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정의와 조국애, 욕정 사이 방황하는 청춘 그린 곡 시처럼 들려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서울시오페라단
영화 <필라델피아>와 <하녀>에 나오는 마리아 칼라스의 음성은 처연하면서도 결연하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불행에 빠뜨리는 운명에 고통을 느끼고 진정한 사랑을 찾았음에 벅차게 노래하는 오페라 아리아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이 아리아로 유명한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가 지난 14일부터 17일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막이 올랐다. 2006년 국립오페라단 공연 이후 5년 만이고 이 오페라를 한국에서 초연했던 서울시오페라단의 공연으로는 무려 18년 만이다.

당시 타이틀롤을 맡았던 박세원 서울시오페라단장은 이번 공연에서 예술총감독으로 공연 제작에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격동하는 프랑스 혁명기, 당시 시인이자 귀족이었던 안드레아 셰니에는 반혁명이란 죄목으로 32세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극적인 부분에는 드라마가 숨어들었지만 전체적인 줄기는 같은 이름의 실존인물 삶을 다룬다. 그의 시도 두 편이 고스란히 담겼다. 덕분에 조르다노는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마스카니, <팔리아치>의 레온카발로와 함께 사실주의(베리즈모) 오페라의 3대 거장 반열에 올라 있다.

시대 배경과 상관없이 많은 오페라 작품이 사랑을 스토리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안드레아 셰니에>는 사랑보다는 정의와 자유, 그리고 휴머니즘에 초점을 맞춘다. 극의 진행이 고조되는 3막과 4막에서 이런 메시지는 두드러진다. 모든 사람을 단두대로 보냈다고 표현했을 정도로 폭압적인 시민독재 시대, 하인의 신분에서 혁명정부의 요인이 된 제라르는 오랫동안 흠모해온 막달레나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그러나 셰니에에 대한 그녀의 깊은 사랑을 알게 된 제라르는 마음을 바꾸어 셰니에의 구명에 나선다. 때는 늦었다. 셰니에는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고, 막달레나는 사랑하는 셰니에와 함께 단두대에서의 죽음을 택한다.

테너의 음역대가 시종일관 높아 '테너의 오페라'라 불리는 오페라이지만 테너뿐 아니라 드라마틱 소프라노와 바리톤 성악가 모두에게 쉽지 않은 작품이다. 정치적 배신과 음모, 지식인의 고뇌, 개인의 아픔과 방황을 긴 호흡의 아리아로 충분히 표현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노래 못지않게 연기가 중요한 작품이다. 선이 굵은 작품이지만 주인공들의 내밀한 감정들은 이번 공연에서 섬세하게 표현되었다.

특히 백미는 3막 제라르의 아리아 '조국의 적'이었다. 사랑 때문에 무고한 셰니에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자신의 처지와 갈등을 절절하게 드러내는 명곡이다. 정의와 조국애, 욕정 사이에서 방황하는 청춘을 그리는 이 곡은 한 편의 시처럼 들린다.

지난 14일 공연에서는 셰니에 박현재, 막달레나 김향란, 제라르 고성현이 맡아 열연했다. 아리아가 끝날 때마다 객석의 박수가 이어졌지만 특히 3막의 '조국의 적'을 부른 고성현과 '어머니는 돌아가시고'를 부른 김향란에게는 1분간 극의 진행이 멈출 정도로 많은 환호가 쏟아졌다.

총 4막의 공연은 1막과 2막, 그리고 3막과 4막이 묶여 1,2부로 나뉘어 공연됐다. 막이 전환되는 5~7분 동안 객석에 설치된 스크린에는 분주한 무대 전환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여줘 색다른 재미를 주기도 했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