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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고 입는 게이 패션, 저남자, 게이야?

[오늘 한국의 옷②] 남성 패션에 파고든 게이 코드, 아이돌 그룹 통해 유행
  • 돌체앤가바나
20대 중반의 남성 A씨는 얼마 전 우연히 헬스 클럽의 트레이너가 입고 있는 속옷 브랜드를 보게 되었다. 2(X)ist. 섹시한 디자인이 주를 이루는 이 브랜드가 뜬 결정적인 계기는 게이 포르노 배우들이 이곳의 팬티를 즐겨 입으면서부터였다.

일명 게이 속옷으로 불리는 팬티를 입은 '그 형'은 바지를 추슬러 입은 뒤 휴대 전화를 꺼내 여자 친구와 다정하게 통화하기 시작했다.

'뭐야, 게이가 아니었어? 알고 입는 거야, 모르고 입는 거야?'

너무 순진한(?) 한국 사회

한국 사회에서 게이 문화가 양지로 나오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영화 <왕의 남자>가 대박을 터뜨렸고 최근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는 제법 현실적으로 게이 커플의 이야기를 다뤘지만, 실생활에서 게이를 만나거나 직접 커밍아웃하는 것을 본 사람들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

  • 돌체앤가바나
음지로 꽁꽁 숨은 게이 문화는 '한국에도 게이가 있긴 한가?'라는 의문을 낳았고, 이는 곧이어 사회 곳곳에서 부작용으로 이어졌다.

섹스리스 부부로 수십 년을 살아온 부인의 고민 상담에 대해 사람들은 '좀 더 적극적이 되어 보라', '지친 남편을 이해해 줘라' 등의 조언은 할지언정 '게이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추호도 하지 않는다.

동성 친구가 자신을 향해 보내는 야릇한 눈빛도 '우정, 좀 뜨겁긴 하지만 어쨌든 우정' 그 이상으로는 결코 발전하는 법이 없다. 술 취한 친구의 손이 자신의 아래로 향하기 전까지는. 국내에서 공개적으로 커밍아웃을 한 극소수의 게이 중 한 명인 오피스에이치 대표 황의건 이사는 최근 낸 에세이집 <비트윈>에서 가수 비의 웨이브 댄스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원래 웨이브는 주로 남성을 유혹하기 위해 여성이 추는 춤 동작이며 남자의 웨이브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게이들의 전유물이었다. 특히 여러 남성들이 한꺼번에 반라로 그 정도 수위의 야한 웨이브를 추는 모습을 한국 공중파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볼 수 있다는 것은 한국 사회가 아주 완벽하게 무지하거나 아니면 아주 열린 사회라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불행히도 '아주 열린 사회'는 되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게이의 드레스 코드에 대한 분별력이 떨어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 이른바 패셔너블하다고 여겨지는 옷의 출처는 대부분이 게이들이다.

  • 2(X)ist
흔히 게이 패션으로 언급되는 것은 딱 달라 붙는 스키니 팬츠, 가슴 골이 보일 정도로 깊이 파인 V-넥 셔츠, 하늘하늘한 저지 소재, 핑크색, 빅백, 과감한 색 조합, 스모키 메이크업 등이다. 이것들만 보고 게이 패션을 여성스러움과 동일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여성스럽든 남성스럽든 핵심은 다른 데 있다.

"남자는 예쁜 여자를 착하다고 여기고, 여자는 능력 있는 남자를 잘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게이는? 게이는 자기가 자고 싶은 남자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 <비트윈> 중

한국 아이돌은 다 게이다?

게이를 이성애자들보다 문란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류지만 어찌됐든 생물학적으로 남성인 게이들은 시각적 매력에 쉽게 함락당한다. 게이의 부류 중에는 대중이 흔히 생각하는, 몸짓과 말투, 몸매가 여성스러운 스타일도 있지만 터미네이터 뺨치게 근육질인 마초 스타일도 많다.

게다가 후자 쪽이 더 인기가 좋다. 여자와 남자의 조합이 머리에 박힌 일반으로서는 자꾸 잊어버리는 대목이지만 게이는 어디까지나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인 것이다.

게이 중 패션에 무관심한 부류를 제외하면 나머지 게이들의 패션 코드를 설명하는 하나의 단어는 단연코 섹스어필이다. 마른 몸이든, 근육질이든 일단 육체를 드러내고 과시하는 것이 첫째로, 결혼이라는 단어와 무관한 게이들에게는 파트너의 경제력, 학력, 집안 내력 등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덕목들 훨씬 위에 섹시함이 존재한다.

바지 위로 살짝 보이는 캘빈클라인 팬티, 늘씬한 다리 라인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디올 옴므의 스키니 팬츠, 육중한 팔뚝을 감싸는 돌체앤가바나의 카디건, 불룩한 가슴 근육을 돋보이게 하는 디스퀘어드의 티셔츠, 그 밖에 달라 붙고 드러내는 모든 남성 패션은 다 게이들로부터 유래했다.

이것들은 국내에서도 대유행해 멋좀 부린다는 한국 남자들의 옷장 한 켠에는 이런 옷들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라면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게이들의 코드가 패션에 관심이 많은 메트로섹슈얼을 거쳐 일반 남성의 세계로 편입된 데 반해, 한국에서는 연예인, 구체적으로는 아이돌 그룹을 통한 대국민적 유행 현상이 됐다는 것이다.

"지금 아이돌 패션은 거의 다 게이 패션이라고 보면 돼요. 어떻게 보면 너무 당연한 일이죠. 게이들이 만든 옷을, 게이 또는 게이 친화적인 스타일리스트들이 코디하는 거니까요."

빅뱅의 반짝거리는 핑크 가죽 재킷, 알록달록한 프린트, 선글라스, 큼직한 액세서리 등은 전형적인 게이들의 클럽 룩이다. 샤이니의 얄쌍한 스키니 팬츠와 핑크, 민트, 오렌지 등의 비타민 컬러, 역시 일명 보텀(bottom: 여성 역할을 하는 게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셔츠를 찢거나 런닝톱을 걷어 올려 복근을 보여주는 2pm의 퍼포먼스는 게이 고고보이(게이 클럽에서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무대 위에서 반라로 춤을 추는 무희들)들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요즘 아이돌이라면 일단 하고 보는 스모키 메이크업 역시 말할 것도 없다.

한국 남자들의 감수성 및 패션 센스 향상으로 이런 패션이 수용된 것이라면 참 좋겠지만 (또 그것이 일부 사실이기도 하지만), 여기에는 한국의 집단적 성향을 무시할 수 없다. 뭐든지 같이 해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들의 특성상 하나가 뜨면 우르르 따라 입는 것이다.

캘빈클라인 팬티가 유행했을 때에도 그 유래인 게이들의 미적 감각에 동의하고 감탄해서라기보다는, 'TV에 나오는 애들이 그렇게 입어서, 안 입으면 뒤처지니까, 또는 시장에 나와 있는 게 죄다 그 짝퉁뿐이라서'라는 이유로 입는 남자들이 상당수였다. 스키니 팬츠 역시 유행이라 입었을 뿐 그 창시자인 에디 슬리먼의 성적 정체성이나 메시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감각은 사라지고 아이템만 남았다.

거리에서는 직업, 나이, 취향에 관계 없이 동시에 똑같은 게이 아이템으로 치장한 남자들을 볼 수 있게 됐고 외국인들은 한국의 개방성(?)에 놀라워했다.

"게이 패션이 어디 있어요? 패션이 게이 것인데."

황의건 이사는 게이 패션을 스키니 팬츠나 V-넥 티셔츠에 한정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의 말대로 사실 패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옷들은 전부 게이로부터 시작된다. 오직 수트나 폴로 스타일의 아이비리그 패션처럼, 트렌드라는 것이 따로 없는 정체된 의복만이 스트레이트(이성애자)들의 것이다.

이는 전세계 하이패션 업계를 틀어쥐고 있는 이들의 대다수가 게이라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그에 따르면 노골적으로 섹시한 돌체앤가바나뿐 아니라 성적인 느낌이 배제된 릭 오웬의 저승사자 같은 옷도 게이 패션이다. 게이가 만드는 옷, 게이가 입는 옷, 게이의 감각을 사랑하는 이들이 선택한 옷, 심지어 게이가 만드는 여성복까지, 모든 것이 게이 패션의 범주에 들어간다.

1년 내내 클래식 수트만 입고 있는 남자가 아니라면 사실상 게이 패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기왕 모든 패션이 게이의 것이라면, 유행처럼 단편적으로 좇으려는 강박을 버리고 향유하는 자세를 가져 보는 건 어떨까? 그들의 탁월한 미적 감각을 즐겁게 참고하되,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하는 식으로. 모든 남자들의 목에서 한결 같이 십자가 목걸이가 달랑거리는 경악스러운 광경이 더 이상 연출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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