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본 바이올리니스트 노엘라예술 장르 간 융합 대표적 작가 작품, 공연 때마다 연주와 함께 감상

위대한 예술가의 삶과 작품에는 음악과 미술, 문학이 교감하고 투영된 흔적이 뚜렷하다. '유대인극장 시리즈'를 비롯해 예술 그 자체를 모티프로 작품을 선보인 마르크 샤갈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는 유화, 판화, 벽화, 스테인드글라스를 비롯해 무대장식과 오페라하우스, 미술관 등 거대 건축물의 벽화와 천장화에 이르기까지 폭 넓은 활동을 펼친 예술가였다. 때문에 예술의 장르 간 융합, 콜레보레이션(collaboration)을 논할 때 샤갈은 마르지 않는 샘처럼 인용된다.

일례로 뉴에이지 바이올리니스트 노엘라는 공연 때마다 샤갈의 작품과 자신의 연주를 함께 감상하는 시간을 갖는다. 샤갈의 대표작 '산책'을 통해 20세기 초반 러시아 정치·경제와 예술 사조를 설명하고, 샤갈과 그의 부인 벨라의 '러브스토리'를 소개한다.

내년 3월 27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색채의 마술사- 샤갈>전을 맞아 미술과 음악, 문학 등 예술의 장르간 융합, 콜레보레이션에 대해 물었다.

2008년부터 1년 반 동안 본지에 '음악과 미술의 하모니'를 연재했던 그는 장르 간 융합을 시도한 곡을 여럿 선보였다. 최근 발매한 2집 (유니버셜)에서는 아서 밀러의 <시련>을 모티프로 만든 '에비게일의 사랑'을 타이틀곡으로 선보인다.

이밖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를 연상케 하는 '두 개의 달', 김아타의 사진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사랑... 그 애틋함'을 비롯해 문학, 미술에서 영감을 받은 다수의 곡이 실려 있다.

음악 공연에서 샤갈의 작품을 인용하는 이유가 뭔가?

"예술은 인간에게 기쁨과 영감을 주어야 하는데, 샤갈만큼 좋은 사례가 없다. 부인 벨라를 만나 평생을 사랑했고, 재혼 후에도 사랑을 모티프로 자주 그림을 그렸다. 샤갈은 완벽한 사랑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사례 같다."

공연 때 샤갈의 작품과 함께 연주하는 곡은 뭔가?

"내 1집 앨범에 실린 '어떤 날에'란 곡이다. 둘 다 아름답고 행복한 작품이지만, 그 안에 우수가 담겨있다. 어느 예술가나 마찬가지지만, 샤갈의 인생도 마냥 행복하진 않았다. 조국을 떠나야 했고, 언제나 향수에 젖어 있었는데, 이런 감성이 그림에서 나타난다."

샤갈 등 유명 작품의 비화를 소개하고 연주하는 독특한 방식의 공연을 선보였다. 그림, 문학, 사진 등 다른 장르에서 모티프를 받아 만든 곡을 여럿 발표하기도 했다. 콜레보레이션을 자주 시도하는 이유가 있나?

"음악이든, 그림이든, 문학이든 예술은 결국 같은 이야기를 다른 표현 방식으로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클래식 악기를 배웠기 때문에 그런 방식에 능숙하고, 그래서 음악으로 소통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인간의 감성을 한 가지 소통방식으로 전달하는 것이 제한적이라는 느낌은 항상 받는다. 최근 예술가들이 다양한 장르를 융합하려는 건 이런 생각 때문이다. 나는 그림을 보면 자연스럽게 어떤 작곡가가 연상된다. 문학작품을 읽을 때나 공연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이후에 두 예술가의 자료를 더 찾아보면 생애가 비슷한 경우가 많았다."

이번 <색채의 화가- 샤갈>전을 돌아본 느낌은 어떤가?

"도록에서 본 샤갈의 작품을 대할 때와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흔히 샤갈의 그림을 알록달록한 색채의 화려한 그림이라고 생각하는데, 원작은 채도가 한층 낮다. 마냥 예쁘거나 즐겁거나 행복한 그림이 아니라, 고뇌를 넘어선 아름다움을 표현한 그림이라는 말이다. 말년에 그린 서커스 연작 시리즈를 보면 그런 감성을 더 느낄 수 있다. 슬프고 괴로워도 관객을 웃겨야 하는 사람, 웃음을 주면서도 천대받는 사람이 서커스 배우들인데 이들을 지속적으로 그리고, 자신을 동일시했다는 건 그의 삶이 화려하거나 예쁘지만은 않았다는 걸 암시한다."

샤갈의 작품세계와 가장 어울리는 음악가를 추천한다면?

"작곡가 차이코프스키다. 벨라와의 완벽한 사랑을 이루었던 샤갈과 달리 차이코프스키는 단 한 번의 결혼도 하지 않았고, 염문설도 없었다. 그러나 두 러시아 출신 예술가는 조국을 등지고 유럽을 떠돌며 활동한 경험을 갖고 있고, 고향에 대한 향수를 작품의 주요 모티프로 삼았다. 샤갈이 동물을 통해 이런 감성을 나타낸다면, 차이코프스키는 '러시안 멜로디'를 작품에 자주 차용하며 이를 드러내고 있다. 샤갈의 그림과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실제로 발레 <알레코>에서 함께 쓰였다. 1942년 멕시코시티에서 초연되었던 이 작품은 레오니드 마신의 안무로 만들어졌는데, 에르노 라피가 오케스트레이션을 맡아 편곡한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삼중주가 음악으로 쓰였다. 무대장치와 의상 디자인은 샤갈이 맡았다. 푸쉬킨의 <집시들>을 각색한 이 발레는 문명사회를 살고 있는 귀족 알레코와 자유의 상징인 집시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샤갈의 마을에 사는 예술인들

최근 예술 장르와 장르 간의 융합, 콜레보레이션이 하나의 유행처럼 소개되지만 이전 시대에도 유명 예술인들의 콜레보레이션은 있어 왔다. 샤갈이 스트라빈스키와 오페라에서 음악과 무대 연출자로 함께 일하고, 뉴욕 메트로폴리탄의 오페라 <마법의 피리>를 위한 커튼을 만들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그의 그림에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에는 어떤 게 있을까?

그의 조국 러시아에서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예술에 대한 실험정신을 외칠 때, 그의 작품을 인용하곤 했다. 러시아 황실 발레단의 수석 발레리나였던 산헤드린은 1920년 러시아를 떠나 파리에서 앙드레 대공과 결혼했는데, 결혼 뒤 파리에서 샤갈의 그림을 자주 보았다. 역시 러시아 연극연출가 겸 배우 메이에르홀트는 <스페이드 여왕> 등 비사실주의적인 연극에 도전적인 실험을 하는 예술가로 유명한데, 샤갈의 그림을 인용하며 실험에 대한 예술가의 권리를 옹호하는 발언을 자주 했다.

한편 시인 엘리아르는 샤갈의 초현실적 특징을 시 '마르크 샤갈에게'에서 노래한 바 있다.

'당나귀, 암소, 수탉, 말,/ 그리고 바이올린까지/ 노래하는 사람, 한 마리의 새/ 아내와 함께 날렵하게 춤을 추는 사람// 봄에 흠뻑 빠진 연인들// 황금빛 수풀, 남빛 하늘/ 푸른색 불꽃으로 갈가리 찢긴,/ 이슬과 같은 건강함/ 피는 무지개 빛을 내고 심장은 튼튼하다/ 그리고 두텁게 쌓인 눈 밑에 포도가 열린 포도나무가 그림을 그린다/ 밤에도 결코 잠들지 않는 달의 입술을 지닌 얼굴을' (시 '마르크 샤갈에게' 전문)

국내에서는 문학작품에 그의 그림이 자주 인용됐다. 김춘수의 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을 비롯해 박상우의 소설집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이승훈 시집인 <시집 샤갈>이 샤갈의 그림을 모티프로 쓴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