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4 필름 페스티벌' 러닝 타임 5분 12편 함께 상영

"레디, 액션!"

감독의 신호가 떨어지면 좁은 복도의 건너편에서 권총을 든 여자배우가 제작진 쪽을 향해 쏘기 시작한다. 그 앞에서 맞서 총을 쏘다 쓰러지는 남자배우들. 여자배우는 이들을 넘어 계속해서 복도 끝을 향해 전진한다. 이윽고 떨어지는 감독의 "컷!" 소리에 배우와 제작진의 입에선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온다.

여느 영화촬영장과 비슷해 보이지만 뭔가 허전하다. 육중한 덩치를 자랑하는 카메라가 없다. 자세히 보니 감독의 손에 조그마한 스마트폰이 들려 있다. 바로 이날 촬영의 카메라 역할을 했던 아이폰이다.

지난달 말 서울 압구정동의 한 건물에서 촬영된 이 영화는 홍경표 감독의 영화 <블루진>(가제)이다. 이 영화는 오는 6일부터 31일까지 열리는 '아이폰4 필름 페스티벌(iPhone4 Film Festival)'에서의 상영을 목표로 진행됐다. 홍 감독은 <반칙왕>, <태극기 휘날리며>, <마더> 등의 영화에서 촬영을 맡은 국내 최고의 촬영감독으로, 세계 최초로 아이폰4로 제작되는 이번 영화를 통해 연출에 도전하게 됐다.

아이폰으로 영화를 찍는다는 발상은 흥미롭지만 그래도 역시 기존 촬영기기에 비하면 불편한 점이 많다. 가령 줌 기능이 없는 아이폰 렌즈의 한계 때문에 클로즈업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서는 감독이 직접 배우 앞으로 다가서고 물러나야 한다. 하지만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홍 감독은 "아이폰을 통해 누구나 영화를 찍을 수 있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영상에 친숙해지고 직접 영화를 만들다 보면 좋은 영화인력이 나올 수 있다"고 기대했다.

아이폰으로 찍는 영화 <블루진>
이번에 아이폰으로 영화를 찍는 것은 홍 감독뿐만은 아니다. <말아톤>의 정윤철 감독, <신데렐라>의 봉만대 감독, <남극일기>의 임필성 감독, <마린보이>의 윤종석 감독, <작전>의 임호재 감독 등 현역 감독들을 비롯해 촬영감독인 김병서, 김지용, 정정훈, 조용규, 아트디렉터 이현하, 뮤직비디오감독 홍원기 등 12명이 함께 이 작업에 참여했다.

아이폰의 활용 방식만큼 이들의 촬영 방식도 각양각색이다. 홍경표 감독처럼 촬영만 아이폰을 사용하는 감독들도 있고, 촬영에서 후반작업까지 전부 아이폰을 이용한 감독들도 있다. 영화의 내용도 <블루진>이나 홍원기 감독의 <좀비헌터> 같은 판타지물에서 아이폰 자체를 소재로 한 것까지 다양하다. 영화의 러닝타임은 각각 5분으로 영화제에서는 12편이 하나로 모여 상영될 예정이다.

아이폰4 필름 페스티벌을 기획한 리얼라이즈 픽처스의 김호성 대표는 "촬영 기능이 강화된 아이폰4의 출시와 함께 새로운 형식과 내용으로 영화를 찍으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는 감독들에게 제안했다"며 이번 작업의 동기를 설명했다. 그는 "일반인들이 만든 영상으로 영화제를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아이폰용 영화'의 가능성도 점쳤다.

이번에 만들어진 영화들은 필름페스티벌 공식 홈페이지(www.iphone4filmfestival.co.kr)를 비롯해 아이폰4 필름페스티벌 전용 애플리케이션, 광화문 올레스퀘어 상영관, 부산국제영화제 특별상영(10월 6일~14일, 해운대)을 통해서 감상할 수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