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 헤밍웨이, 멜빌 작품 연극, 뮤지컬로 선보여

연극 '악령'
관객들은 옛날 이야기와 동시대 이야기 중 어느 쪽을 좋아할까. 최근 몇 년 동안의 추세를 보면 꾸준히 무대에 올려지고 있는 작품들은 옛날 이야기 쪽이 많다. 셰익스피어와 체호프의 텍스트들이 대표적이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변주되는 셰익스피어의 텍스트의 인기는 끝이 보이지 않고, <바냐 아저씨>, <세자매>, <숲귀신> 등 체호프의 원작들 역시 만만치 않은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시대의 유행이 된 만화-영화-공연을 넘나드는 '원 소스 멀티 유즈(OSMU)'와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OSMU가 주로 대중적 흥행에 목표를 두고 있는 반면, 오랫동안 작가주의가 주도해온 공연계에서의 변주는 예술성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 셰익스피어와 체호프의 텍스트들이 기획자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 새로운 고전 명작들에 대한 도전이 서서히 시작되고 있다. 도스토옙스키, 헤밍웨이, 멜빌 등 대가들의 작품이 잇따라 연극과 뮤지컬로 옮겨져 개막을 기다리고 있다.

'죄와 벌'은 잊어라, 새로운 도스토옙스키와의 만남

연극 '백치와 백지'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두 편의 신작은 국내 초연으로 연극무대에 선다. 8일부터 예술의 전당에서 초연되는 <악령>은 도스토옙스키의 원작 소설을 알베르 카뮈가 3막 22장으로 각색한 작품. 과도기 러시아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고뇌를 다룬 이 작품은 주인공 스따브로긴 내면을 정신분석가처럼 섬세하고 예리한 시선으로 들여다보며 인간 존재를 파헤친다.

하지만 극단 피악과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공동제작으로 선보이는 이번 공연에서의 <악령>은 추상적인 관념만을 좇는 연극은 아니다. 오히려 이 공연의 화두는 '몸'이다.

그동안 극적인 이미지와 다양한 움직임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연출을 시도해온 극단 피악은 <악령>을 '씨어터 댄스'로 표현하며 문학과 연극이 경계없이 어우러지는 새로운 미학을 선보인다.

원더스페이스에서는 또 하나의 도스토옙스키 소설 <백치>가 <백치와 백지(The Idiot & the Fool)>로 국내 무대에 처음으로 공개된다. 지난해 알몸 연극으로 대학로에 새로운 화두를 던졌던 극단 서울공장의 임형택 대표와 러시아의 안드레이 세리바노프가 공동으로 연출해 이질적인 두 사회의 공통적인 감성을 나눈다.

이 작품은 '바보'에 대한 시대적 고찰이다. 바보는 누구에게나 구박을 당하는 천덕꾸러기이거나 만만한 화풀이 대상이다. 하지만 동시에 없으면 불안한 존재이기도 하다. 러시아와 한국이라는 다른 공간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바보문화를 다루며, 연극은 우리 주위에 늘 존재하지만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치고 마는 구원자의 존재를 상징적으로 그려낸다.

뮤지컬 '모비딕'
, 뮤지컬 '노인과 바다'?

CJ 문화재단은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Moby Dick)>을 뮤지컬로 만들고 있다. 그동안 뮤지컬 창작 신인들의 신작 개발을 지원해온 CJ 크리에이티브 마인즈가 그 첫 작품으로 내놓은 작품이 '액터-뮤지션(Actor-Musician) 뮤지컬' <모비딕>이다.

액터-뮤지션 뮤지컬은 배우가 연기와 노래는 물론 악기 연주까지 수행하는 콘셉트로, 해외에서는 <스위니 토드>와 <컴퍼니> 등을 통해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 형식을 일부 차용한 <헤드윅>이나 <펌프 보이즈> 같은 작품들이 소개된 바 있다.

하지만 이들 작품이 록 뮤지컬이라는 형식과 내용으로 악기 연주를 하나의 개연성 있는 설정으로 처리했다면, 뮤지컬 <모비딕>은 악기 연주가 극 전개와 캐릭터의 표현에 필수적인 본격 액터-뮤지션 뮤지컬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요성은 배우들의 일면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모비딕 역은 더블베이시스트, 이슈마엘은 피아니스트, 그리고 에이허브 선장 역은 첼리스트가 맡는 등 주요 배역을 클래식 연주자들이 맡고 있다. 이들이 연주하고 노래하는 14곡의 뮤지컬 넘버들은 그대로 2시간 동안 읽는 <모비딕>이 된다.

한편 헤밍웨이의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노인과 바다>는 세계 최초로 국내에서 무대화되어 관객들에게 공개된다.

패배로 점철된 삶을 살아온 독거 노인 산티아고가 바다 한가운데에서 외로움과 절대 고독에 맞서 싸우는 내용을 담은 <노인과 바다>는 세상에 맞서 싸우라는 희망과 도전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오늘날에도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뮤지컬과 연극을 접목한 형태로 공연되는 이번 <노인과 바다> 역시 원작의 목소리를 그대로 담아낸다. 수년 동안 계속되고 있는 불황과 취업난으로 삶의 여유를 읽어버린 현대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원작에서 소년이었던 조수는 이 작품에서는 어엿한 청년이 되어 노인의 도전과 좌절을 전지적 시점으로 관객에게 전달한다.

지루한 '권장도서'였던 고전 명작들은 무대로 옮겨지면서 고리타분한 이미지는 벗고 현대적 감성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탄탄한 예술성은 물론, 대중적 소구력까지 갖춘 고전 명작 공연들의 출현은 한동안 관객들의 기대와 관심을 모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