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소회, 소통한계보다 현대인의 도덕ㆍ철학적 문제에 초점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한국에서 오랫동안 부조리극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해왔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20세기, 인간의 야만성을 드러냈던 전쟁을 통해 고도는 그런 시대의 부조리함을 보여주는 상징이 됐다.

지난해와 올해에는 잇따라 탄생 100주년을 맞은 두 부조리극 거장, 외젠 이오네스코와 장 주네를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베케트의 관심사가 존재의 부조리였다면, 이오네스코는 인간의 내적 충동이나 언어의 타락을 다뤘고, 주네는 삶 자체가 부조리하다고 생각했다. 이들 세 명은 세계 3대 부조리극 작가로도 불리며 연극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오는 21일부터 공연되는 <탱고>는 국내 관객에겐 낯선 슬로바키아 부조리극이다. 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의 해외초청작으로 국립극장 무대에 오르는 이 작품은 국내에 <초보자들>, <스트립티즈> 등으로 알려진 폴란드의 국민작가 슬라보미르 므로제크(Slawomir Mrozek)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심리드라마다.

1969년에 슬로바키아 챔버극장에서 초연되었던 <탱고>는 당시 자유주의 경향에서 세대 간 갈등을 풍자적이고 사회비판적인 대사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초연 당시의 <탱고>는 당대의 어두운 전체주의에 대한 미래를 상징하는 대담한 춤이었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슬로바키아 최고 연극상인 도스키 어워즈를 수상한 라스티슬라브 발렉의 연출로 재해석되어 이오네스코의 추상적 부조리나 베케트의 존재의 부조리와는 다른 부조리를 보여준다.

극은 한 가족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원칙과 전통을 중시하는 젊은 아들 아더가 이야기의 중심이다. 반면 약혼녀인 알라는 도덕적 억압을 거부하는 열정녀. 아버지 스토밀은 항상 자유와 저항을 외치는 진보주의자 예술가다. 본능적이고 힘을 신봉하는 하인 에디도 있다.

아더는 무질서와 혼돈에 빠진 집안을 바로잡기 위해 알라와의 결혼을 통해 기강을 세우려고 하지만 가족은 물론 알라마저 그에게 등을 돌린다. 난동을 일으키던 아더는 결국 에디에게 살해당하고, 가족들은 잠시 아더를 추모하지만 곧 에디의 힘에 굴종하고 만다. 탱고는 여기서 민중의 춤이 아닌, 지배자인 에디의 춤이 된다.

각각의 캐릭터는 므로제크가 겪은 2차 세계대전 이후의 폴란드 사회를 상징한다. 그는 <탱고>를 통해 폴란드의 정치적 성격을 개조하려던 지성인들의 투쟁을 나타낸다.

인물들은 자신만의 이상주의를 강하게 꿈꾸고, 그런 구성원으로 이뤄진 가족은 극도로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때문에 구성원들은 이런 가정의 모습에 환멸을 느끼며 질서와 규칙을 오히려 갈망하게 된다. 결국 므로제크는 아더의 파멸을 통해 가치를 파괴함으로써 체제를 전복시키려는 이상주의적인 태도는 성공할 수 없다고 말한다.

마지막 에디의 탱고는 결국 힘과 권력만이 승리한다는 현실의 한계를 보여준다.

므로제크는 <탱고>에서 부조리 연극 기법을 쓰고 있지만, 기존 부조리극의 인간소외나 소통의 한계 대신 그로테스크한 인물 묘사나 부조리한 상황 등을 통해 현대인이 갖고 있는 도덕적이고 철학적인 문제들에 보다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자신만의 특색을 선보이고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