈등, 모티프가 되는 장면, 사건의 유사성과 비중을 비교분석해 표절을 밝힐 수도 있다. 내러티브의 구조, 극적 반전의 지점, 서사의 구조 등의 유사성을 비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한계가 있다.

이명원 문학평론가는 "내러티브 구성의 경우 구조 자체가 완벽하게 동일하다면 표절보다 모방이나 차용의 개념으로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다. 구조적으로 모티프를 유사하게 차용했다면 작가적 윤리 문제를 제기할 수 있지만, 표절처럼 지적 소유권을 침범했다고 볼 근거는 약하다. 인물의 캐릭터나 성격이 비슷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유사한 캐릭터나 성격을 가진 인물은 상당히 많기 때문에 사실상 검증하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문학작품의 경우 작가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 한, 이를 밝혀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앞서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의 표절 논란도 이인화 씨는 1992년 당시 '혼성모방기법'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루키 등의 소설 일부분을 차용한 것은 인정하되, 이는 각기 다른 작품의 부분을 혼합해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 예술창작의 한 형태라는 것이다.

이런 문학계 기준으로 <덕혜옹주>의 표절 유무를 판별해 보자. 이전 표절시비에 휘말린 작품들이 원작이 발표된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고 하거나, 차용을 인정하지 않은 형태였다면, <덕혜옹주>의 는 <덕혜옹주 :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를 참조했다고 누누이 말해왔다. 그럼에도 원작자는 소설의 핵심적인 내용이 자신의 평전과 너무나 유사하다고 말했다. 이 경우 표절이 될까? 두 작품을 비교해 읽은 전문가가 없는 관계로 당장 표절 여부를 판별하기는 어렵지만, 대략 두 가지 점에서 일치되는 의견을 내놓았다.

첫째, 출처를 밝히더라도 표절이 성립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기태 평론가는 "인용을 하려면 인용의 타당성이 있어야 한다. 창작한 부분이 주가 되고, 보충을 위해서 가져오는 것은 인용이 맞지만, 인용이 주요 부분을 이루고 있으면 출처를 밝혀도 저작권을 침해한 게 맞다"고 말했다. 즉, 출처를 밝히더라도 단순한 참조를 넘어 소설의 핵심적인 부분을 원작자의 동의 없이 사용했다면 표절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단순히 작품의 아이디어나 이미지가 유사한 것은 표절로 볼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둘째, 이번 표절 시비는 양국의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됐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조영일 문학평론가는 "일본의 경우 워낙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엄격하기 때문에 전문성이 부각되는 소설의 경우 참고문헌을 모두 언급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무라카미 류의 <반도에서 나가라>는 수 백 권의 책이 작가후기에 참고문헌으로 언급돼 있다"고 말했다.

정리하자면 표절의 유무는 평전<덕혜옹주 :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의 내용과 구성, 형식을 <덕혜옹주>가 어느 정도 참조하고, 얼마나 창조적으로 재가공했느냐에 달려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문학작품이 표절로 판명되면 어떻게 될까? 표절이 명백하게 밝혀진다면 신춘문예나 신인상의 경우 당선 취소된다. 그러나 기성 작가들이 소설책을 출간한 상태에서 출판사가 작품을 회수하거나 저자가 작품을 절판시키는 경우는 드물다. 이명원 문학평론가는 "문학작품 관련 표절 논쟁은 빈번하게 의혹제기는 되는데 결론으로 나타나는 액션은 없고 해당 작가가 침묵으로 방어하거나 흐지부지 됐다"고 말했다.

<덕혜옹주>의 경우는 어떻게 될까? 물론 현재 표절 유무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표절로 결론이 난다는 가정 하에서 말이다. 오창은 평론가는 "아직 두 작품을 비교해서 읽어보지 않아 정확한 코멘트는 힘들다"고 전제하면서, "문화콘텐츠 개념에서 평전은 소설의 원소스를 제공한 것이고, 따라서 소송에서 원소스에 대한 저작권료를 요청하는 방식이 될 것 같다"고 예상했다.

평론가는 읽지 않는 소설

표절 의혹이 제기됐지만, 문단은 잠잠하다. 왜 그럴까? 두 작품을 모두 읽은 평론가가 없기 때문이다. 이번 사안을 취재할 때 특이한 사실은 소설 <덕혜옹주>가 60만 권을 판 초대형 베스트셀러이지만, 이를 읽어본 문학평론가들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작가의 말에 <덕혜옹주 :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를 참조했음을 명시해 두었지만, 이 두 작품을 비교분석해 읽어본 평론가는 없었다. 이는 소설 <칼의 노래>가 선전하며 덩달아 원전이 된 <난중일기>가 세간의 관심을 모은 것과는 비교된다. 서점가를 움직이는 베스트셀러를 왜 정작 전문가들은 읽지 않았을까?

드러내지는 않지만, 문학계는 암묵적으로 두 개의 카테고리로 나뉜다.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이 그것. 일간지와 문예지는 대부분 순수문학의 장에서 작품을 소개하고 평가한다. 전문가들이 '문학의 지도'를 그리는 것도 본격문학의 숲에만 해당되는 말이다. 장르문학을 포함해 대중문학의 경우 수십만 권이 출간 될 때쯤이면 '베스트셀러'라는 명목으로 잠깐 소개 되는 정도다.

<덕혜옹주>의 경우 작가가 의도하든 하지 않든 문학계 안에서는 대중문학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지난해 100만 부 이상을 판매한 베스트셀러 <엄마를 부탁해>와 비교해 보면 명확해진다. <엄마를 부탁해>의 경우 출간 직후 기자 간담회와 인터뷰를 비롯해 문예지 특집 등으로 다뤄진 바 있다. 신경숙 작가는 등단 이후, 각종 문학상 수상을 비롯해 몇 년 전부터 동인문학상 종신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국내 대표적인 순수문학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덕혜옹주>의 경우 출간 당시는 물론 수십만 부 판매고를 올린 후에도 이를 본격적으로 다룬 평론이나 문예지 인터뷰는 전무했다. 그에게 작품을 청탁하는 문학전문잡지도 없다. 가 단순히 '무명'이기 때문에 청탁이 없거나 인터뷰가 없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최근 몇 년 간 인터넷 연재가 붐을 이루면서 문학전문출판사들이 인터넷 연재 공간을 마련하면서 연재 지면이 대폭 늘었다. 때문에는 소설집 한두 권을 낸 신인 작가들도 인터넷과 문예지 연재를 맺고 있는 실정이다.

김기태 문학평론가는 "예전에 여러 작가들이 그런 문제(표절 시비)들에 휘말렸을 때, 객관적 검증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 권비영 씨 경우에는 문단에서 비평을 할 정도의 비중 있는 작가, 순수 문학 작가가 아니라서 권 씨를 비호하는 작가나 평론가도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풍토를 '한국의 문단문화가 만든 차별'이라고 못 박기는 힘들다. 문단문화는 분명 한국과 일본이 갖고 있는 특이한 문화이지만, 해외 문학계에서도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는 엄연히 존재한다. '노블'과 '픽션'처럼 아예 본격문학과 대중문학을 지칭하는 명사가 따로 있고 이 둘을 혼동하지도 않는다.

베스트셀러의 표절 시비, 애매한 지적 재산권 규정, 논의 아래 있는 대중문학. 소설 <덕혜옹주>는 작금의 문학계 풍토를 반영하고 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