짖고 떠들고 웅얼거리는 옷
지난 12월 9일 삼청동 입구에 있는 갤러리 조선에서는 패션 디자이너 홍혜진과 미디어 아티스트 권윤희의 합작 전시 <원스 어폰 어 디셈버>가 열렸다. 최근 서울 컬렉션에서 주목받는 신인으로 떠오른 디자이너 홍혜진과 소리의 시각화를 주로 작업하는 작가 권윤희가 만나 소리를 옷에 입히는 작업을 진행한 것이다.
두 사람의 만남은 갤러리 조선 권미성 관장의 제안으로 이루어졌다. 홍혜진 디자이너의 옷을 익히 알고 있던 권미성 관장이 그의 성향과 딱 맞는 아티스트가 있다고 소개한 것.
"옷을 만드는 데 있어서 항상 동시대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그 수단 중의 하나가 제게는 현대 미술과의 만남이에요."
이미 만들어진 옷에 기존의 작품을 대입하는 일반적인 콜라보레이션 대신 처음부터 새로 작품을 만들었다. 3주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굳건한 공감대 덕에 일사천리로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권윤희 작가는 먼저 12월의 소리들을 수집했다. 한겨울 거리에서 건져낼 수 있는 수많은 소리들을 '콜라주'해 음파를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이미지화했다. 이 작업에는 헤드그렌코리아의 프로덕트 MD로 있는 김선미 작가와 서울종합예술학교 패션예술학부 학부장인 손세란 작가가 참여했다.
시각의 범위로 건져 올려진 소리는 홍혜진 디자이너가 만든 일곱 벌의 옷 위에 프린트되거나, 빔 프로젝터를 통해 옷 위에 투영되는 방식으로 구현됐다. 옷들은 연말 파티 분위기에 어울리는 롱 드레스와 케이프 등으로, 미니멀하면서도 모던한 홍혜진의 디자이너의 감성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9일 열린 오프닝 리셉션에서는 한 쪽 벽에 보라색으로 이미지화된 음파가 유기체처럼 꾸물거리며 문양을 만들어냈다. 다른 한쪽에서는 콜라주된 사운드가 울려 퍼졌다.
전시된 옷들은 소량 제작되어 판매될 예정이며 전시장에는 작품들 외에 홍혜진 디자이너의 크리스마스 기프트 아이템과 퍼 아이템도 구경할 수 있다.
이번 의상이 컬렉션 의상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상업 디자이너로 계속 일하다 보면 감성이 마르는 것을 느낀다. 미디어 아티스트 권윤희 씨와의 작업은 여기에 습기를 부여하는 일이었다. 일반적인 컬렉션에서는 대중을 의식해 디자이너의 세계를 좀 접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에는 마음껏 표출했다. 디자이너의 플러스 알파를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마구 표출하는 것보다는 절제된 감정 표현을 더 좋아한다. 충분한 사전 조사와 자료 수집으로 학구적인 느낌이 들면서도 결국 표현하는 메시지는 인간적이고 따뜻하다는 점이 마음을 끌었다. 디자이너의 감성을 제한 없이 표출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웨어러블하다 물론이다. 케이프, 드레스, 클러치 등 모두 연말 파티에 기분 좋게 입을 수 있는 옷들로 제작했다. 이제는 대중도 자신이 입는 옷에 의미를 부여하기를 원한다. 12월의 소리가 담긴 옷들이 연말을 더욱 기쁘게 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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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