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s drop'
추상화가 속삭이는 명백한 이야기들. 반복되는 패턴과 기호 속에는 테두리로 감싸인 언어가 선명한 몸집을 드러내고 있다. 허공 속에 부유하는 단어들과 정처 없이 떠도는 순간의 기억들은 회화 공간 속에 비로소 자리를 잡는다. 그 후 표면 위에서 끊임없이 흩어졌다 모였다하며 원형적 방위의 사고를 형과 색으로 표출해낸다.

20여 년 전, 철학을 공부하며 언어로써 공간과 세계를 만들어 갔던 백지희 작가는 이제 선과 면으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간다. 그 공간은 주변의 질서와 관계를 형성해 나감으로써 비로소 커다란 세계를 만들어낸다.

경계 없이 끊겨버린 무수한 단어들은 경계를 지음으로써 윤곽을 드러내고 비로소 정착한다. 이렇게 생성된 조형적 언어는 백지희 작품 고유의 의미를 만들어낸다.

이번에 새롭게 선보이는 전은 지금껏 그림의 화두였던 '상황을 그린다'는 것을 구체화한 전시이다. 기억의 레이어들을 화면 위에 배열시키면서, 경험과 과거 일정한 시간들을 채워 나갔다. 10월 14일부터 11월 2일까지. 갤러리 조선. 02)723-7133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