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하 그림전>, 박노해 두 번째 사진전, 한유주 미디어아트와 협업

소설가 이제하 작품전시회
미술, 음악, 문학의 장르 간 융합은 예술사의 오래된 단골 메뉴 중 하나다. 미래파, 다다, 초현실주의, 구체시 등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예술운동과 1980년대 이후 등장한 일렉트로닉 문학 등은 대표적인 미술과 문학의 크로스 오버 사례다. 3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작가들은 어떤 형식의 크로스오버를 선보이고 있을까?

올 가을 시인과 소설가가 미술관에서 대중과 만난다. 소설가의 미술작품전부터 작가와 미디어아트와의 협업을 선보이는 자리까지, 다양한 전시회가 10월 중에 열리고 있다.

이제하, 거칠면서도 관능적인 그림들

'그림 그리는 작가'라고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가 소설가 이제하 씨다. 그는 흔히 '환상적 리얼리즘'이라 지칭되는 작품 세계를 구축해온 소설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시로 이름을 널리 알린 시인이기도 하고, 여러 차례 개인전을 연 화가이기도 하다.

특히 그의 그림은 문화예술계에서 마니아들이 많기로 유명하다. 그림의 화두는 대부분 말, 여자, 바다이다. 특히 말을 그리기로 유명한 그의 작품들은 거칠면서도 관능적이다. 실내에 서 있는 말의 모습은 함께 등장하는 여인과 어울려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방안의 난로 옆, 식탁 곁에 있는 말의 모습에서 우수와 슬픔, 긴장감이 느껴진다.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심미주의, 자유주의, 초현실주의의 일면을 공유하는 작가의 사유를 엿볼 수 있다.

작가는 오는 12일까지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이제하 그림전>를 연다. '밤의 말과 소녀' 등 지난해 <문인 캐리커처와 소품들>전 이후 그린 작품들이 전시된다.

전시회에 맞춰 신작 장편 소설 <마초를 죽이려고>(웅진 문학에디션 뿔 발행)도 출간됐다. 최홍명 화백의 집에서 머물며 비서이자 제자로 살게 된 주인공이 화가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인간이자 예술가로서의 욕망과 열망, 상처와 나약함을 목격하는 것이 주 내용. 최 화백 곁에 붙어 있는 42년 연하의 젊은 여인 서채리와 아버지의 그림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주눅 들린 자식들, 그림을 손에 넣으려는 장사꾼 같은 화랑가 사람들도 등장한다.

그림은 소설의 모티프가 되고, 작가에게 체화된 문학성은 다시 화폭으로 옮겨진다.

- 전시회 준비 기간은 얼마나 걸렸나요?

"일년 전부터 준비했죠. 인터넷에 소설 연재하면서 그림 그리다가, 서너 달 통영에서 작업했고. 바다 보면서 그림을 그리다 보니 작년 전시회보다 그림이 좀더 밝아졌어요."

- 선생님 그림에는 말이 자주 등장하죠.

"우연히 그리기 시작했는데 변형이 됐다고 하나? 변질이 됐다고 하나? 말에 대한 의미가. 들판에 뛰는 말은 너무 흔하니까 실내에 두어서 긴장감을 주었는데, 야생의 말과 문명화된 도시 사람들, 넓혀 보면 자연과 문명의 긴장감을 형성하려고요. 근데 그림에 말과 여성을 함께 그리면서, 말이 남성의 상징처럼 변하더라고요. (그림 속에) 여성과 말의 긴장 관계가 있죠. 남성적인 파워와 여성적인 반발심, 친화력, 긴장감을 조화하려고 말과 여성을 함께 배치했죠. 어찌 보면 굉장히 문학적인 것인데…. 내 소설에서도 정욕이란 문제가 늘 화두가 되니까요. 지금 나온 소설도 마초의 후예와 제자 사이의 긴장 관계에 관한 겁니다."

- 회화 작업이 소설 쓰기에 영향을 주나요?

"나는 미술학교(홍익대 조소과)를 다니면서 1920년대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그림을 보면서 상당히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표현주의나 초현실주의 그림이 문학과 굉장히 가까워요. 인간의 감정을 가장 기본적으로 드러내면서, 강렬한 색채로 형태를 변형시키죠. 정서적인 면을 과장하기도 하고. 그런 그림에서 영향을 받았으니까 자연히 문학과 가까워졌죠. '회화적인 요소를 문학적 언어로 바꿀 수 없나' 생각하고 소설에 회화적 이미지를 많이 쓰게 되고, 그림에도 문학적 내용이 깔리기도 하고요."

- 전시회 이후 계획은 어떻습니까?

시인 박노해
"올 가을에 장편 <모래틈>마무리하고 통영에 가서 다시 그림 그려야죠. <모래틈>은 <문학동네>에 연재하다 중단한 작품인데, 중산층 의식에 관한 소설이에요. 올해 안에 장편 마무리짓고, 내년에 작품 하나 더 쓸 겁니다."

박노해, 펜 대신 카메라를 들다

박노해 시인은 지난 10 년간 시를 발표하지 않았다. 대신 카메라를 들고 세계를 누볐다. 국경 너머 살아 있는 진실을 글로는 다 전달할 수 없기 때문에. 35밀리 필름카메라를 들고 가난과 분쟁 현장을 찾아 간 그는 지난 1월에 첫 사진전 <라 광야>전을 열었다. 오는 25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두 번째 전시회 <나 거기에 그들처럼> 전을 연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중남미 4대륙 현장에서 찍은 13만 여 장의 사진 중 엄선한 120여 점의 사진을 선보인다.

"시인이 되기 위해 시를 쓰지 않은 것처럼, 사진 작가되기 위해서 사진 찍지 않았습니다. 폭탄이 떨어지는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것이 카메라였고, 강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도 카메라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카메라를 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진 한 편 한 편마다 단편소설 한 권만큼의 사연이 있습니다."

분쟁 지역의 역사, 문화, 노동과 저항,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은 작품에 그대로 묻어 나온다. 사진에는 알파카를 재배하며 생계를 꾸리는 페루의 11살 어린 가장, 총살 직전의 체 게바라에게 마지막 식사로 땅콩죽을 끓여줬다는 볼리비아의 여인, 페루 수도 리마의 달동네 산크리스토발 마을, 고향 땅에서 쫓겨나 눈물 흘리며 걸어가는 팔레스타인 여인 등이 담겨 있다. 시인은 "지구촌 가장 아픈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면서 인간의 신성함과 시대정신을 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박노해 시인 <갱도 입구의 광석 추출> Kami, Bolivia
사진을 찍으며 틈틈이 시를 썼다. 미발표작 5000여 편의 시 중 몇 편을 골라 이번 주 10여 년 만에 새 시집을 출간한다. 전시작 등 160점의 사진을 담은 박 시인의 첫 사진집 <나 거기에 그들처럼>도 함께 발간됐다.

- 사진이 시에 어떤 영향을 주었습니까?

"사실 사진을 찍으며 가장 두려워했던 게 '시를 방해하지 않을까'란 생각이었어요. 천재성을 타고 난 분들은 현상 하나만 보고도 시를 잡아내던데, 저는 참 힘들게 쓰거든요. 근데 옆에서 이기명(한국매그넘에이전트 대표)씨가 격려를 해주면서 '빛으로 쓰나 만년필로 쓰나 같습니다'라고 하더군요. 전혀 방해되지 않고요. 제가 10년 동안 침묵 절필하면서 발표는 안 했지만, 사진을 찍으며 만년필로 쓴 시가 5000편이 넘는답니다. 그중 2000편 정도가 전 세계 현장에서 만난 사람에 관한, 국경을 넘는 시더라고요. 젊은이들이 그 시에 울먹이는 걸 많이 봤습니다. 빛으로 쓰나 만년필로 쓰나 시는 시다, 생각합니다. 저는 시가 흐르지 않는 대상은 찍지도 않습니다."

- 대부분 분쟁지역에서 찍은 사진들입니다. 사진 찍을 때 생명의 위협은 없었나요?

"책상에서 시를 쓰다가 시인이 죽을 일은 없는 것 같은데, 카메라는 목숨 내놓지 않으면 안되겠더라고요. 그런 곳에서 활동하면 당연히 체포되는 경험을 하게 되죠. 근데 저는 분쟁현장을 떠나올 수 있지만, 폭격이 쏟아지는 곳에서 매일 살아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거기 사는 사람들에게 '사진 찍다가 생명의 위협이 있었다' 말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습니다."

박노해 시인 <게바라의 길>, La Higuera, Sanata cruz
- 사진 찍는 걸 따로 배운 적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디지털카메라가 대세인 시대에 여전히 필름카메라로 사진 찍고요. 앞으로도 그렇게 작업하실 건가요?

"사진을 찍을 때 단순한 도구를 선택합니다. 그래야 대상에 가까이 갈 수 있으니까요. 지금 사용하는 카메라가 35밀리 필름카메라인데, 그것도 이기명 대표가 알려줘서 35밀리인 걸 알았어요. 지금도 빛을 잘 못 맞춰요. 저는 기술적으로 사진을 잘 알지 못하고 관심을 안 두려고 하는데, 생각해보니 이기명 대표도 기술적인 부분을 알려준 적이 없더라고요. 앞으로도 그렇게 작업하려고 합니다."

한유주, 미디어 아티스트와 협업

앞서 두 작가가 글쓰기와 그림 작업을 혼자 병행하는 형식이었다면, 씨는 미디어 아티스트와 협업으로 전시회를 열고 있다. 15일까지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열리는 기획전시 <보안여관, 술화의 물화>전이 그것. 미디어 아티스트 이준, 전자음악가 남상원 씨가 함께 했다.

제목처럼, 전시회는 보안여관이란 특정한 장소에서 일어났을 법한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1942년 문을 연 보안여관은 서정주 시인이 김달진, 김동리 등과 함께 문학동인지 '시인부락'을 만들었던 곳. 2006년까지 숙박업소로 운영되던 이곳은 이듬해 일맥문화재단과 메타로그가 인수해 복합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중이다.

소설가 한유주
한유주 작가는 이 보안여관을 배경으로 <시회지주(豕會趾鼄): 돼지가 거미를 만나다>와 <광녀(狂女)의 낭보(朗報)>의 두 편의 소설을 쓰고, 이준 작가와 남상원 작곡가는 각각 시각, 음악으로 재해석한 미디어 설치 작품들을 선보인다.

전시회를 감상하려면 제목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술화, 즉 언어로 풀어낸 이야기(소설)는 문학의 기본 메커니즘이다. 한유주 작가가 쓴 2개의 소설은 이 술화에 해당한다. 소설은 20세기 어느 날 보안여관에 투숙한 남자(돼지)와 여자(거미)에 관한 이야기다. 한유주 작가가 '언어로 풀어낸 이야기'를 이준, 남상원 씨는 '사물이 풀어낸 이야기'로 전환한다. 두 사람의 작품은 물화에 속한다.

"최근에도 장르 융합을 시도하는 작가와 화가들이 많지만, 대부분 같은 주제로 각자 작업을 하는 형식이 많아요. 이번 전시회에서는 이준, 남상원 씨와 최대한 많이 상의하고, 소설의 소재나 형식을 공유하려고 했습니다. 전시 작품도 마찬가지로 참여 작가들이 아이디어들을 공유한 상태에서 작업했고요."(한유주)

한유주 작가는 지난해에도 문지문화원 사이에서 미디어 아티스트 이준 씨와 <도축된 텍스트>란 주제로 전시회를 연 바 있다. '먹고 맛보는 텍스트'란 모티프로 글자, 단어, 문장, 단락, 글 등 5개의 무대를 구성해 고기를 도축하고, 저미고, 섞고, 조리하고, 먹는 행위를 통해 문학 텍스트와 미디어아트의 융합을 선보였다. 한 작가는 전시회를 준비하며 엽편 소설 <도축된, 도축될, 도축되지 않은, 도축되지 않을>을 쓰기도 했다.

- 기획이 특이합니다. 세 분이 공동작업하게 된 배경이 있나요?

<보안여관, 술화와 물화>전 - 보안여관이야기
(이준) "두 가지 계기가 있는데, 첫째는 '이야기가 시각적, 음악적 예술로 승화되려면 어떤 형태가 될까'란 생각에서 시작했고요. 둘째는 '서로 다른 장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예술을 경험하는 것을 방법이 없을까'하는 고민이 있었어요."

- 작업 과정을 말씀해 주세요.

(이준)"결과적으로 소설이 먼저 나왔지만, 시작은 동시에 했어요. 세 작가들이 대화를 많이 나눈 상태에서 각자 작업하고, 소설 텍스트가 가장 먼저 나왔고요. 그 소설을 읽고 저와 남상원 씨가 전시 작품을 만들었고요. 한유주 작가의 장점은 작품을 참 빨리 쓴다는 거에요.(웃음) 두 번째 소설이 나오면 또 그 작품 읽고 다시 작업하고, 그런 방식으로 진행했어요. 전시회에서 나오는 사운드 중에 한유주 작가의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려주는 부분도 있고요. 전시 작품 중에 한유주 작가와 제가 등장하는 것도 여러 개 있습니다."

- 소설만 쓸 때와 전시회를 염두하고 소설을 쓸 때 차이가 있었나요?

(한유주) "소설 쓸 때 작가가 전적으로 사건, 배경, 인물을 설정하는데, 이 소설은 두 분과 대화를 나누고 설정했죠. 소설에 나오는 사물도, 전시회에서 어떤 오브제로 등장할 것인가를 염두하고 쓰게 되고요."

이번 전시에서 원작 소설에 등장하는 소재를 변용시킨 다양한 오브제를 볼 수 있다. 이준 작가는 시계, 전화, 라디오, 병, 옷, 테이블 등에 전자장치와 소프트웨어를 삽입해 본래 사물과는 다른 정체성을 가지는 작품을 만들어 낸다.

(이준) "문학텍스트를 미디어 아트로 풀어낼 때 굉장한 매력이 있어요. 한유주 작가 소설은 특별한 스토리가 있지 않아서 이미지화할 때 자유로운 측면도 있고요.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문학 등 다른 장르의 예술을 융합하는 작품을 만들 계획입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