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뮤지컬단의 , 연극 눈길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노년의 성과 사랑이 자주 회자되고 있다. 그동안 노년의 연애를 종종 소재화했던 드라마에서는 그것을 일종의 '죄악'처럼 다루다 최근 조금씩 태도 변화를 보이고 있다.

'야동 순재'의 인기는 노인들도 젊은이들처럼 여전히 이성에 관심이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하게 했다. 노년의 연애는 '주책'이기보다 '늦게 온 사랑'이라는 시선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원작 만화와 연극에 이어 영화로 개봉을 앞둔 <그대를 사랑합니다>도 노년의 로맨스를 서글픈 정서와 함께 풋풋한 사랑으로 그리며 또 한번의 감동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노인을 정상적인 인간의 본능과 삶에서 제외시키는 편견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래서 이런 편견에 맞서기라도 하듯 황혼기의 연애 감정을 건강하게 다루고 있는 작품들이 출현하고 있다. 특히 젊은 배우들이 노인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노년의 배우들이 자기 나이대의 인물을 연기하면서 스스로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뮤지컬보다 아름다운 노년배우들의 인생

연극 <엄마가 결혼한다>
지난 17일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에서 공연된 <아름다운 인생>은 65세 이상 단원으로 구성된 실버뮤지컬단이 올린 창작뮤지컬이었다. 부부 동반으로 콜라텍에 놀러 갔던 세 남자가 각자의 첫사랑이 한 여자였음을 우연히 알게 되고, 추억을 되살리려 옛 사랑을 찾는 여행을 하는 내용이다.

마치 <맘마미아>에 약간의 시점 변화를 준 것처럼 이 작품은 시종일관 즐겁고 경쾌하다. 노래도 아바의 명곡들이 개사된 버전으로 흥겹게 이어진다. 추억과 사랑에 초점이 맞춰진 채 진행되는 내용에선 관객들이 이들의 여정에 즐겁게 동참할 수 있도록 한 연출상의 배려가 느껴진다.

하지만 작품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실제 배우들의 삶이다. 5명이라는 적은 인원으로 구성된 이 단체는 지난해 전국 최초로 중구청이 창단한 구립실버뮤지컬단이다. 각각 66, 67세인 여성단원 두 명과 올해 칠순과 팔순을 맞은 세 명의 남성단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구인을 대상으로 한 오디션에서 선발된 단원들은 '배우 인생' 2년차를 보내고 있다. 권영국 씨(70)는 "자녀들을 다 결혼시키고 이제야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 보람된 노후를 보내야겠다는 생각에서 배우의 길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천혜자 씨(67)는 "노인들이 무슨 뮤지컬이야? 라는 사람들의 생각을 깨기 위해서 나섰다"고 배우 인생의 시작을 밝힌다.

단원들의 나이와 인원, 예산 등의 문제로 실버뮤지컬단이 1년에 공연하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정기공연 한 차례와 찾아가는 공연 한 차례뿐이다. 올해는 예산 문제로 그나마도 무산될 뻔했다. 하지만 김숙희 단장 이하 모든 단원들이 자신들의 급여를 반납하면서까지 공연을 원해 이번 공연도 성사될 수 있었다.

중구구립실버뮤지컬단의 <아름다운 인생>
이만큼 열정적으로 공연에 임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이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연출을 맡은 김숙희 단장은 "젊은 사람들의 독립이 늦어지면서 노인들이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게 늦어졌다"고 진단하며 "이 시점에서 노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게 무엇인가 단원들과 얘기를 나누다 이 작품의 대본이 자연스레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늙은 엄마는 연애하면 왜 안 될까

박진표 감독의 <죽어도 좋아>(2002)는 당시 노년의 사랑과 성 문제에 정면 도전하며 화제가 됐다. 70대의 두 노인 남녀가 성행위를 하는 장면을 그대로 담은 영화는 노인의 삶에 대한 편견을 송두리째 뿌리 뽑는다. 영화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사랑을 나눠도 노인들은 그렇게 사랑을 나누지 않을 것이라는 사람들의 편견을 박살낸다.

27일부터 공연되는 연극 <엄마가 결혼한대>에서는 이 노인들의 성과 연애 문제를 중심적으로 다룬다. 연극은 80세인 엄마가 100세인 할아버지와 연애하는 이야기를 발랄하게 그리며 노년의 사랑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묻는다.

최근 공연계의 주 이슈인 '엄마'가 희생과 헌신의 아이콘이었다면, 이 작품에서는 엄마를 전통적인 '어머니'가 아닌 한 사람의 여자로 그려 눈길을 끈다.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 <위험한 사돈> 등 영화감독으로 더 유명한 앤드류 버그만의 86년작이 원작인 이 연극은 원래 미국의 중산층 가정에서 충분히 일어날 법한 상황을 담고 있다. 이번 공연에도 참여하는 배우 정명철은 이를 직접 번역해 2010년을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상황에 맞게 각색해 익살을 가미했다.

특히 이 작품에서 노인들의 성 문제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난처함은 그대로 오늘날 한국사회의 시선을 그대로 보여준다. 중년의 두 딸에게 거동이 불편한 엄마 소피는 단지 돌봐야 할 존재일 뿐이다.

특히 큰 딸 투루디에게 늙은 엄마의 연애는 이제 막 청년기에 접어든 딸의 연애와 성 못지않게 피하고 싶은 사건이다. 노모, 여동생 부부, 딸 등 주변 인물들의 문제를 바라보는 투루디의 시선은 그대로 관객들의 입장과 중첩되어 공감을 준다.

극중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들도 김금지, 우상전 등 연극계의 원로배우들이다. 김성노 연출가는 "배역과 비슷한 연령층의 연들은 극의 자연스러움을 배가시킬 것"이라며 "노인들의 성 문제는 소가족 제도 안에서 우리가 이미 겪고 고민하는 문제이듯이, 번역극에서 오는 이질감 대신 현재 우리의 이야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