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 퍼포먼스서 전통예술, 재즈, 영화음악으로 확산

'바람곶'
"저희는 지금 브라질 상파울루에 와 있습니다." 지난 11월 초, 12시간 시차의 지구 반대편에서 국악그룹 거문고 팩토리는 이메일로 근황을 전해왔다.

그들은 5주 동안 브라질의 다섯 개 도시를 투어하며 공연은 물론 현지의 뮤지션들과 공동 창작과 워크숍 등의 활동을 하게 된다고 했다. 국악그룹의 브라질행은 여행이나 개인적인 문화체험이 아닌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제공하는 해외 레지던시 프로그램 선정으로 가능했다.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조앙 질베르토와 같은 보사노바 거장, 음악인들의 꿈의 고향이라는 바이아, 그리고 삼바 등으로 유명한 브라질은 혼종의 음악적 자산이 풍부한 곳이다.

프로그램을 짠 예술경영지원센터는 당초 한국의 전통예술단체가 전통음악 전파뿐 아니라 브라질 도시 곳곳에 조각난 음악자산을 어떻게 '패치워크' 할 것인가에도 상당한 무게 중심을 뒀다. 거문고 팩토리는 5주간 월드뮤직의 보고에서 세계인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한국적 월드뮤직이 탄생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올해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시작한 '전통예술 해외 레지던시 프로그램'에는 개별적으로 프로젝트를 구성한 4팀과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프로그램을 구성해준 5팀이 선정됐다. 그들은 브라질 외에도 캐나다 토론토,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뉴욕, 프랑스 파리, 인도 첸나이, 독일 베를린, 대만 타이페이 등지에서 일정 기간 현재 머물고 있거나, 조만간 머물 예정이다.

'거문고 팩토리'
지난해까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장르를 불문하고 재정 지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온 해외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올해부터 전통예술분야만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맡게 됐다. 언어 장벽으로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탓이다. 또한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지금껏 쌓아온 풍부한 해외 네트워크가 도움이 되리란 판단에서다.

"일본과 인도는 이미 1970~80년대부터 해외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해외에 자국 문화를 알려왔다. 인도는 명인들을 해외에 체류하도록 했고, 일본 역시 가부키를 세계 주요 예술 공연 거점에 전파해 지속적으로 노출을 시켜왔다.

이번 프로그램은 해외 네트워크가 큰 도움이 됐는데, 우리는 공연이 협업 작업이라는 특징을 살려 그동안 개인으로만 제한됐던 것을 팀으로 확대했다." 예술경영지원센터 국제사업부 우연 팀장의 설명이다.

문학이나 미술 분야에 치중되어 있던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공연계에서도 점차 활기를 띠고 있다. 공연예술에 대한 지원은 그동안 재정 지원에 그쳤으나 점차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예술적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서포트하는 방식으로 확장되고 있다.

물론 무용 분야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다른 공연예술 장르에 비해 활발한 편이다.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는 다국적 레지던시 프로젝트 '댄스익스체인지'를, 국제현대무용제 모다페 역시 '국제 레지던시'을 지속적으로 꾸려왔다.

안무가 밝넝쿨의 '텐빌리지'
경기문화재단에서 한시적으로 운영됐던 무용 레지던시 프로그램 '땅따먹기 프로젝트'에 이어 올해 4월에는 국내 무용수들 12인이 3주간 미술관에 거주하며 색다른 움직임을 만들어낸 <미술관, 속을 뒤집다>(LDP무용단@국립현대미술관)가 펼쳐지기도 했다.

이제 무용이나 퍼포먼스 등에 한정되었던 공연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전통예술, 재즈, 영화음악 등 경계를 불문한 장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2006년 처음, 아티스트 인큐베이팅(레지던시-I)으로 시작된 LIG아트홀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2009년 글로벌 공동창작 레지던시(레지던시 G), 2010년 2년간의 장기 레지던시(레지던시-L) 프로그램으로 다각화됐다.

여타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재정지원과 더불어 '일정 기간 체류'에 방점을 찍고 있다면 LIG아트홀은 일정기간 연습공간 제공, 공연 무대 제공, 홍보 지원 등 극장의 특성을 살렸다. 신진 창작자들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인큐베이팅에서 확장된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2년간의 장기 레지던시는 국내 중견 공연예술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현재 3명의 예술인이 초청됐다. 영화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 <전우치> 등의 음악감독을 맡았던 장영규, 초현실적이고 환상적 무대를 연출하는 연출가 강화정, 무용계의 주목받는 안무가 밝넝쿨이 그들이다.

영화감독 장영규의 공연
이들은 지난 6월과 7월 각각 한 차례씩 실험적이고 독특한 무대를 선보였고 이어 다음 작품을 준비 중이다.

밝넝쿨은 <텐 빌리지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글로벌 댄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지난여름엔 국내 프로젝트만 완성한 상태다. 코스타리카-세네갈-한국-폴란드-네델란드 등 5개국의 50개 마을을 찾아가는 이 프로젝트는 전 세계적으로 문화예술 소외지역을 찾아 다닌다.

지역 관객들에게 다양한 문화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기획되었는데, 국내 소도시 10개 마을에서 공연이 올려졌다. 이 프로젝트엔 밝넝쿨과 함께 세계적인 안무가 다비드 잠브라노, 무용수 호라치오 마쿠아쿠아, 에디발도 에르네스토가 함께했다.

지난해 처음 생긴 레지던시-G는 국내와 해외 예술인의 협업 및 쇼케이스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해외와 국내 예술인이 2~3개월간 공동 창작을 하며 발표하는 식이다.

이번에 초청된 재즈 보컬 나윤선은 11월 24일부터 27일까지, 세계적인 하피스트 이자벨 올리비에, 베이스 연주자이자 일렉트로 뮤지션인 올리비에 상스, 색소포니스트 올리비에 피와 함께 재즈라는 장르를 넘어 새로운 음악세계를 선보일 예정이다.

거문고 팩토리 인터뷰

해외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무엇을 기대하고 있나.

팀 결성 5년 차에 들어오면서 새로운 음악적 자극이 필요해 지원했다. 전통공연예술팀이 해외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한 경우가 처음이라 시행착오가 없을 수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번 기회를 통해 브라질 아티스트들과 교류할 수 있는 통로를 개척하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삼고 노력 중이다.

브라질 5개 도시를 순회한다고 들었다. 그곳의 문화적, 음악적 분위기를 전해준다면.

버스에서 아이들끼리 악기로 삼바리듬을 연주할 정도로 음악적 자산이 풍부한 곳이다. 브라질 북동부 Fortaleza라는 도시에 머무는 동안 이곳의 전통리듬인 '바라카두'을 접했는데 전혀 생소하지 않았다. 그들 역시 우리의 5박 리듬을 어려워하지 않았다.

한국 전통음악과 전통악기가 브라질 아티스트들에게 처음 소개되다 보니 굉장한 관심을 보인다. 특히 산조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지역마다 전통리듬이 있어서 어느 하나를 브라질의 대표 리듬이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것을 현지에 와서야 알았다.

어떤 일정들이 남아 있나.

현지 방송출연, 브라질 남부 축제 등에서의 워크샵과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이곳에서 음악적인 영감을 많이 얻어 한국에 돌아가게 되면 좋은 작업들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무엇보다 이들과의 지속적인 교류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저희가 얻은 음악적 네트워크와 정보를 하루빨리 한국의 단체들과 관객분들과 공유할 수 있었으면 한다. 또 브라질 아티스트들이 한국에서 체류하는 방식의 쌍방향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도 전한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