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185점의 오리지널 프린트, 180권의 사진책, 4편의 영화 한자리에

They're Coming! 1981 ⓒHelmut Newton
세상의 언어 중 '우정'이란 단어에 가장 큰 가치를 부여하는 여든네 살의 로베르 델피르. 여전히 현역인 이 노장은 프랑스의 편집자이자 광고업자이고, 예술디렉터이며 전시회 기획자, 그리고 영화 제작자이기까지 하다.

그가 가진 여러 개의 직함으로 넓은 활동변경을 추측해 본다. 그러나 그는 무엇보다도 사진과 디자인의 순수한 옹호자다.

23살의 의학도가 수십 년간 사진과 디자인에 바친 지극한 헌신은 사진 대중화에 크게 기여해 왔다.

그가 창간한 <뇌프(Neuf, 새로운)>와 <뢰유(L'Oeil, 눈)>와 같은 전위적인 사진잡지 이후, 전적으로 사진을 다룬 첫 번째 사진집 시리즈인 <포토 포슈 Photo Poche>. '주머니 속 사진'이란 뜻의 <포토 포슈>는 포켓북처럼 간편하게 사진집을 제작해 대중들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사진을 감상할 수 있게 했다.

영어, 독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일본어 및 브라질어로 번역된 시리즈는 전 세계 사진집 중 가장 높은 판매기록을 가지고 있다. 독자에 대한 배려와 혁신성이 더해진 <포토 포슈>를 비롯해 다수의 전시 기획과 출판을 통해, 델피르는 '사진의 미다스 손'으로 자리하고 있다.

'발리Bali 에서의 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 델피르 편집, 파리, 1953
델피르가 "모든 것을 가능케 했다"고 표현한 우정, 그 진득한 교감을 나눠온 이들은 이미 사진계의 전설 혹은 거장이라 불린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세바스치앙 살가두, 헬무트 뉴턴, 로베르 두와노, 로버트 프랭크. 그들 외에도 수십 명을 헤아린다.

특히 매그넘 사진가들과의 협력은 동지애를 넘어선 경의로까지 비춰졌다. 매그넘 창단 주역인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과 매그넘 멤버인 요세프 코우델카와의 우정은 각별하다.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도 있지만 이름만으로도 쟁쟁한 이들의 작품은 '우정'이란 이름으로 델피르를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2009년, 델피르의 사진인생 60주년을 맞아 열린 회고전. 매년 7월부터 9월 사이, 세계 각지에서 수만 명의 사진 관계자들이 모여든다는 아를 국제 사진페스티벌에 마련된 특별전이 그 시작이었다.

1000평이 넘는 공간에 시대를 풍미한 사진가들의 작품과 델피르가 출판한 책, 직접 제작한 영화까지 한 자리에 아우러졌다. 한 사람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방대한 양의 작업들.

2010년 유럽사진미술관에서 다시금 대규모 전시가 열린 후, 해외 첫 순회전시가 한국에서 열린다. 185점의 오리지널 프린트, 150권의 사진책, 4편의 영화가 12월 17일부터 <델피르와 친구들 전>(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선뵌다. 시각문화에 열성적으로 기여해온 델피르 개인의 경력이자 현대사진사의 거대한 흔적, 동시에 사진가들과의 교류의 결실이다.

Eeckhoudt, Naked Dog, Beigium, 1993 ⓒ Michel Vanden
"출판업자의 일은 다른 사람의 작품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한 팀의 일이 아니라, 상호간의 깊은 이해를 필요로 한다. 이미지를 선택하고 편집하고 이를 가능한 많은 대중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보여주는 것, 그것이 내 유일한 삶의 목표다."(로베르 델피르) 이번 전시는 크게 네 섹션으로 나뉘어 델피르의 작업 세계를 소개한다.

'사진의 역사와 만나다'는 델피르가 150회의 전시를 기획하고 <포토 포슈>를 발간했던 국립사진센터에서의 15년간의 흔적을 보여준다. 사진사 초기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신화가 된 사진을 만나다'에서는 세기의 사진가들의 작품이 전시된다. 전설이 된 카르티에 브레송, 현대사진의 서막을 연 로버트 프랭크와 현대 다큐멘터리의 선구자 윌리엄 클라인 등 '세계적인'이라는 수식이 무색하지 않은 작가들의 작품이 걸린다.

'세기의 사진책을 만나다'에서는 평생 '이미지 전달자'의 역할을 자처했던 델피르가 만든 사진책이 전시되고, 델피르가 감독한 영화와 광고 영상은 '영화로 만나는 거장의 숨결' 섹션에서 만나볼 수 있다.

"사진 기획이 언제부터였을까 생각해볼 때, 오랜 시간 전시와 출판을 통해서 사진가들을 재평가할 수 있게 해준 델피르의 역할은 굉장했다고 보여진다. 단지 출판뿐만이 아니라 꾸준히 실험적인 기획을 해왔기에 많은 사진가들에게 지금껏 존경을 받는 멘토로서 자리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한국전시 큐레이터 최연하 씨는 이번 전시의 의의를 이 같이 설명했다.

또한 <델피르와 친구들>은 델피르 한 사람의 업적을 되짚어보는 자리인 동시에 20세기를 풍미한 작가들의 오리지널 프린트를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드문 기회이기도 하다. 전시는 내년 2월 27일까지.

로베르 델피르의 초상 ⓒ Sarah Moon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