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기지 프로젝트'윤서비의 <불안하다>, 이명일의 <맥베스…> 등 다양한 형식 실험

윤서비의 연출의 <불안하다>
무대 위에는 배우도 있고 설치미술 작품도 있다. 공연이라고 하기엔 공간이 지나치게 정적이다. 반면 전시라고 하기엔 인간의 동적인 움직임이 있다. 다른 작품에선 연출가가 공연 도중 무대에 들어와 배우들에게 직접 지시를 한다. 이것은 작품의 일부다. 관객들은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이를 흥미롭게 지켜본다.

지난해 LIG 아트홀에서 열린 '링키지 프로젝트'는 이상한 작품들을 잇따라 선보였다. 앞의 작품의 이름은 '움직이는 전시회'였다.

제목에서부터 이미 무경계성을 함의하는 이 작품은 '무엇이든 흘리는 남자', 'ㄱ', '냉장고 안의 토마토가 썩을 때까지 우리가 갈 수 있는 거리'를 작품 속 작품들을 전시ㆍ공연했다. 신체극과 설치미술, 미디어 아트 등 다양한 장르들이 혼합된 이 작품은 링키지 프로젝트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10여 년 전부터 젊은 예술인들을 지원하며 현대 공연예술의 폭을 넓혀왔던 LIG 아트홀은 지난해 링키지 프로젝트를 새롭게 가동시키며 형식 실험을 이어갔다. 프로젝트 관계자는 "국내외 공연예술의 젊은 작가들이 드러내는 독자적인 태도를 지지하며, 그들의 새로운 시도를 발전시키기 위한 연구와 모색의 장을 마련하고자 기획된 프로젝트"라고 설명한다.

제목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한 장르에 머물기보다는 다른 장르와의 유기적 연결(linkage)을 통한 실험에 중점을 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명일 연출의 <맥베스 : 운명, 그 거역할 수 없는 힘>
첫 번째 프로젝트에 선정된 이들의 면면을 보면 링키지 프로젝트의 지향점은 쉽게 드러난다. 젊은 예술가들과 함께 창작집단 크리에이티브 바키(Creative VaQi)를 만든 27살의 젊은 연출가 이경성을 비롯해 연극의 형식과 내용을 고민하는 극연구소 마찰의 김철승 대표는 기존 연극과 완전히 다른 작품을 선보였다.

이는 프로젝트 내 레지던스 프로그램에서도 분명히 나타났다. 인터랙티브 사운드와 영상 작업을 하고 있는 한국의 전자음악가 N2(남상원)와 함께 공동창작자로 초청된 쟈크 풀랭-드니(Jacques Poulin-Denis)다. 그는 전자음악 작곡가인 동시에 한쪽 다리가 의족이면서도 놀라운 테크닉을 구사하는 무용가다. 이들이 함께 펼쳐낸 작업에서 관객이 기존에 경험하지 못했던 신선한 충격을 받은 것은 당연했다.

링키지 프로젝트는 지난해의 긍정적인 성과를 기반으로 올해 두 번째 프로젝트를 마련했다. 다양한 공연양식의 방법론을 통해 관객에게 새로운 소통 체험을 제시하는 윤서비, 음악과 영상, 연기와 움직임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피지컬 씨어터(Physical Theatre)를 지향하는 이명일, 연극과 미디어의 필연적인 관계를 무대에서 구현하는 김제민 등 3인의 연출가들이 선정됐다.

윤서비의 연출로 선보일 <불안하다>는 극장이라는 공간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보여준다. 그에게 극장이란 가짜 현실을 진짜 현실로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불신의 여지를 검은 벽과 어둠으로 차단시킨 편리한 공간이다. 윤서비는 그런 '가짜 공간'의 태만과 타성을 자성하는 차원에서 사진과 영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영상(2D)이 공간(3D)이 적절히 배치된 공간에서 배우는 그것을 진짜처럼 활용하여 환영과 현실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시도한다.

또 <불안하다>는 공연 도중의 소통에도 관심을 보인다. 극장 안의 배우와 관객은 극장 밖과 소통할 수 없을까. 배우와 관객은 공연 도중 서로 접촉할 수 없는가. 다소 엉뚱하지만 충분히 가능한 이 의문 또한 이 작품을 통해 함께 고민해볼 수 있다.

김제민 연출의 <난 새에게 커피를 주었다>
연출가 이명일의 <맥베스: 운명, 그 거역할 수 없는 힘>은 너무나 익숙한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피지컬 씨어터를 통해 극복하는 실험을 시도한다. 그는 다양한 매체의 결합으로 총체적인 표현을 이루어내는 피지컬 씨어터를 통해 고전의 현대화, 연극예술 언어의 개발, 나아가 미래 관객의 수용 가능성 등을 모색한다.

연출가이자 미디어 작가인 김제민의 <난 새에게 커피를 주었다>는 드라마와 영상을 필연적 결합과 구성으로 상호 유기적인 무대언어로 실현시키며, 동시에 영상을 무대의 대안 언어로 제시하는 매체 실험을 시도한다. 기존 연극에서의 희곡은 다소 무겁고 관념적인 주제와 상징과 은유가 혼재된 문학성 때문에 시각적인 여백을 가지고 있다. 김제민은 이 여백에서 드라마와 영상의 결합을 실험하며 그만의 새로운 무대언어를 선보인다.

올해 링키지 프로젝트는 이들 공연 외에도 공연예술분야 전문가들이 함께하는 포럼 CR(Creative Resonance) 2도 진행한다. 과학평론가이기도 한 주일우 문지문화원 사이 기획실장이 진행하는 이번 포럼은 이상길 연세대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교수, 조만수 충북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최재오 호서대 연극학과 교수 등이 패널로 참여해 토론의 장을 벌인다. 프로젝트 관계자는 "이번 행사에는 국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젊은 연출가들의 창작 행위가 가지는 미학적, 시대적 가치를 패널과 관객이 함께 점검하며 담론화하는 의미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순수예술의 총아였던 연극은 이제 '그들만의 예술'에서 벗어나 시대와 공명하기 위해 관객과 평론가뿐만 아니라 인문학, 과학, 타 장르 예술과 적극적인 교류를 진행하며 새로운 예술현상을 만들고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