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독립영화제] 예산 축소 불구 2개관서 64편 상영 독한 맛 보여줘

윤성호 감독의 <도약선생>
<이웃집 좀비>, <경계도시 2>, <반드시 크게 들을 것>, <원 나잇 스탠드>, <작은 연못>…. 올해를 빛낸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뭘까. 바로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치열한 현실성으로 영화의 의미를 다시 물었던 '독립영화'라는 점이다.

'주류 영화'에서 두어 작품을 제외하면, 올해의 인상적인 영화들은 모두 독립영화관에 있었다. 온라인에서 '영화로 놀기'의 새로운 모습을 제시했던 <농민가>와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역시 독립영화였다. 하지만 이 같은 활약에도 불구하고 독립영화계는 올해 또 다시 추운 겨울을 맞았다.

최근 독립영화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대폭 축소되어 정말 '혼자 서야' 할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12월 9일 한국영상자료원에서의 개막하는 제36회 서울독립영화제 역시 지원금 없이 후원금으로 행사를 꾸리고 있다. 독립영화제는 언제나 어려운 형편에서 이뤄졌지만, 이번만큼은 당장 예산 축소로 인해 줄어든 규모가 확연히 드러난다. 3개관에서 84편을 상영했던 지난해에 비해 올해는 2개관에서 총 64편으로 몸집을 줄였다.

그래도 본선 경쟁작 상영작들은 예년과 비슷한 상황이지만, 해외초청작들은 올해 볼 수 없게 됐다. 한 관계자는 "아쉽지만 독립영화 발전을 위해서 국내 독립영화의 상영에 집중하기로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특별초청작 <강은 강처럼 흐르게 하라>
서울독립영화제는 지난해 장률을 비롯해 아핏차퐁 위라센타쿤, 지아장커, 아오야마 신지 등 아시아의 주목받는 감독들을 집중 조명하며 좋은 반응을 받아왔기 때문에 관객들의 아쉬움이 더 클 것으로 보인다.

예산 축소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은 다름 아닌 영화인들이다. 전체 예산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다음 영화를 위한 제작비가 될 상금이기 때문.

이번 영화제의 상금 규모는 총 5000만 원(대상 1500만 원)에서 3000만 원(대상 1000만 원)으로 축소됐다. 이 같은 불가피한 변화에 대해 조영각 집행위원장은 "현실적인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충을 토로하며 영화인들에게 가장 보탬이 될 상금의 삭감을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혼자 서기의 길을 운명처럼 걸어온 독립영화는 이번 행사에서도 예년과 다름없는 예리한 사회 비판과 참신한 아이디어로 예의 독한 맛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마음가짐을 담기라도 하듯, 서울독립영화제의 올해의 슬로건 역시 '毒립영화 맛 좀 볼래'다.

원론적으로는 관객에게 독립영화의 진정한 맛을 즐기라는 의미이지만, 외부적으로는 독립영화를 탄압하고 거부해온 세력에게 독립영화의 독한 맛을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국내장편초청작 <청계천 메들리>
이런 의미는 특히 국내 초청작들의 면면에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특히 극영화 6편과 다큐멘터리 4편으로 이루어진 장편 부문은 국내외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부산국제영화제 등을 통해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은 감독들의 작품을 고루 배치했다.

개막작으로 선정된 <도약선생>은 올해 인디시트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를 인터넷에서 '연재 상영'하며 또 한 번 이슈를 만든 윤성호 감독의 신작으로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내년에 열리는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겨냥해 '관광 홍보용'으로 만들었다는 이 작품은 내용 못지않게 DSLR 카메라를 이용해 찍은 영화로도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은하해방전선>부터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까지 윤 감독의 페르소나처럼 출연하고 있는 박혁권이 또 어떤 연기를 펼칠지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재기발랄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사회에 대한 묵직한 시선이 인상적인 영화들도 있다. 북한에서 탈출한 뒤 남한에서 생존하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전승철의 모습을 따라가는 <무산일기>와 중국 연변 지역에 점점 많아지고 있는 탈북자들과 지역 주민들의 관계를 다룬 <두만강>은 탈북한 사람들과의 공존 문제를 고민하게 한다.

최근 연평도 사태로 한반도 상황이 불안정해진 지금, 통일을 둘러싼 공존 문제는 시의적절한 문제 제기로 평가된다.

국내장편초청작<자가당착:시대정신과 현실참여>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초월하려는 실험적인 작품도 있다. 김선 감독의 <자가당착 : 시대정신과 현실참여>는 두 경계 사이에 애니메이션까지 아우르는 형식적 도전으로 혼란스러운 사회에 비판적인 시선을 이어가고 있다.

성적 소수문화환경을 위한 모임 '연분홍치마'가 제작한 첫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 <종로의 기적>과 인권영화 옴니버스 프로젝트인 <시선 너머>는 동성애자, 이주노동자 등의 소수자 인권이나 생활 속 인권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악화되고 있는 노동 환경과 정책에 대한 비판은 이번 초청 섹션에서 눈에 띄는 부분이다. <청계천 메들리>는 청계천의 금속공방 거리에서 한국의 근대화 과정을 되돌아보고, <야만의 무기>는 부안 핵폐기장 반대 투쟁 과정을 10년에 걸쳐 기록한다. <첫사랑 1989-수미다의 기억>은 21년 전 일본에서 공장 폐쇄 반대 투쟁을 벌인 노동자들의 현재를 담았다.

영화제 측이 특별초청 섹션으로 마련한 6편의 작품은 4대강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이 섹션에서 사진작가들과 퍼블릭액세스 활동가, 다큐멘터리 작가들은 4대강 사업의 폐해와 심각성이 드러난 현장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기록했다.

조영각 집행위원장은 "영화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지만 끊임없이 발언하고 문제를 제기하면서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은 중요하다"고 말하며 "영화를 통해 사회에 만연한 폭력과 억압 그리고 그것에 저항하는 방법들을 환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영화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과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으로 더욱 독해진 이번 서울독립영화제는 12월17일까지 9일간 CGV상암에서 열린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