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 익숙한 장소의 숨겨진 이면 드러내며 '낯설게 하기' 시도

한강에서 사투를 벌이는 <괴물>의 가족들
익숙한 것이 문득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불안과 긴장은 이때 찾아온다. 어릴 적부터 같이 살아온 가족,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 등이 낯설게 느껴지면 공포마저 엄습해온다.

어떤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이기 위해 배경이나 장치를 통해 상황을 낯설게 만드는 기법을 '낯설게 하기'라고 한다. 이 기법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넘기기 쉬운 사실을 다시 한번 고민하게 한다. 본편적인 진실 이면의 것을 보게 하는 것이다.

도시를 기반으로 하는 많은 영화들은 바로 이 기법을 쓰고 있다. 진실이라고 믿고 있던 것이 깨지는 순간, 도시 공간은 불안감을 조성하고 긴장을 준다. 익숙한 일상 공간의 숨겨진 이면이 드러날 때, 관객은 상상력을 발동시켜 스스로 의미를 찾기 시작한다.

한강, 풍경에서 서사의 중심으로 뛰어들다

도시의 일상 공간은 현실에서나 영화에서나 그대로 전형화된 곳이다. 서울에서는 한강과 여의도, 종로가 그런 장소다. 사람들은 한강을 건너 출퇴근을 하고 주말이면 둔치에서 여가를 즐기며, 종로에서 약속을 해 술을 마신다. 여의도는 국회의사당으로 대표되는 곳으로, 방송가와 증권가의 또 다른 이름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풍자 <여의도>
특히 한강은 서울시민들이 늘 드나드는 공간이었다. 한강은 연인들의 데이트 공간이자 가족들의 휴양 공간이고 종착지를 연결하는 매개공간이었다. 한강은 강남과 강북을 구분 짓는 경계이자 서울을 상징하는 풍경으로 작용했다.

<괴물>은 이처럼 일상적 공간이었던 한강에 '괴물'이라는 극적인 모티프를 불어넣음으로써 낯선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영화 속 한강은 둔치에서 매점을 운영하던 한 가족이 정체불명의 괴물과 사투를 벌이고, 바이러스 또는 미 제국주의와도 싸우는 치열한 공간이다.

사소하고 일상적인 데서 출발해서 기괴하고 만화적인 설정으로 치닫는 봉준호식 판타지는 이 영화에서도 어김없이 일상의 한강을 비틀어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담아냈다.

김기덕 감독의 <악어>는 이보다 10년이나 먼저 '한강에 사는 괴물'을 그렸다. 영화는 한강을 배경으로 두 남녀의 이상한 사랑을 다루지만, 가까이서 본 한강의 수질처럼 이들의 인생도 피폐할 따름이다.

자살하려는 여자를 살려내 자신의 성적 욕망을 채우고 증오와 애정이 오가다 결국 죽음으로 귀착하는 남자에게 한강은 절망으로 가득한 세상이다.

평범하고도 낯선 종로 이야기 <극장전>
늘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한강의 야생성에 눈길을 둔 것이 이해준 감독의 <김씨 표류기>다. 1999년 이후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돼 한강에서 유일하게 출입이 통제된 밤섬은 경관으로서는 아름답지만 생활 공간으로는 위험한 곳이다.

영화는 이곳에 사람이 떨어짐으로써 생길 수 있는 이야기를 '도심 속 로빈슨 표류기'로 그리며 낯선 한강의 모습을 제시했다.

뻔하지 않은, 일상 공간의 이면을 들춰내다

"여의도는 뻔해. 국회 사람, 방송국 사람, 아니면 주식쟁이지 뭐."

12월 2일 개봉을 앞둔 <여의도>에서 한 여자는 여의도를 이렇게 표현한다. 이 말처럼 여의도는 직장인들에게는 삶의 터전이고, 가족들의 휴양 공간이다. 하지만 이런 일상적인 이미지를 깨트린 <괴물> 이후 여의도에도 특별한 사건이 벌어질 수 있다는 상상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절망의 공간이었던 <악어>의 한강
<여의도>는 바로 이 '낯선 공간'으로서의 여의도의 가능성에서 출발한다. 여의도의 전형성을 쉽게 단정짓는 여자의 대사 역시 이런 반전의 묘미를 위한 복선인 셈이다.

<여의도>는 한강 둔치와 주요 다리 밑을 배경으로 삼았던 <괴물>에 비해 훨씬 더 전형적인 증권가에 초점을 맞췄다. 여의도의 대표적인 이미지 중 하나인 증권가에서 어떤 특별한 사건이 벌어질수 있을까.

영화는 유약한 주인공과 그의 친구를 등장시켜 살인사건을 이어감으로써 평범한 심리 스릴러를 표방하는 듯하지만,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경고를 날리는 사회성 있는 주제로 이끌어간다.

한편 지금은 사라진 옛 피맛골 거리도, 늘 인파가 북적대는 종로3가도 낯설게 보이는 것이 홍상수 감독의 영화다. 그의 영화에선 비단 공간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인물들의 모습도 왠지 낯설다. 전혀 새로운 유형이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관객 내면의 숨겨진 모습을 그대로 캐릭터에 투영한 까닭이다.

자신 안에 존재하는 낯선 모습을 마주하고 훔쳐보는 관객들은 영화 속 인물들을 허허실실 웃으며 따라간다. 그러다 보면 실제로 매일 지나치는 평범한 일상 공간들도 어느새 생경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한강 한가운데 갇힌 남자의 고군분투 <김씨 표류기>
그래서 <오! 수정>이나 <극장전>에 등장하는 종로는 우리가 아는 그 종로가 아닌, 이국의 풍경처럼 보인다. 이처럼 지극히 평범하고 익숙한 소재로 낯선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은 홍상수식 세계의 근간이 되고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