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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과 다른 풍요와 행복 선사

[Story in the Kitchen] (8) 빵
간단히 배 채우는 음식서 여유의 상징까지, 종류·가격 만큼 다양
'곡식 가루에 소금·설탕·기름·베이킹파우더나 이스트를 넣어 반죽하여 부풀려 굽거나 찐 음식.'

이 음식은 빵이다. 당연하겠지만, 이 사전적 정의는 빵이 갖고 있는 동서양의 다양한 문화적 감정을 총체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한국인에게 밥이란 절절한 배고픔의 기억임을, 밥의 사전적 정의가 드러내지 못하는 것처럼.

밥과 빵이 동서양의 주식을 상징한다고 해도 두 음식이 빚어내는 감성은 사뭇 다르다. <빵과 장미>, <빵 굽는 타자기> 등 빵을 제목으로 한 대부분의 서구 문학작품에서 빵은 생명의 은유로 쓰인다. 그러나 빵이 곁다리 음식인 우리에게, 빵은 배부른 간식, 감자나 고구마보다 고급한 구황식품으로 비춰진다.

밥의 냄새는 비릿하면서도 구수하다. 그 냄새를 만드는 것은 오롯이 물과 쌀이다. 밥이 삶의 원동력인 우리에게, 이 냄새는 구휼의 상징으로 다가온다.

'전기밥통 속에서 밥이 익어가는 그 평화롭고 비린 향기에 나는 한평생 목이 메었다.' (김훈, '밥벌이의 지겨움' 중에서)

빵 냄새는 설탕과 기름이 빚어낸다. 달큰하고 고소하다. 이스트로 한껏 부풀지만, 매끈한 모양새를 유지하고, 버터와 계란물을 입힌 표면은 보는 이의 식욕을 자극한다. 이런 빵의 이미지에 대해 소설가 조경란은 이렇게 말했다.

'이름만 듣거나, 냄새 맡거나, 보기만 해도 풍요롭고 행복해 지는 것'. (유승준, <사랑을 먹고 싶다> 인터뷰 중에서)

빵이 밥과는 다른 풍요와 행복을 빚어낸다.

배부른 행복

우리나라 빵의 역사가 얼추 100년이 넘는다고 하지만, 빵이 국민 먹을거리로 도약(?)하게 된 것은 1960년대 전후다. 분식장려운동이 시작되면서 당시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옥수수빵과 가루 우유를 공짜로 나눠줬고, 삼립식품, 샤니, 기린 등 제빵공장이 생기면서 빵을 대량생산하는 시대가 열렸다.

70년대 생긴 '우리식 단팥빵', 찐빵은 겨울철 별미로 부각됐다. 대량유통, 배급되는 빵은 싼 값에 풍요와 행복을 선사했다. 이때의 행복은 배부름의 다른 이름이었을 게다. 얼마 전 한 주간지 설문조사에서 '빵에 대한 추억'을 논할 때 20~40대는 '학교 매점 등에서 사먹던 양산빵'을 가장 머릿속에 오래 남은 추억의 빵으로 꼽았고, 중장년층의 상당수는 '학교에서 우유와 함께 나눠주던 배식빵'을 꼽았다.

푸르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 마르셀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입에 대다가 불현듯 유년기를 회상하게 된다. 우리나라 중장년층은 단팥빵과 크림빵, 찐빵을 베어 물 때,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

'충무로 뒷골목 허름한 빵집/커다란 가마솥에 쪄낸 찐빵// 유난히 예뻤던 언니를 쫓아다니는/ 남학생 여드름을 이상하게 바라보며/ 손바닥만한 뜨거운 찐빵/ 한 입 베어먹었을 때 그 달콤한 맛' (목필균, '낡은 기억 속으로 -빵집-' 중에서)

1970~80년대는 빵공장에서 만든 양산빵과 빵집에서 직접 만든 제과점빵이 공존하는 시대다. 양산빵이 싼값에 배부른 행복을 선사했다면, 제과점빵은 고급스런 취향을 드러내는 부와 여유의 상징이었다. 이때 빵집 아들로 태어난 소설가 김연수는 자전소설 <뉴욕제과점>에서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상한다.

'예나 지금이나 내가 뉴욕제과점 막내아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늘 똑같다. 다들 "빵 하나는 엄청나게 먹었겠구만"이라고 말한다. 그 부러워하는 표정을 볼 때만은 재벌 2세도 마다할 만하다. 우리 어렸을 때만 해도 빵의 지위는 그처럼 높았다.'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뉴욕제과점 76페이지)

몸에서 정서로 넘어온 안락함

이 시골 빵집의 히스토리는 우리나라 현대를 압축한 것 같다. 작가는 김천 뉴욕제과에 주어진 세 번의 기회를 빌어 오늘의 한국사를 드러낸다. 처음 기회는 1980년대 전후다. 사람들은 그즈음부터 일상적으로 빵을 사먹기 시작한다. 설날에는 선물용 롤케이크, 2월에는 발렌타인데이용 초콜릿, 3월에는 화이트데이용 사탕, 6월부터 팥빙수 등 뉴욕제과점엔 계절마다 대목이 찾아온다.

두 번째 기회는 제 5공화국이 끝나갈 때쯤 찾아왔다. 이제 뉴욕제과점에서 대목 장사의 몫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손님들은 최신식 인테리어를 갖춘 제과점을 선호하기 시작했고, 바게트, 피자빵, 야채빵 등 서울에서 전해온 새로운 종류의 빵을 찾기 시작했다. 제빵사는 대구에서 이 신식 제빵 기술을 배워 김천제과점에 새 메뉴를 선보인다.

'내가 아는 한 마지막 기회가 뉴욕제과점에 찾아왔다. 김영삼 대통령이 세계화를 주창할 때만 해도 그게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는데, 파리크라상이나 크라운베이커리 같은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빵집이 그 작은 도시에도 생기고 나서야 우리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같은 책, 89페이지)

뉴욕제과점은 문을 닫지만, 세계화 바람을 타고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한국의 빵가게는 2000년대 또 한 차례 변화를 맞는다. 브런치 유행이다. 샐러드와 파스타 등 스타일이 변형되기는 해도, 브런치의 기본은 빵이다. 잉글리시머핀, 팬케이크와 베이글이 붐을 이룬 것도 브런치의 공이 절대적이다. 요즘에는 베이커리 카페가 유행하며 식사 대용 빵이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 사회의 20~40대의 라이프스타일에 영향을 주는 커다란 상징이 '뉴요커'라고 할 때, 이 스타일을 가장 적확하게 표현하는 음식이 커피와 빵이다. 아메리카노(이름에서부터 아이덴티티를 드러낸다)와 베이글을 먹고,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쿨한 인간형. 이들에게 빵 한 점은 배고픔의 해결이 아니라, 여유로운 식사의 서곡처럼 보인다.

여전히 누군가에게 빵은 간단한 한 끼를 때우는 음식이지만, 뉴요커를 지향하는 젊은층에게 빵은 느긋한 식사를 상징하는 음식이 됐다. 빵이 풍기는 고소하고 달콤한 향은 안락한 기분을 선사한다. 이때의 풍요는 배부름보다 시간과 정서의 여유에서 비롯될 터다.

'프라이팬 위에 팬케이크를 굽고, 흥청망청 최고급 메이플 시럽을 뿌리고, 폭신한 우유거품을 만들고,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캐러맬 마키아토를 만들었다. 팬케이크를 점심 대용으로 싸가지고 가는 손님들을 위해 공짜로 나눠줄 마들렌도 구웠다. 게다가 취미 삼아 한두 개씩 굽기 시작한 뉴욕식 컵케이크가 인기를 끌자, 안나는 자연스레 디저트 전문 가게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백영옥, <다이어트의 여왕> 33페이지)

편의점의 700원짜리 '김탁구 빵'과 홍대의 뉴욕식 컵케이크, 페이야드의 디저트 파이. 2010년 한국에는 수 만 가지 빵이 공존한다. 간단하게 배 채우는 음식부터 여유의 상징까지 빵의 의미는 종류와 가격만큼이나 버라이어티해졌다.

달짝지근한 맛의 부드러운 풍미, 고소한 향이 주는 안락한 정서. 빵은 밥과 다른 형식의 풍요와 행복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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