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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는 세월 속 변치 않는 추억의 맛

[Story in the Kitchen] (10) 설렁탕
백성과 임금 '상생음식', 부르주아의 해장국, 경찰서 특식, 서민의 보양식…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뜨끈한 국물이 생각난다. 뜨듯한 국에 밥 말아 김치를 곁들이면 다른 보양식이 필요 없다.

'소의 머리, 내장, 뼈다귀, 발, 도가니 따위를 푹 삶아서 만든 국. 또는 그 국에 밥을 만 음식.'

설렁탕의 계절이 왔다.

제주도도 아깝지 않다구

설렁탕의 어원에 여러 설이 있지만, '선농단(先農壇)' 연관설이 가장 유력하다. 조선시대 임금이 매년 음력 2월에 대신들을 이끌고 선농단에서 제사를 지내고 몸소 밭을 가는 시범을 보인 뒤, 제단에 바쳤던 소로 국을 끓여 나눠먹은 데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요컨대 '선농탕'이 '설렁탕'으로 변했다는 것. 홍선표는 <조선요리학>(1940)에서 이 설을 드라마틱하게 써두었다.

'세종대왕이 선농단에서 친경할 때 갑자기 심한 비가 내려서 촌보를 옮기지 못할 형편에다 배고픔에 못 견디어 친경 때 쓰던 농우를 잡아 맹물에 넣어 끓여서 먹으니 이것이 설농탕이 되었다.'

일제강점기 우리 소설에는 설렁탕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채만식부터 박태원까지 설렁탕은 작가의 문학적 스펙트럼을 아우르며 등장했다.

흔히 채만식의 소설을 '세태소설'이라 부르는데, 기실 채만식만큼 근대 조선의 사회풍속, 서민의 일상생활과 유행을 세밀하게 묘사한 작가도 드물다. 소설 <태평천하>에는 탕수육과 우동이 나오고, <탁류>에서는 온천 가서 맥주 마시며 밥 먹는 얘기가 나온다.

설렁탕은 그의 또 다른 작품 <금의 정열>에서 등장한다. 주인공 상문은 금광으로 돈을 번 신흥 부르주아다. 간밤에 술을 많이 먹고 아침에 해장을 하러 설렁탕집을 찾는다.

'상문은 우량과 혀밑을 곁들인 30전짜리 맛보기에다가 고춧가루를 한 숟갈 듬뿍, 파 양념은 두 숟갈, 소금을 반 숟갈, 후추까지 골고루 쳐가지고는 휘휘 저어서, 우선 국물을 걸찍하니 후루루후루루…'

이 설렁탕집 국물 맛이 어찌나 좋은지 손님들이 상하 없이 구름처럼 모여들지만, 작가는 이 '사태'를 걱정한다. 당시 위생 상태 때문.

'진실로, 그 맛에 있어서 천하일품인 설렁탕으로부터 '불결' 한 가지만 제거를 시켜버리는 '영웅'이 난다고 하면 그에게는 제주도 한 개쯤 떼어주어도 오히려 아깝지 않을 만큼 그 공이 크다고 할 것이다.'

박태원의 대표작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도 무력한 지식인, 구보가 종로 네거리에 있는 설렁탕집을 찾는 대목이 나온다.

'엇 옵쇼. 설렁탕 두 그릇만 주…. 구보가 노트를 내어놓고, 지기의 실례에 가까운 심방(尋訪)에 대한 변해(辨解)를 하였을 때, 여자는 순간에 얼굴이 붉어졌었다. 모르는 남자에게 정중한 인사를 받은 까닭만이 아닐 게다. 어제 어디 갔었니. 길옥신자(吉屋信子). 구보는 문득 그것들을 생각해 내고, 여자 모르게 빙그레 웃었다.

맞은편에 앉아 벗은 숟가락 든 손을 멈추고 빤히 구보를 바라보았다.'

박 반장, 설렁탕만 먹나?

상류층이 설렁탕을 애용한 건 영양가가 많아서일까?

이제 부르주아 해장국은 경찰서 전매특허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경찰서에서 실제로 수사할 때마다 설렁탕을 챙겨 먹고 챙겨 먹이는지는 모르겠지만, 영화 <공공의 적>부터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추격자>까지 형사가 나오는 영화, 특히 수사 장면에서 설렁탕은 어김없이 등장한다.

이런 클리셰(cliché, 진부한 표현)가 굳어진 건 아마, <수사반장>부터일 게다. 1971년부터 1989년까지 장장 19년에 걸쳐 방영됐던 이 드라마에서 박 반장(최불암 분)이하 김형사(김상순 분), 조형사(조경환 분), 남형사(남성훈 분)는 경찰서에서 무던히도 설렁탕을 먹어댔다.

형사는 물론이고 자백한 범인이나 사정 딱한 피의자들한테도 설렁탕을 배달시켜 먹이는 장면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소설에서는 80년대 운동권 인사의 수감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미장센처럼 등장한다.

'우리는 말을 끊었다. 그는 설렁탕을 그릇째 받들고 머리를 숙여 천천히 불어가면서 국물을 마셨다. 나도 말없이 떠넣는다. 국그릇을 꼭 잡고 있는 봉한의 손가락들은 새의 발처럼 보인다. 그 손톱 끝에 가늘게 낀 때가 선명하다' (황석영 <오래된 정원>)

'책상 위에는 곰탕 한 그릇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숟가락을 들긴 했지만 유일민은 전혀 식욕을 느낄 수가 없었다. 이런 상태에서도 먹어야 한다는 것이 마치 짐승이 되어버린 것처럼 굴욕스럽고 처참했다. (…) 억지로 먹으려고 애를 썼지만 유일민은 곰탕을 반도 먹지 못하고 숟가락을 놓았다. 어깨 넓은 남자는 새로운 수사관으로 잠시의 틈도 주지 않고 자리를 옮겨 앉았다' (조정래 <태백산맥>)

이 살풍경에서도 설렁탕을 먹고 먹이는 건, 출소 후 먹는 두부처럼, 값싸고 소화 잘 되고, 영양가 있는 음식이란 생각 때문일 게다. 기실, 부담 없는 보양식에 설렁탕만한 게 있을까. 설렁탕, 하면 떠오르는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은 설렁탕의 지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인력거꾼인 김첨지가 사간 설렁탕 한 그릇. 여기에서 설렁탕은 아픈 아내를 향한 김첨지의 정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설렁탕이 빚는 애틋함은 근대 조선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함민복 시인의 에세이 <눈물은 왜 짠가>에서 어머니가 내민 설렁탕은 김첨지의 설렁탕만큼이나 절박하게 다가온다. 함민복 시인이 어머니와 함께 설렁탕을 먹는데, 어머니가 식당 주인을 부른다. 소금을 많이 풀어 짜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한 뒤 몰래 아들 투가리에 부어 준다. 모르는 척 지켜보던 주인이 슬쩍 다가와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간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세월이 가면 입맛도 변하고, 음식도 바뀌기 마련이지만, 설렁탕의 모습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백성과 임금이 함께 먹는 '상생의 음식'일 때도, 부르주아의 해장국일 때도, 경찰서 특식과 서민 보양식일 때도 설렁탕은 '소뼈 우린 국물에 삶은 쇠고기를 넣는다'는 단순한 조리법에서 한 치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인의 식지 않는 설렁탕 애정은 '시간이 가도 변치 않은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만 같다. 오늘날 우리가 어쩌다 뜨듯한 국물이 생각날 때, 진공 팩에 든 설렁탕을 꾸역꾸역 먹는 것은(정이현 '타인의 고독') 그 옛날 아련한 맛을 재현하려는 애절한 몸짓이 아닐까.

'나는 그날 백칠십구 일 만에 집밖으로 나와서 먹은 설렁탕 맛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나는 설렁탕을 먹으며 내내 울었는데 그것은 어떤 반성 때문도 어떤 회한 때문도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설렁탕 속에 들어 있는 뜨거운 밥알들이 너무나 맛있었기 때문이다.' (김언수 <캐비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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