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유럽, 인도, 한국 아티스트들 사회문제 작품으로 표현

바루흐 고틀립+호라시오 곤잘레스 디에게즈+코코모야, iMine, 2010
"지난 10년간 콩고에서 광물 채취를 하다 죽은 사람이 400만 명입니다. 그 광부들이 누구인가 하면, 그들 역시 이름과 가족과 꿈이 있던 사람들이지요. 따라서 이 게임을 하는 모든 사람이 아바타에게 이름을 짓도록 하였으며, 이는 그들을 구분하는 첫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캐나다 출신의 미디어 아티스트 바루흐 고틀립은 'i-Mine'이라는 게임을 개발했다. 직접 콩고의 광부가 되어 삽을 들고 허공을 광산 삼아 광물을 채취해보는 것인데, 작업이 쉽지 않다. 전시장에 설치된 이 게임기가 종종 말을 듣지 않거나, 조작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인데, 이 역시 작가의 의도라고 한다.

갑자기 웬 콩고 광부 타령인가. 10여 년 전부터 콩고에는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본격적으로 납, 수은, 카드뮴 등에 대한 유해물질 규제 지침이 발효된 것은 2006년이다. 그러나 10여 년 전부터 납이 유해물질로 알려지면서 기존 디지털 미디어의 원료로 사용되는 이것은 주석으로 대체됐다.

세계 주석 생산량의 4%가 바로 콩고에서 나온다. 여전히 분쟁이 끊이지 않는 콩고에서, 정부군과 첨예하게 대립하는 반군 세력이 광산을 장악하고 말았다. 결국 주석은 광부들의 노동력 착취를 통해 얻어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디지털 미디어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광산에서 저임금으로 일하는 콩고의 노동자들은 소리 없이 쓰러져간다. 정부가 공항을 폐쇄하는 극단의 조치에도 반군 세력은 고속도로에서 비행기를 띄우면서까지 주석을 팔아 치운다. "하나의 휴대전화를 만들기 위해 몇 명의 인간이 연관되어 있는지를 연구하는 것은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매우 가치 있는 질문이다."(바루흐 고틀립)

김상균, the weapone, 2010
작가는 'i-Mine'을 통해 아이폰을 비롯한 현대의 디지털 혁명이 이처럼 식민지적 상황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들추어낸다.

예술가가 사회에 개입하는 방식

'i-Mine'이 설치, 전시된 곳은 이태원에 있는 '공간 해밀톤'이다. 이곳에는 고틀립을 비롯한 미주, 유럽, 인도, 한국 아티스트들의 동시대에 대한 문제의식과 질문들이 교차한다. 자신이 처한 현실을 제1의 질서로 보고 이를 객관화, 대상화해 '제2의 질서'를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 이들의 작업이다.

전시를 기획한 Lab 201의 양지윤 디렉터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운 복잡한 사회문제에 대해, '현대예술가들이 어떻게 개입해야 하는가'의 고민이 읽히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개인이 인공위성을 쏘아 올릴 수 있을까?' 간단히 대답하자면 '가능하다'. 현행법상에서 개인이 2000km까지 인공위성을 쏘는 것은 법적으로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1만 장의 티셔츠를 판매하면 인공위성 한 대 제작 비용을 마련할 수 있다. 게다가 인공위성을 제작하고 쏘는 방법은 겨우 7000원짜리 매뉴얼로 판매되고 있기까지 하다.

디륵 플라이쉬만, myshopwindow(Made in North Korea collection), 2010
이것은 바로 송호준 작가가 진행하는 프로젝트다. <인공위성 프로젝트 OSSI>로 시리즈 작업을 하는 그는 인공위성 기업에도 근무한 바 있는 공학도 출신. 이번 전시에서 핵융합하는 방법을 오픈소스로 공개하는 뉴욕의 과학자를 영상에 담아 공개했다.

수소폭탄 제조가 가능한 핵융합이 뉴욕 한복판 과학자의 집에서 이루어지는 모습이 담겨있다. 송 작가 역시 모든 소스가 무료 재배포되는 '오픈소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왔지만, 이들 작업을 지속해오면서 '오픈소스가 과연 긍정적이기만 한가'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보여준다.

한 대당 7~8명을 관리하는, 세계에서 1인당 가장 많은 CCTV를 보유한 영국. 인도 뭄바이에서 활동하는 다섯 명의 아티스트 그룹인 CAMP는 맨체스터에서 진행한 CCTV 작업을 통해 '사회의 통제 시스템 속에서 어떻게 자주적인 주체로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다.

은 샤이나 아난드와 아쇽 수쿠마란이 맨체스터의 정부기관과 CCTV 환경을 일반 관객에게 공개하는 협력 프로젝트였다. 2008년 3월에 진행된 프로젝트에서 약 30명의 관객이 두 개의 컨트롤 룸에서 한 시간 동안 참여했다.

단지 CCTV 관람만 한 것이 아니라, CCTV에 촬영되기도 했던 참여자는 감시 카메라 아래에서 겪는 불안증과 같은 증세를, 감시 카메라를 모니터하는 경비원과 논의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감시자와 피감시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일종의 테라피인 셈이다.

CAMP, CCTV Social, 25분, 2008
"컨트롤은 단순히 사람들을 한 공간에 넣어두고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 도시 곳곳에 설치된 CCTV처럼, 사회적 컨트롤은 마치 비디오 게임 같다. 마치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누군가는 그 모습을 매 순간 모니터하고 있다."(CAMP 소속 아티스트, 아쇽 수쿠마란)

이들 작가 외에도, 개성공단에서 직접 디자인한 셔츠를 제작한 디륵 플라이쉬만과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전투기 등을 촬영한 김상균, 디지털 미디어의 오류에 대처하는 방식을 적어 종이비행기로 날리는 유비호의 작업도 흥미롭다.

'예술은 일종의 조기 경보시스템의 역할을 해왔다'는 마셜 맥루한의 주장은 유효한가? 그 답을 이번 전시에서 엿볼 수 있다. 오는 1월 14일까지 공간 해밀톤에서 계속되며, 이번 전시는 2011년 상반기, 전자책의 형태로 발간될 예정이다.


송호준, 극한 기술의 공유에 대한 단상, 2010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