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 오마주] 작가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제목, 배경, 대사 등 인용한 소설ㆍ시 많아

박태원 작가
'소설가 구보는 유명하다. 1930년대에 박태원에 의해서 처음 만들어진 후, 1970년대 최인훈에 의해서, 1990년대 주인석에 의해서 두 번이나 더 부활했던 작품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이제 네 번째 환생을 앞두고 있다. 구보는 많다. 이미 상품이 되었기 때문이다.'

윤고은의 장편 <무중력 증후군>의 한 대목이다. 이 소설의 4장 제목 역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다. 주인공의 설명처럼, 우리 문학계에는 "30년 마다 소설가 구보가 등장"(53페이지)한다. 그리고 소설에서 주인공의 친구로 등장하는 구보 역시 을 쓰고 있다.

영화에서 존경의 표시로 다른 작품의 주요 장면이나 대사를 인용하는 것을 일컫는 말 '오마주(hommage)'는 이제 영화를 넘어 소설, 시, 드라마 등 다른 장르에서도 두루 쓰인다.

예술 작품에서 반복, 변주되는 작가와 작품들. 작가가 작가에게 보내는 오마주를 소개한다.

벌써 몇 번째에요?

시계방향으로 최승호 시인, 윤대녕 소설가, 이청준 소설가, 정진규 시인
앞서 에서 소개한 소설가 최인훈부터 시작해보자. 최인훈은 박태원의 단편 (1934)을 1960~70년대를 배경으로 재해석한 연작 장편 을 썼다.

만년의 대작인 <화두>의 주요 모티프는 조명희의 소설 <낙동강>(1927)이다. 물론 그에게 오마주를 보낸 후배 작가도 있다. 고종석의 장편 <독고준>은 최인훈의 장편 <회색인>과 <서유기>에 바치는 오마주 같은 소설이다. 책의 제목부터 최인훈의 두 소설 주인공 이름에서 따왔다.

<회색인>과 <서유기>가 소설가를 꿈꾸는 사변적인 대학생 독고준을 그린다면, 고종석의 소설 <독고준>은 대학을 졸업하고 소설가로 일가를 이룬 장년의 독고준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소설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소위 '참여문학파'와 '순수문학파' 양쪽으로부터 '회색인'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는 작가 최인훈의 문단 내 위치를 은유하고 있다.

시계방향으로 김승옥 소설가, 공지영 소설가, 최승자 시인, 신경숙 소설가
<구보씨> 만큼이나 무한 변주되는 작품이 김승옥의 소설 <서울, 1964년 겨울>이다. 이 소설을 모티프로 전진우가 <서울, 1986년 여름>을, 임영태가 <서울 1994년 여름>을 쓴 바 있다. 김승옥의 소설을 각각 1980년, 1990년대의 시대 상황으로 바꿔 인간 소외를 이야기한다.

소설의 얼개구도나 주인공을 그대로 따오는 경우도 있지만, 작품의 한 장면이나 배경, 대사를 차용하는 경우가 더 흔하다.

윤대녕의 단편소설집 <대설주의보>는 선배문인인 최승호의 동명의 시에서 제목을 따왔고, 신경숙의 장편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는 최승자의 시 '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를 변형시킨 제목이다.

공지영의 장편 <도가니>는 작가가 대학시절 감명깊게 봤던 아서 밀러의 연극 '크루서블'(The Crucible)에서 착상한 제목이다. 작가는 한국문학사에 있어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상징하는 작품인 김승옥의 단편소설 <무진기행>에서 작품의 구조를 차용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김승옥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이 소설의 배경 역시 무진시다.

이기호의 소설집<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에 수록된 단편 '나쁜 소설'은 윤대녕, '원주통신'은 박경리 선생에게 바치는 오마주다.

윤고은 소설가
소설가 정도상은 문인 개인의 삶을 한편의 소설로 썼다. 최근 펴낸 장편 <그 여자 전혜린>은 신화가 된 문인, 전혜린의 생을 쓴 작품이다. 작가는 순수하고 완전한 생을 꿈꾸었지만 시대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 스러진 작가 전혜린을 소설로 복원한다.

돌고 도는 이야기

장르를 시로 확장시키거나, 해외 작가로 눈을 돌리면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계간지 <시인세계>는 지난 해 겨울호에서 '내 시 속에 들어온 소설'이란 기획물을 실은 바 있다. 소설을 비롯해 다른 작가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은 시 14편을 소개한다. 일례로 조용미의 시 '종생기'는 1930년대 이상의 소설 <종생기>의 오마주이고, 천양희 시인의 시 '산행'은 양귀자의 소설 <숨은 꽃>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정진규의 시 '눈물'은 치매에 걸린 이청준 어머니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쓴 작품이다. 한 대목을 옮긴다.

최익훈 작가
'아들인 자신의 이름도 까맣게 잊은 채 손님 오셨구마 우리 집엔 빈 방도 많으니께 편히 쉬었다 가시오 잉 하시더라는 것이었는데'

소설가 이청준은 이 시를 다시 자신의 소설 <축제>에 인용했다.

이준규의 근간 시집 <토마토가 익어가는 계절>에 수록된 시 '문'은 김춘수를 다시 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수아의 대표작 <당나귀들>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이기도 한 J.M. 쿳시의 <엘리자베스 코스텔로>를 작품에서 인용하고 있는데, 주제적으로도 유사한 점이 많다.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집<대성당>을 우리말로 번역한 바 있는 소설가 김연수는 여러 단편소설을 통해 카버에 대한 오마주를 선보였다. 단편<모두에게 복된 새해를>는 <대성당>에 대한 오마주인데, 부제를 아예 '레이먼드 카버에게'로 달았다.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 역시 카버의 또 다른 소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을 떠올리게 한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이야기가 넘치는 지금, 예술가들은 왜 같은 작품을 반복해서 재생시키는 걸까? 앞서 <무중력 증후군>에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썼던 소설가 윤고은 씨에게 물었다. 윤 씨는 "구보는 작가들에게 상당히 매력적인 캐릭터"라고 답했다.

박태원의 소설 속 구보는 경성역에서 역사, 남대문 시장을 배회하며 사회의 단면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룸펜이다. 때문에 사회상을 드러내거나, 작가 자신을 작품에 투영시키기도 좋은 인물이라는 것이 윤 씨의 설명이다.

"구보란 캐릭터는 이제 보편적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독자가 제 작품속 '구보'를 읽을 때 1930년대 구보, 1960~70년대 구보를 자연스럽게 환기시킬거라고 짐작했어요. 때문에 변한 시대상을 드러낼 때도 효과적이라고 생각해 4장에서 썼습니다."

허윤진 문학평론가는 "작가마다 이유가 다르겠지만, 문학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는 일종의 자기 선언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문학, 즉 허구가 허구를 모방하게 함으로써 허구가 현실에 부차적으로 종속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드러내고, 문학을 비롯한 예술을 현실과 같은 위치에 올려두려는 시도라는 것.

이렇듯 예술가나 예술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인용, 재해석하는 작품을 '메타텍스트'라고 일컫는데 메타텍스트성은 특히 현대 예술이 즐겨 표현하는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다.

허윤진 평론가는 "이런 작품은 문학사나 문학장 안에서 '문학이 과연 무엇을 재현할 수 있는가'란 본질적인 물음을 묻게 한다. 때문에 문학사적인 야심이 있는 작가라면 메타텍스트적인 작업을 한 번쯤은 시도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