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1920~40년대 경성 모습 담아

<소설가 구보씨의 1일>
새로운 문물이 날마다 들어온다. 익숙한 것은 곧 낡은 것이 되어 간다. 새로운 유행은 다시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이에 따라 사람들의 사고방식도 시시각각 변해간다.

요즘 유행하는 아이패드나 트위터 얘기가 아니다. 20세기 1930~40년대의 서울의 모습이다. 조선에서 대한제국을 거친 근대의 서울(경성)은 빠른 속도로 유입되는 서구 문물로 인해 급격한 문화적 변환기를 맞았다.

당시의 이슈는 연애나 공연문화, 실업대란 등으로 오늘날과 닮은 모습이다. 최근 공연되고 있는 경성을 배경으로 한 연극들에는 오늘의 서울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경성의 모습이 담겨 있다.

대중연극에서 친일연극까지, 근대연극사의 공간

연희단거리패의 연극 (연출 이윤택)는 한국 연극사에서 가장 암울했던 1920년대의 대중극 시대부터 1940년대의 친일연극 시기를 아우른다. 배우 월희와 극작가 임선규라는 인물을 통해 이데올로기와 연극, 예술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식민지 시대 연극인의 모습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근대화 이후 연극담론은 신극을 중심으로만 전개됐지만, 이 작품은 만담이나 신파극, 막간극 형태로 존재했던 전통 소리 등 변방에서 존재했던 대중극의 역사를 되짚는다. 또 식민지 상황에서 연극을 계속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친일연극에 얽힌 이면도 파헤친다.

일제강점기의 경성은 근대화를 거쳤지만 여전히 신분을 구분하는 인식은 존재했고, 남성 중심의 사회도 공고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근대 여성연극인인 월희는 '여성'이자 '배우'라는 이중의 한계를 지닌 채 억압하는 세상에 저항하며 자신의 삶을 개척해간다.

임선규는 일제시대 최고의 멜로드라마인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를 썼지만, 친일 시비 때문에 평단에게 외면당했다. 이윤택 연출가는 임선규를 통해 친일연극의 실상을 조명한다. 임선규의 대표작인 <동학당>, <빙화>, <새벽길>을 극중극으로 삽입하며, 치욕스러운 연극사 뒤에 있는 작가의 저항의식을 발견한다.

결국 각각 북쪽행과 남한 잔류를 선택하는 이들에게 경성은 격동과 혼란의 공간이자, 새로운 정체성을 모색하는 과도기의 공간이다.

왜 그들은 경성에 딴스홀을 허하지 않았나

<락희서울>
12월 4일부터 앵콜공연에 들어간 연극 은 1세기의 차이가 무색하게 현대와 닮은 당대인들의 모습을 흥미롭게 관찰한다.

모던보이, 미니스커트, 힐 등 패션 아이템이 유행하고, 투기성 사업으로 일확천금을 버는 사람이 화제가 되고, 실업대란으로 고학력 실업자를 배출했던 경성의 모습은 지금의 서울에서도 익숙한 풍경이다. 그중에서도 중심이 되는 건 당시 조선에서 유행했던 '딴스'와 '자유연애'다.

1937년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라는 탄원서를 신문에 게재한 실제 사건이 모티프가 된 이 작품은 극중 인물들 역시 당대의 여성화가와 문학가 등 실제 인물들을 모델로 만들어졌다.

의 인물들은 부와 명예, 출세를 위해 사기결혼을 하고, 투기판에 뛰어들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좌절과 비웃음뿐. 카페 미네르바에 모인 이들은 일제의 '딴스금지령'에도 불구하고 몰래 딴스 파티를 즐긴다.

하지만 이들에게 딴스는 오늘처럼 마냥 즐겁기만 한 유희는 아니었다. 자본주의의 도입과 급격한 사회 변화에서 오는 패배감을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했다. 연극은 이처럼 경성에 유행했던 '딴스'라는 매개를 통해 경성인들의 욕망과 실패, 극복 의지를 들여다본다.

구보 씨와 함께하는 무기력한 하루

12월 2일부터 한 달 동안 Space111에서 공연되는 은 구보 박태원의 중편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성기웅 연출가가 각색한 연극이다.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된 이 소설은 근대 초기 서울의 모습과 예술가들의 초상을 담아낸 대표적인 모더니즘 소설. 경성인들의 관심사였던 자유연애와 무성영화, 카페문화 등이 '구보 씨'의 시선에 담겨 있다.

박태원의 실제 생활이 반영된 자전적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1930년대의 어느 하루 동안 전차 안과 다방, 거리, 경성역 대합실을 거쳐 다시 다방, 거리, 술집으로 이어지는 형식을 취한다. 목적 없이 집을 나선 구보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까지의 단편적인 일들과 생각들을 나열하며 무기력한 지식인의 일상을 심리 묘사로 표현한 것이다.

성기웅 연출가가 바라본 당시 지식인의 무기력함은 선진문화와 지체된 몸의 결합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람들은 모던하고 도시적인 것을 꿈꾸지만 사회적, 경제적인 여건이 뒷받침되지 못하기 때문에 꿈만 꿀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연극은 동시에 거기에서부터 경성의 낭만성이 생겨난다고 말한다.

성기웅 연출가는 이번 연극에서 박태원의 소설을 기반으로 당시의 경성을 무대 위에 그대로 재현했다. 소설 속 구보 씨가 산책했던 경성 거리는 영상을 통해 사실감 있게 그려진다.

<경성스타>
소설 속에서 언급된 음악도 이때 함께 흘러나온다. 소설 속 캐릭터는 그대로 무대 위 캐릭터로 육화한다. 일러스트와 동영상, 활자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연극은 1930년대의 경성을 해체해 오늘의 무대에 새로운 이미지로 재구축한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