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이자 예술로서, 역사이자 여행으로서 '새로운 건축읽기' 시도들

건축영화 <기무>
건축은 어렵다. 정교한 설계와 기초공사를 거쳐 완성된 틀의 모습은 도시와 시골을 막론하고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 그 과정이나 종류는 너무나 전문적이고 복잡하다.

반면 쉽고 흥미로운 건축도 있다. 유럽 여행을 떠나는 이들의 목적에는 책이나 인터넷 이미지로만 봐왔던 유명한 건축물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은 이유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

관광으로서의 건축 탐방은 국내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서울의 남대문이나 광화문, 경복궁, 혹은 명동의 유명 백화점 앞에서도 건축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있다. 서울로 수학여행을 온 지방 학생들은 서울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63빌딩이나 예술의전당에서도 기념촬영을 한다.

이처럼 건축에 대한 태도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그것에 깃든 문화적, 역사적 이야기를 발견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 최근 서점이나 문화 행사에서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건축 읽기’는 바로 이 점에 착안했다. 공학적 건축이 아닌, 문화이자 예술로서의 건축, 역사이자 여행으로서의 건축에 관한 이야기를 발견하는 시도가 그것이다.

책 속에 지은 건축물, 독자들을 찾아나서다

건축영화 <시티즌 아키텍트>
임석재 이화여대 교수가 펴낸 <서울, 건축의 도시를 걷다>는 서울의 주요 건축물을 대상으로 삼아 이런 건축의 다면적 속성을 정리해서 소개한다. 저자는 “서울 사람들은 서울의 건물들이 특별히 볼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고 말하며, 일상에서 쉽게 지나쳐온 서울의 다양한 건축물들에 얽힌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저자는 1년여의 오랜 준비 기간 동안 서울 곳곳을 직접 누비며 의미 있는 건축물을 다양한 기준으로 분류했다. 건축물의 설계자나 설계 의도, 완공 시기, 시공법 같은 기본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건축물이 탄생하게 된 역사적 배경과 과거와 현재의 위상을 비교 분석하여 현 사회를 진단하는 비판적 시각까지 아우른다.

유명한 첨단 건축물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건축주의 의도가 담긴 오래된 건축물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가령 현재는 새한빌딩이 된 장충동의 서산부인과 건물은 언뜻 눈에 잘 안 띄는 모습이지만 사실 한국 현대건축의 거장 김중업의 작품으로, 그의 개성이 마음껏 펼쳐진 흔치 않은 작품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김수근의 공간 구 사옥이나 구인회 씨 댁은 전통의 현대화나 구조주의에의 심취 등 당시 거장의 고민이 담긴 작품으로 눈길을 모은다.

한편 건축계에 몸담은 12명의 저자들이 함께 낸 <건축콘서트>는 능동적인 건축 감상에서 한발 더 나아가기를 희망한다. “그동안 건축은 어려웠고 불친절했다”는 고백에서 출발하는 이 책은 건축이 대상화된 예술작품을 넘어 사람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제3의 건축 현장’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구인회 씨 댁(사진제공=임석재 이대 건축학부 교수)
그동안 소통의 벽을 만들었던 것이 어려운 용어 등 전문지식에서 비롯됐다고 밝히는 12명의 저자들은 저마다의 주제를 정해 대중과의 소통을 시도한다. 12개의 주제는 크게 다섯 가지로 묶인다. 상상, 공간, 빛과 색, 생태, 디지털이라는 코드가 그것이다.

상상력과 건축의 관계에서 박영태 동양미래대학 실내디자인과 교수는 그리스 신화의 이카로스 이야기나 <천공의 성 라퓨타>,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 신화나 애니메이션 속의 건축적 상상을 언급하며 건축에서의 상상의 힘을 설명한다.

공간과 건축이라는 다소 따분할 수도 있는 테마에서 유명희 울산대 건축대학 교수는 인문학적 시각과 건축설계적 분석의 접목을 시도한다. 12명의 저자들은 이처럼 각각의 요소들이 들어있는 건축이 어떻게 창조되고 변신하는지 친절하고 흥미롭게 풀어낸다.

건축 공간 속 이야기, 스크린에 담다

한편 건축에 관련된 이야기를 스크린에 담는 시도도 있다. 지난해 첫 행사를 성공적으로 유치하며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던 서울국제건축영화제는 11월 11일부터 영화제 기간과 상영 편수 등을 늘려 영화를 통한 건축 읽기를 다시 한번 권유한다.

공간 구 사옥(사진제공=임석재 이대 건축학부 교수)
올해 영화제 주제는 ‘링크(LINK)’로, 건축가들의 건축적 작업이 사람들이나 지역, 공간과 맺는 관계의 연결고리를 다룬 작품들 10여 편이 선정되었다. 국내에도 번역된 책 <희망을 짓는 건축가>의 주인공인 미국 건축가 사무엘 막비와 루럴 스튜디오의 이야기를 담은 <시티즌 아키텍트(Citizen Architect)>(미국, 2010)를 비롯해 르 코르뷔지에가 아르헨티나 라 플라타에 남긴 유명 건축물인 쿠루체트 하우스(Casa Curuchet)를 배경으로 한 <성가신 이웃(El hombre de al lado)>(아르헨티나, 2009) 등이 대표적이다.

이밖에 미국 모더니즘 건축의 형성에서 크게 기여한 건축 사진작가 줄리어스 슐먼에 관한 다큐멘터리 <비주얼 어쿠스틱스(Visual Acoustics)>(미국, 2008)과 옛 기무사 터 재건축과 관련해 한국 근대건축을 조명한 박동현 감독의 실험 다큐멘터리 <기무>(2010 밴쿠버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 등도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이번 상영작들은 파편화되고 분절적인 현대인의 삶의 시공간에 건축이 어떻게 자연스럽게 연결고리로 작용하는지 보여준다.

이번 영화제가 열리는 아트하우스 모모 역시 건축적으로도 큰 의미를 가진 이화여대 캠퍼스 복합단지(ECC) 내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파리 국립도서관을 설계한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인 도미니크 페로가 설계한 작품.

대지와 건축을 융합하는 현대적 랜드스케이프 첨단 건축 공간에서 서울국제건축영화제는 영화제를 찾은 관객들이 건축을 쉽고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부대행사도 마련했다.

그동안 ‘생활을 담은 그릇’에 그쳤던 건축은 이제 현대인의 새로운 즐길거리이자 쌍방향 텍스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건축을 이해하려는 시도도 적극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