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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의 시대' 오페라 변화의 바람

주도권 지휘자서 연출자로, 미니멀한 무대, 사실적 장면, 원작에 충실하게
  • 올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오른 오페라 <블루>
국정감사가 한창이던 지난 10월, 난데없이 오페라 DVD의 등급 심의가 도마 위에 올랐다. 영상물등급심의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거의 모든 오페라 DVD가 '전체관람가'이거나 아예 등급표시조차 안 되어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문제는 장면이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임에도 무사 통과됐다는 사실이다. 여성의 상반신이 노출되거나 성매매가 연상되는 장면, 흉기로 살인하는 장면 등이다.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이 같은 장면은 그동안 오페라 무대에서 볼 수 없던 것들이다. 클래식의 한 장르로 분류돼 기품 있고 우아한 이미지를 가져온 오페라가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반대로 이 같은 문제에 대한 지적은 최근 오페라의 변화를 가늠케 한다.

가장 도발적인 오페라를 선보이는 잘츠부르크 오페라 페스티벌에선 2007년 란제리 회사의 협찬을 받아 여성 출연진이 속옷 차림으로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를 공연했다.

그런가 하면 2006년 코벤트 가든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된 오페라 <카르멘>에서는 카르멘이 가슴과 엉덩이를 호세의 몸에 밀착시키며 유혹하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 시카고 리릭 오페라단의 베를리오즈의 <파우스트의 겁벌>
무대 위에서 노출하지 않았던 여주인공들조차 목욕 장면에서 상반신을 심심찮게 드러낸다. 한국의 무대도 다르지 않다. 지난달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된 <메피스토펠레>에서도 남녀 배우가 서로의 몸을 노골적으로 더듬거나 거대한 페니스 모형을 속옷 밖으로 붙이고 성애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에로티시즘이 오페라의 현대적 연출의 전부는 아니다.

지금의 오페라를 연출의 시대라고 한다. 스타 지휘자가 아니고서야 오페라 무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연출가가 성악가 캐스팅부터 오페라 무대, 의상, 조명 디자인까지 총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연출가 역시 성악가나 연주자 출신보다는 연극 연출이나 영화 감독들이 맡는 경우도 흔하다. 페터 콘비츠니, 데이비드 맥비커, 빌리 데커, 로버트 카슨 등이 가장 도발적인 연출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 오페라 무대에 현대적 연출이 시도된 것은 최근 1~2년에 불과하다. 국립오페라단이 초연작 위주로 현대적 연출을 선보이고 있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반반이다. 세계적 트렌드를 받아들인다는 점과 객석에 앉은 관객들의 감성을 무대에서 적극 수용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반면 지금까지 관객들을 지배해온 '오페라'라는 장르에 대한 기대를 허물어뜨린다는 점에 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이러한 연출이 낯선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오페라라는 장르가 수입된 지 60여 년에 불과하니 새로운 자극을 받아들일 만큼 국내 관객들이 정통 오페라 역시 충분히 즐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 국립오페라단에서 공연한 오페라 <메피스토펠레>
가장 먼저 오페라 무대가 변하기 시작한 곳은 유럽이다. 이미 1970년대에 전위적인 오페라 연출이 시작되었다. 객석에서 젊은 관객들을 찾아볼 수 없다는 데에서 시작된 자구책이기도 했지만 그 이전에 오페라의 본령에 대한 고민이 있다.

400여 년 전, 르네상스 말기에 탄생한 오페라의 모태는 종합예술인 그리스 연극이다. 그리스 연극을 부활시키며 오페라가 생겨났지만 그 중심은 노래가 되고 말았다. 무대 위 성악가들은 누가 기교를 잘 부리느냐에 주목했고 누가 더 높이 고음을 처리하느냐에 관객들이 열광했다. 오랜 세월 오페라 제작의 전권은 음악을 총책임지는 지휘자에게 있었다.

현대에 들어오면서 고대 그리스 연극으로 돌아가자는 의식이 생겨났고 자연스럽게 오페라의 주도권은 연출가에게 쥐어졌다. 연극의 전통이 강한 독일과 영국, 스웨덴, 노르웨이에서 특히 이런 변화는 크게 나타난다. 하물며 보수적인 관객이 가장 많이 모이는 미국의 메트로폴리탄까지도 2000년대부터는 적극적으로 현대적 연출을 포용하고 있다.

여기에 음반시장이 축소되면서 클래식 음악 산업이 DVD로 넘어오면서 '보는 오페라'의 추세는 가속화됐다. 연출가의 입김이 세지면서 노래보다는 비주얼에 비중을 두면서 노래는 기본, 미모까지 겸비한 소프라노들이 무대에서 득세하고 있다. 안나 네트렙코, 안젤라 게오르규, 캐서린 젠킨스, 케이트 로열은 가장 사랑받는 프리마 돈나다.

오페라의 현대적 연출의 특징은 몇 가지로 축약된다. 가장 큰 변화는 미니멀한 무대. 시대 배경을 알려주는 무대디자인 자리에 조명과 첨단 영상이 들어섰다. 덕분에 초현실적이고 몽환적인 공간 연출이 가능하게 됐다.

무대의 축소 덕에 제작비가 절감될 것 같지만 그 자리를 첨단 기술이 차지하면서 전체적인 제작비에는 거의 변화가 없다. 무대가 간소화된 만큼 성악가의 연기는 더 중요해졌다. 과거 성악적 기량을 효과적으로 뽑아낼 수 있는 자세로 서서 노래했다면 지금은 러닝머신을 하면서 아리아를 부르기도 한다.

또한 무대 뒤 비명이나 붉은색 조명으로 간접적으로 드러낸 살인 장면이나 에로틱 장면도 사실적으로 바뀌었다. 고풍스럽고 화려한 의상 역시 지금 우리가 입는 평상복과 같은 간소한 복장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변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긍정적인 변화는 이 같은 연출을 통해 보다 원작에 충실해진다는 데에 있다. 대표적인 희극적 오페라 중 하나인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은 본래 신분제도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다.

오랜 시간이 흘러오면서 떠들썩하고 유쾌한 오페라로만 받아들였던 현대 관객들에게 충격요법을 통해 원작에 한층 가까이 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는 셈이다. 더불어 현실과 큰 괴리감이 느껴지지 않는 연출은 젊은 관객들을 오페라 무대로 불러들이고 있다. 유럽은 물론 국내 오페라 관객들의 나이도 40-50대에서 30대로 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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