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ㆍ남미 전통예술인 14명 초청 4개월간 한국문화 체험

아시아와 남미로 구성된 문화동반자 14인
자국의 전통 의상을 입은 외국인 연주자들이 자국 음악을 연주한다. 태국,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몽골, 우즈베키스탄, 베트남 그리고 에콰도르 등 아시아와 남미의 음색이 각자의 특색을 마음껏 뽐낸다.

여기까지는 흔한 광경이지만 잠시 후 이들이 우리 전통악기를 가지고 한국 음악을 연주하는 색다른 광경이 펼쳐진다. 이국의 사람들에 의해 연주되자 우리 음악도 이국적인 느낌으로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기 시작한다.

11월 26일 국립극장 KB국민은행청소년하늘극장에서 공연된 이 이색적인 공연은 '잔치를 베풀어 작별하다'라는 뜻의 <전별(餞別) : For Another Encounter>이다. 무대에 오른 이들은 국립극장이 진행하는 국제 문화교류 프로그램인 '문화동반자 사업'의 연수생들. 각국의 문화동반자들은 이 고별공연을 끝으로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 한류를 알리는 작은 사절단이 된다.

'한류 2.0' 지향하는 문화동반자 사업

새로운 한류가 시작되고 있다. 이전의 한류가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해외에 알리는 일방향적 한류였다면, 최근 일어나는 한류는 해외문화와 교류하며 서로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며 문화적 가치를 함께 증진시키는 쌍방향적 한류다.

문화동반자 사업의 시작을 알린 첫 공연 '조우'
새로운 한류의 출발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문화동반자 사업'부터 시작됐다. 2005년부터 시작한 문화동반자 사업은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전문적인 예술가들을 초청해 각국과 교류와 협력을 통해 동반자적 관계를 형성하는 프로그램이다.

특히 문화, 예술뿐만 아니라 체육, 관광, 산업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을 초청해 일정 기간 한국에 머무르며 관련 분야를 경험하게 하는 문화 레지던스 사업이기도 하다.

이중 공연예술 분야에서 초청된 것이 이들 아시아와 남미 전통예술인들이다. 이들은 한국에 머무는 동안 국악 이론과 실기 교육을 받고, 문화명소와 관광지 등을 탐방하며 한국의 전통문화를 체험했다.

한국어 연수는 기본이다. 한국의 전반적인 문화와 예술을 배우며 근본적으로 한국을 이해하게 한다는 점에서 한류의 기반을 다지는 문화 교류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한류에 대한 태도 변화의 배경에는 기존 한류에 대한 내부의 반성이 있다. 문화동반자 사업 관계자는 "초기 한류가 확산될 때 한국에 대한 관심이 커지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대량으로 유입되는 타문화에 대한 거부감도 만만치 않았다"고 설명하며 "피상적이고 일방향적인 성격의 교류는 한국에 대한 이해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다른 문화동반자와 조율하며 연주하는 모습
또 이주노동자의 유입이나 국제 결혼 등으로 다문화사회가 도래하면서 문화적 차이와 다양성에 대한 시민의식도 필요하게 됐다.

이제 문화의 우열을 규정하기보다 함께 공생할 수 있는 관용의 시대가 한류의 변화를 자연스레 요구하고 있다. 이런 흐름에 따라 문화동반사업은 각 분야에서 한국문화 연수 프로그램을 개발해 한류 지속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해외 문화동반자, 한류 민간외교관으로

국립극장의 <전별> 공연은 이런 새로운 한류로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한국과의 첫 만남이었던 지난 7월 공연 <조우(遭遇)>에서 문화동반자 14인은 자국의 전통음악을 선보였다. 하지만 이들이 4개월 후 같은 무대에서 보여준 국악기 연주와 우리 음악에의 높은 이해도는 새로운 한류의 가능성을 그려냈다.

삼도 설장구, 도라지, 민요메들리 등 이들이 그동안 배운 한국 음악을 장구, 가야금, 해금, 아쟁 등으로 연주하는 장면은 '한국을 느끼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줬다. 연주 실력 이상의 의미가 있는 장면이었다.

문화동반자 각국의 전통음악과 우리 음악에 이어 문화동반자들이 국립국악관현악단과 협연한 관현악곡 '드림 오브 아시아(Dream of Asia)'는 이런 새로운 한류의 지향점을 담아냈다.

'드림 오브 코리아'가 아닌 '아시아의 꿈'을 지향하는 한류는 더 이상을 우수성을 외치지 않고 공생과 조화를 외친다. 마지막 곡으로 선택된 '아리랑'에서도 국악기와 동반자 각국의 전통악기가 어우러지며 이 같은 의미를 새롭게 담아냈다.

한편 공연이 끝난 후 문화동반자들은 자국 악기와 비교하며 한국 악기의 특색에 흥미를 보였다. 아쟁을 배운 몽골의 알탄게렐 델게르마는 "몽골에서 활을 이용하는 마두금을 연주했지만, 아쟁은 주법이 많이 달라 흥미로웠다"고 관심을 보였다.

가야금처럼 16현악기인 단쳉을 연주하는 베트남의 레민홍도 "두 악기가 모양과 주법은 비슷하지만, 철제 줄을 사용하는 단쳉과 달리 명주실을 사용하는 가야금은 소리가 깊고 아름답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새로운 한류의 효과도 벌써 나타났다. "한국 생활이 마냥 편하고 좋다"는 베트남의 호앙 트롱 쿠옹은 "작별은 슬프지만 귀국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한국을 알리고 문화동반자 프로그램을 권하겠다"고 말했다.

에콰도르의 누녜스 만티야 알폰소 에르네스토도 "낯선 나라에서 음악으로 소통하며 이제는 정말 한 가족이 되었다"고 되돌아보며 "우리 모두가 각자의 나라를 대표하는 예술인으로서 전통음악을 소개한 자리였기에 더욱 자부심을 느꼈다. 에콰도르에 돌아가면, 제2의 고향이 될 한국의 음악을 자랑스럽게 소개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국립극장 공연기획부 문화동반자 사업 담당인 이주연 씨는 "이번 사업의 성과를 바탕으로 내년에는 인원을 20명으로 확대하고, 지역도 올해의 아시아에서 아프리카와 남미까지 확장시키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