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재 노르웨이 풍경화전] 웅장한 피오르드 지형과 설경 등 특유의 화풍으로 담아내

'산의 화가' 김영재 화백(81)의 '푸른 산' 앞에 서면 지극한 맑음과 경건함에 마음을 다잡게 된다. 그리고 은은히 전해오는 포근한 정취에 어느새 편안함이 자리한다. 김 화백 작품이 지닌 고유한 미덕이자 특징이다.

30여 년간 '산 그림'에 전념해온 김 화백이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 '노르웨이 산'으로 신선한 감동을 전하고 있다. 작년 3월 디드릭 톤셋 주한 노르웨이 대사의 초청으로 12일간 노르웨이를 여행하며 느낀 웅장한 피오르 지형과 설경들을 특유의 화풍으로 담아낸 것이다.

단순한 형태와 구도, 푸른 색이 주조를 이룬 특성에, 깎은 듯한 직선의 산세와 이국적인 분위기가 묘한 조화를 이뤄 색다른 감흥을 준다.

톤셋 대사는 "김 화백 작품은 내가 오랫동안 꿈꾸던 노르웨이 산들의 이미지와 너무나 일치한다"며 "자연주의와 추상성이 섞인 작품들은 독특한 매력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김 화백의 산 작품이 주목받는 것은 산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독특하게 창조하기 때문이다. 삶의 두께에서 잉태된 푸른 색과 지난한 몸의 체험, 그리고 마음으로 그리는 영혼을 버무린 작업이라는 점이다.

김 화백은 80년대 이전엔 주로 강(江)을 주제로 그려 '강변 화가'로 불리기도 했지만, 1979년 알프스에 올라 만년설 비경을 체험하고 <몽블랑> 작품으로 남긴 후 꾸준하게 산을 그리면서 '산의 화가'로 자리매김했다.

설악산, 지리산, 태백산과 같은 국내의 명산에서부터 히말라야산맥, 아프리카의 최고봉 킬리만자로, 남미의 안데스산맥과 아르헨티나의 아콩카과산, 모로코의 투브칼 산 등 전 세계 명산을 섭렵하면서 이를 작품으로 옮겼다.

그의 산은 지극히 단순한 형태에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보이지 않고 푸른 물감을 풀어놓은 듯 온통 푸른 색깔만 감돌 뿐이다. '푸른 산'이 김 화백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이유다.

"청정 지역에서 산을 바라보면 푸른 색이 나와요. 산이 푸르러서가 아니라 공기가 빛과 어우러져 푸른 색광을 내는 것인데, 나는 그것을 최고의 색으로 봤어요."

김 화백은 청정한 지리산, 알프스에서 그러한 푸른색의 경험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푸른 색의 산은 산 자체의 색이라기보다 내 마음의 색"이라고 말했다.

그의 작품 속 산은 '마음속의 그림'으로 '자연의 내면적 본색을 나타낸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이구열 한국근대미술연구소 소장이 "김영재의 산 그림은 대자연의 본색미와 외경미를 표현하고 있다"고 한 평가와 통한다.

이번 <노르웨이 풍경화전>에서 노르웨이 산은 지역의 특성이 외부로 드러나 있지만 김 화백이 그려낸 마음의 산에 안기어 경건함에 시각적인 즐거움을 더한다.

겹겹이 이어진 산은 코발트블루의 짙푸른 청색에서 청회색, 자회색, 회색을 띠고, 설산의 흰색까지 더해져 쾌청한 느낌과 함께 별세계에 와있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김 화백 작품에 내재된 '현장성'과 '치열성'이 한 몫을 한 까닭이다. 이번 전시의 노르웨이 산은 김 화백이 영하 20도의 요툰하이멘 산군을 스노우 스쿠터로 직접 올라서서 본 생생한 감동을 옮긴 것이다.

"산을 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 인간의 영역이 아닌 신의 경계에 들어선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그 때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는데 작품에는 최고의 경지이지요."

어쩌면 김 화백에게 산 그림은 구도의 과정인지도 모른다. 작품에서 전해지는 경건함이 그러한 배경 때문은 아닌지. 인생의 관조와 숭고함을 느끼게 한다. 전시는 11월 20일까지. 02-734-0458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