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감내해야 할 아픔이 있다. 자신을 놓아주지 않던 고집스런 자아와, 최선이라 믿어왔던 삶의 가치들. 넘어짐으로 곧 한 발을 내딛을 수 있었던 고단한 삶들이,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타인의 삶과 사상으로 송두리째 흔들리는 아픔.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진짜 자신과의 대면은 이 같은 아픔을 마땅히 감내하도록 했다. 여기, 두 커플이 있다. 병원 호스피스로 일하는 정민과, 자동차 하청업체 직원으로 일하는 동용. 그리고 대기업 입사를 위해 대학원을 다니는 세운과 그의 여자 친구 혜영이다.

정민이 간호하는 환자는 산업재해로 백혈병에 걸려 죽게 되지만, 그가 일한 곳이 우리나라 최고의 재벌 기업인 탓에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억울한 삶을 마감해야 했다.

그저 자신이 담당하는 환자에 불과하던 반도체 소녀의 죽음은, 정민 자신의 자화상이 되어 다가오고 내적 변화를 일으키게 한다. 반면, 대기업 취업에 목숨 걸며 성공만을 쫓던 세운은 연인인 혜영의 조언으로 어느 교수의 강의를 듣게 된다.

그에게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너무도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교수의 수업은 왠지 짜증스럽지만, 어느새 세운은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있다.

이렇듯, 연극 <반도체 소녀>는 우리 자신과 타인의 삶을 이야기하며, 지금의 자신과 거울 너머의 당신이 결코 다르지 않음을 이야기 한다.

이번 무대에는 특히 한국사회주의 운동의 대부라 불리는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와 소설가 류민용이 극 중 대학원 교수로 출연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12월 11일부터 2011년 1월 2일까지.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 02)953-6542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