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길바닥에는 수많은 소리가 흘려진다. 개 짖는 소리, 행인들의 떠들썩한 잡담, 자동차 경적이 내는 성마른 소리, 리어카 바퀴가 굴러가는 힘겨운 소리, 그 소음들 사이를 파고드는 구세군의 쨍한 종소리. 귀로 듣고 머리로 재생시키는 것 외에 이 소리들을 즐길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을까? 이 아름답고 차가운 12월의 소리를.

짖고 떠들고 웅얼거리는 옷

지난 12월 9일 삼청동 입구에 있는 갤러리 조선에서는 패션 디자이너 홍혜진과 미디어 아티스트 권윤희의 합작 전시 <원스 어폰 어 디셈버>가 열렸다. 최근 서울 컬렉션에서 주목받는 신인으로 떠오른 디자이너 홍혜진과 소리의 시각화를 주로 작업하는 작가 권윤희가 만나 소리를 옷에 입히는 작업을 진행한 것이다.

두 사람의 만남은 갤러리 조선 권미성 관장의 제안으로 이루어졌다. 홍혜진 디자이너의 옷을 익히 알고 있던 권미성 관장이 그의 성향과 딱 맞는 아티스트가 있다고 소개한 것.

"옷을 만드는 데 있어서 항상 동시대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그 수단 중의 하나가 제게는 현대 미술과의 만남이에요."

홍혜진 디자이너와 권윤희 작가는 서로의 작품을 보자마자 한 눈에 반했다. 단순하고 기계적인 외양 뒤에 인간적이고 따스한 메시지가 숨어 있다는 점에서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알고 보니 둘 다 미국 로드아일랜드 디자인대학을 졸업한 동문이었다. 양 쪽의 작품 속에 배어있는 학풍이 서로를 끌어들인 사실을 발견하고 마주보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만들어진 옷에 기존의 작품을 대입하는 일반적인 콜라보레이션 대신 처음부터 새로 작품을 만들었다. 3주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굳건한 공감대 덕에 일사천리로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권윤희 작가는 먼저 12월의 소리들을 수집했다. 한겨울 거리에서 건져낼 수 있는 수많은 소리들을 '콜라주'해 음파를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이미지화했다. 이 작업에는 헤드그렌코리아의 프로덕트 MD로 있는 김선미 작가와 서울종합예술학교 패션예술학부 학부장인 손세란 작가가 참여했다.

시각의 범위로 건져 올려진 소리는 홍혜진 디자이너가 만든 일곱 벌의 옷 위에 프린트되거나, 빔 프로젝터를 통해 옷 위에 투영되는 방식으로 구현됐다. 옷들은 연말 파티 분위기에 어울리는 롱 드레스와 케이프 등으로, 미니멀하면서도 모던한 홍혜진의 디자이너의 감성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9일 열린 오프닝 리셉션에서는 한 쪽 벽에 보라색으로 이미지화된 음파가 유기체처럼 꾸물거리며 문양을 만들어냈다. 다른 한쪽에서는 콜라주된 사운드가 울려 퍼졌다.

교회 종소리가 댕그렁하고 울릴 때마다 미친 듯이 확장되는 소리들은 하얀색의 실크 드레스 위에 제멋대로 발자국을 찍으며 춤을 추었다. 전시는 크리스마스까지 진행되며 16일에는 현대 무용수들이 작품을 입고 퍼포먼스를 펼칠 계획이다.

전시된 옷들은 소량 제작되어 판매될 예정이며 전시장에는 작품들 외에 홍혜진 디자이너의 크리스마스 기프트 아이템과 퍼 아이템도 구경할 수 있다.

디자이너 홍혜진 (더스튜디오케이)

이번 의상이 컬렉션 의상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상업 디자이너로 계속 일하다 보면 감성이 마르는 것을 느낀다. 미디어 아티스트 권윤희 씨와의 작업은 여기에 습기를 부여하는 일이었다. 일반적인 컬렉션에서는 대중을 의식해 디자이너의 세계를 좀 접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에는 마음껏 표출했다. 디자이너의 플러스 알파를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디자이너 홍혜진(사진=임재범 기자)
권윤희 작가의 작업 중 어떤 점이 당신에게 영감을 주었나

개인적으로 마구 표출하는 것보다는 절제된 감정 표현을 더 좋아한다. 충분한 사전 조사와 자료 수집으로 학구적인 느낌이 들면서도 결국 표현하는 메시지는 인간적이고 따뜻하다는 점이 마음을 끌었다.

디자이너의 감성을 제한 없이 표출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웨어러블하다

물론이다. 케이프, 드레스, 클러치 등 모두 연말 파티에 기분 좋게 입을 수 있는 옷들로 제작했다. 이제는 대중도 자신이 입는 옷에 의미를 부여하기를 원한다. 12월의 소리가 담긴 옷들이 연말을 더욱 기쁘게 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