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대구사진비엔날레22개국 245명 작가 1500여 작품 선보여

발터 니더마이어, Graue Wande 4
높고 넓은 산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한 발터 니더마이어 작가의 대형 사진 'Graue Wand 4'는 감상용 풍경이 아니다.

산세보다 인상을 포착해 언뜻 추상화처럼 보이는 데다, 조각조각 나뉘어져 있다. 광활한 대자연이 한눈에 들어오도록 담아 관객에게 신의 시점을 선사하는 풍경 사진과는 아예 다른 태도다.

관객은 산을 점령하지 못하고, 마주하고, 주눅 들며, 불편해진다. 오른쪽 아래 부분에 점 찍힌, 그나마도 산그늘에 묻혀 잘 보이지 않는 건물 하나가 인간의 미약함에 쐐기를 박는다. 이 작품 앞에 근대적 원근법에 길들여진 구경꾼의 자리는 없다.

관객은 해체된 좌표 속에서 자신의 자리에 의문을 품어야 하고 인간이 미약함을 잊고 얼마나 오만했는지, 자연과 세계에 대해 무슨 일을 해 왔는지 돌아보아야만 한다.

주제전인 '우리를 부르는 풍경'에 초대된 발터 니더마이어 작가가 대변하듯이 올해 대구사진비엔날레에는 환경을 성찰하도록 만드는 작품들이 포진해 있다. 자연은 물론, 다양한 문화와 미디어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반응해 왔는지, 어떤 사회적 감각과 삶의 양식으로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관계 맺어 왔는지 질문한다. 이는 즉물적인 미디어로서 사진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다.

율라 요키살로, Stand up
주제전 '우리를 부르는 풍경'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간이 만든 풍경'에는 발터 니더마이어의 작품을 비롯해 인간과 자연 간 상호작용을 담은 작품이 전시된다. 한국 작가의 작품으로는 서울의 상징 남산 타워를 삐딱하게 찍은 류호열 작가의 '남산', 공사 중인 다리 기둥을 적막하고 비현실적으로 바라본 장태원 작가의 'Concllusion 19', 울창한 숲 속에 뚝 떨어져 있는 수영장과 그 안에 둥둥 떠 있는 남자를 기묘하게 포착한 박현두 작가의 'Goodbye Stranger' 등이 포함됐다.

'사진과 비디오의 경계 및 시각적 확장'은 사진을 통해 가능해진 인식과 표현 방법을 보여준다.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린 여인을 담은 데니스 그루엔스테인 작가의 연작처럼 새로운 은유와 상징을 실험한 작품이 선보인다.

현대 사진예술계에서 주목 받고 있는 '헬싱키 스쿨'의 작업도 조명된다. 핀란드 헬싱키 스쿨 출신의 작가 집단은 영국의 yBa처럼 하나의 브랜드처럼 회자되고 있다. 이들의 작품에서는 몽환적이고도 침착한 독특한 감성이 느껴진다. 아니 레펠레 작가는 아름답고 견고하지만 어쩐지 섬뜩한, 잔혹동화 같은 이미지를 보여주며 율라 요키살로 작가는 바늘과 가위, 실 등 일상 용품을 그로테스크하게 엮은 콜라주 이미지로 눈을 사로잡는다. 요르마 푸라넨 작가의 작품은 핀란드의 자연과 그곳에 깃들여 사는 반-원주민의 삶을 상징적으로 전해 준다.

특별전으로는 아시아 사진의 경향을 보여주는 '아시아 스펙트럼-다중심주의'와 전쟁의 참상을 전함으로써 휴머니즘을 일깨운 사진으로 구성된 '평화를 말하다'가 마련되었다. '아시아 스펙트럼-다중심주의'에는 한국, 중국, 일본,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8개국 23명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된다.

이들의 작품은 서구화와 근대화를 함께 경험했고, 현재에도 세계화의 상징적 장소들로서 급속한 변화를 겪고 있는 아시아의 긴장감을 공유한다. 많은 작품에서 전통과 첨단이 뒤섞인 아이러니하고 키치한 분위기가 포착된다. 천지개벽한 중국의 도시 공중에서 두 남자가 권투 시합을 벌이는 광경을 담은 중국 작가 리 웨이의 'Boxing', 고층 빌딩 사이로 텅 빈 쇼핑 카트를 밀며 지나가는 한 거인 남자를 본 태국 작가 마니트 스리와니크품의 'Hungry ghost No.1' 등을 관통하는 근심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리 웨이, Boxing
각양각색의 코스튬을 입은 인물들을 한 데 모아 드라마틱하게 변화하는 중국사회를 풍자한 중국 작가 왕칭송의 'Nutrients'는 '잠자는 숲 속의 공주'의 한 장면을 상상해 재현한 한국 작가 배찬효의 'Existing in Costume Sleeping Beauty'와 겹치기도 한다.

'평화를 말하다'에서는 지난 세기 일어난 전쟁의 기록을 모았다. 유명한 종군 사진작가인 로버트 카파의 사진과 한국전쟁 사진을 연결함으로써 그 역사적 의의를 강조한다.

대구사진비엔날레는 올해 3회째며 대구문화예술회관, 봉산문화회관 등에서 10월24일까지 열린다. 22개국 245명 작가의 작품 1500여 점이 전시되었다. '사진의 전방위적 정체성'을 주제로 한 국제심포지엄도 진행된다.
홈페이지 www.daeguphoto.com


로버트 카파, 병사의 죽음
데니스 그루엔스테인, Figure out
류호열, 남산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