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전(靑田)과 소정(小亭) 특별전 '요산요수(樂山樂水)' 전근대화단의 쌍벽, 미공개작 등 최전성기 작품 40여 점 선보여

소정 변관식 '옥류천(玉流泉)', 지본담채 51×39.5cm
화랑가에서 동양화 전시를 찾기란 쉽지 않다. 화려한 외양을 좇는 시류가 확산되면서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는 까닭이다.

한국화도 별반 다르지 않다. 고서화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물신의 위력에 밀려 침체기에 있는 상황이다. 제대로 된 동양화 전시가 부족했던 것도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고 동양화(한국화)의 고유 가치가 훼손된 것은 아니다. 문기(文氣)를 내재하고 정신을 중시하는 동양화의 매력은 여전하고, 이를 찾는 관객도 적지 않다. 중국과 일본에서 동양화 전시가 꾸준히 인기를 유지하는 것은 반면교사다.

한 해가 저물고 새해를 앞둔 요즘, 점차 각박해지는 현대의 삶에 자신을 돌아보고 심신의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격조 높은 동양화전이 눈길을 끈다.

올해 4월 공화랑에서 <文心(문심)과 文情(문정)>전을 개최한데 이어, 지난 9월 말 새로운 공간, 공아트스페이스로 이관 기념 <거화추실(去華趨實)>전을 연 대동문화재연구소가 22일부터 신년 1월 9일까지 인사동 공아트스페이스에서 전시하는 청전(靑田)과 소정(小亭) 특별전인 <요산요수(樂山樂水)>전이다.

소정 변관식 '수유정(水幽亭)', 견본담채 134×178cm
청전 이상범(1897~1976)과 소정 변관식(1899~1976)은 근대 한국화단의 쌍벽으로, 독창적인 한국화의 세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청전과 소정은 조선 말기 도화서 화원 출신인 심전 안중식과(1861~1919)과 소림 조석진(1853~1920)의 문하에서 그림을 배웠다. 두 사람은 조석진이 교수로 있던 서화미술원에서 동학하면서 전통화법을 익히기도 했지만 작품 성향은 크게 다르다.

청전 이상범은 조선 후기의 진경산수 전통을 계승하여 어느 특정 실경이 아닌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야산과 시냇물, 그리고 평화로운 농가의 모습들을 수묵과 담채로 은은하게 묘사해 조용한 시정(詩情)의 세계를 보여준다.

자연과 인간이 하나되어 조촐히 살아가는 평범한 산촌 풍경은 관조의 미학과 함께 도회적 삶에 고향 같은 위안을 주어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소정 변관식은 전통을 이어받고, 다시 그 전통을 뛰어넘어 한국적인 미감과 그만의 산수화풍을 창조해냈다. 소정의 산수화는 관념적 산수화가 아니라 우리 산천을 직접 답사하며 철저한 사생을 통해 완성한 실경산수로, 이를 '소정 양식'이라고도 한다.

청전 이상범 '사계산수8곡병(四季山水八曲屛)', 지본담채 각 33×130cm, 1961년
청전이 정형화된 작업으로 기복 없는 그림을 그린 단원 김홍도에 가깝다면, 소정은 사실 표현에 노력하고 조선 산수에 천착한 겸재 정선에 근접한다고 비유할 수 있다.

일견 상이하게 보이는 청전과 소정이 한 전시 공간에서 만난 것은 <요산요수(樂山樂水)>전에 담긴 함의 덕이다. 요산요수(樂山樂水)는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한다'는 뜻으로, 조선시대 문인들이 자연을 동경한 이념을 잘 표현한 어구이다.

이러한 이념을 가지고 있던 문인들은 산수화를 그들의 내면을 표출하고 이상을 추구하는 화제(畵題)로 여겨왔다. 청전과 소정의 작품 또한 선인들의 이념 즉, '요산요수'' 정신을 담고 있는 한국의 전통회화의 맥락을 이었다. 두 화가 모두 문인들의 정신을 계승하고, 자신들의 자아 속 이상향이 바로 산수(山水)라고 생각하고, 작품 안에 그 모든 것을 풀어내었다.

이 번 전시에 출품된 청전과 소정의 작품은 총 42점으로, 초기의 뛰어난 작품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최전성기 때인 1960년대를 전후한 작품들로 구성했다.

특히 청전의 '하경산수(夏景山水)ㆍ추경산수(秋景山水)ㆍ설경산수(雪景山水)' 총 6점과 '사계산수8곡병(四季山水八曲屛)'이 새롭게 표장돼 출품됐다. 청전의 산수는 사계의 한적한 시골 풍경, 농부의 모습, 강가 풍경들을 자신만의 필치로 그려내어 그가 추구하는 이상향을 화폭에 담았다.

청전 이상범 '하경산수(夏景山水)', 지본담채 68×34.5cm, 1959년
소정의 작품에는 1923년 제 2회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작인 '귀가'와 동일한 화풍을 보여주는 '수유정(水幽亭)', 서예가 성재 김태석(1875~1953)의 제문(題文)이 실려 있는 '설경산수(雪景山水)', 금강산을 그린 '옥류천(玉流泉)' 등이 주목 대상이다.

1963년에 제작한 '춘포풍생(春浦風生)'과 1968년작 '무릉도원(武陵桃源)'은 복숭아꽃이 만발하게 핀 농촌마을을 그린 작품으로, 37년의 방랑의 길을 떠나 서울로 올라와 자신의 화실에서 그린 작품이다.

대동문화재연구소 공창호 소장은 " <요산요수>전은 한국 근현대미술의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청전과 소정의 다양한 예술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면서 "이들이 표현한 한국미를 공유하고, 이를 통해 근대미술에 청아한 기운이 돋고 한국화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02-730-1144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