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로 듣는 한국문화 3 시장의 소리]시끌벅적 재래시장 인정 넘치고, 대형마트엔 팔고자 하는 소리만

강서구 송화시장
어디로 이사를 가든 가장 먼저 살피게 되는 곳이 시장이다. 가장 먼저 정이 붙는 곳도, 가장 자주 다니게 되는 곳도 시장이다. 가끔은 인생의 대부분이 무엇을 사거나, 살지 말지 고민하거나, 살 수 없어 괴로워하는 데 바쳐지는 것 같아 발걸음이 무겁지만, 우리는 오늘도 저녁 메뉴를 궁리하며 시장에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많은 물건과 사람, 이야기와 소리를 만난다.

풍물의 발상지, 시장의 전설

"남이 장에 간다고 씨오쟁이 지고 따라간다는 속담처럼 장터는 꼭 물건을 사고 팔기 위해서 가는 곳은 아니었다. '메밀꽃 필 무렵'에서 보듯 시장은 만남의 장이고 해방의 장이고 정보교환의 장이고 하나의 놀이 시설이고 문화공간이었다."(김종태, <옛것에 대한 그리움> 중)

소설이나 TV 드라마가 재현하는 옛 시장은 풍물의 발상지였다. 다른 통신·방송 수단이 없었던 시절, 오가는 사람들을 따라 이야기가 흘러 다녔을 것이고, 사람들이 모인 데서 노래와 춤이 싹텄을 것이다. 그때 시장은 무엇보다 그 시끌벅적함으로 행인을 이끌었을 것이다. 표지판이 없어도 소리 나는 방향이 곧 시장 가는 길이었을 테니 말이다.

성균관대 한문학과 안대회 교수는 <조선을 사로잡은 꾼들>에서 시장을 무대로 활약했던 예인들을 불러낸다. 성대모사를 하는 이가 있었고, 책 읽어주는 이가 있었다. 한쪽에서 재담이 펼쳐지는 동안, 다른 쪽은 노래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는 이들이 점령했다.

서울 봉래동의 한 대형마트
이런 활기는 시대의 분위기이기도 했다. 봉건제가 흔들리면서 신분이 뒤섞이고 상업이 각광받기 시작한 조선 후기의 변화가 시장 풍경의 뒷배경이었다. 그러므로 옛 시장의 시끌벅적함 속에는 이전 시대의 울분이나 다가올 시대에 대한 기대가 녹아 있었을 것이다.

이런 전설이 현대의 시장에서는 사라진 지 오래다. 그나마 재래시장에 출몰하는 각설이들이 특유의 타령과 '이별의 부산 정거장' 같은 처량한 트롯 가락으로 행인들의 귀를 간질일 뿐이다.

삶에서 우러나온 재래시장의 웅성거림

재래시장, 하면 소란스러운 상태가 먼저 떠오르지만 직접 한 바퀴 돌다 보면 그 안에 일정한 질서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곳은 오래된 삶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상인들은 저마다 작은 의자와 엎드려 쉴 곳을 마련해 두었다. 점심 때마다 그곳에서 밥을 먹는다. 겨울이면 종이상자를 두르고 난로를 지펴 언 몸을 녹인다. 파는 행위와 삶은 구분되지 않는다.

경기도 성남 모란시장
그렇기 때문에 옆 상인들은 경쟁 상대 이전에 이웃이다. 서로 겨루면서도 어울려 산다. 그러다 보니 남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행동 범위가 생긴다. 재래시장의 소리에는 이런 질서가 녹아 있다.

시장 골목 깊숙이 들어갈수록 팔고 사는 소리들이 정연하게 들린다. 이웃의 장사를 훼방할 만큼의 호객은 듣기 어렵다. 파는 소리들은 가지각색이나 불협화음처럼 부딪혀 들리지 않는다. 귀에 거슬리지 않는 웅성거림으로 섞였다 흩어진다.

소리 각각의 부피가 단출해서인 동시에 시장 자체가 밖으로 열린 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소리는 고이지 않고 공중으로 흘러간다. 행인의 귀에도 이 땅의 흥정이 조금 누그러져 들린다.

파는 소리 하나하나도 담백하다. 나날이 현란해지는 광고·마케팅의 언어가 아직 재래시장까지 침투하지는 않았다. "이 장갑 따뜻해요", "오늘은 고등어가 싱싱해요" 같은 상인들의 말은 물건의 쓸모를 곧바로 가리킨다. 그런 말들을 듣고 있으면 '아, 장갑은 원래 손을 덥히는 것이었지, 옷맵시를 살리거나 부유함을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라는 생각이 든다. 고도화된 소비문화 속에서 부풀려지고 추상화된 소비욕구를 돌아보게 된다.

그 와중에 간간이 도드라지는 사는 이야기는 귀를 솔깃하게 한다. 장사가 조금 한가한 이웃 상인들끼리, 상인과 단골손님끼리, 나란히 막걸리를 마시던 손님들끼리 나누는 이야기라 별난 것은 아니나, 가끔 일없이 라디오를 들을 때처럼 "아들래미가 속 썩인다"거나 "이 철에는 뭐가 맛있다"는 수군거림을 흘려듣는 일은 어쩐지 마음 편하다. 지방 재래시장에선 지역 특유의 가락과 음색이 더해져 듣기가 더욱 쏠쏠하다.

생선 가게에선 아직 살아있는 미꾸라지들의 푸드덕 소리가 들린다. 살아있다고 몸부림치는 저 생명들을 우리는 살겠다고 매일 잡아먹는다. 사는 게 뭔가.

시인 이병률은 시장을 지나가는 길에 대해 이렇게 썼다. "트럭에서 막 부려져 번거로이 아우성을 떠는 가물치떼 미꾸라지떼/ 그래도 더 번거로운 일은 박하게도 흐벅지게도 살아야 하는 일, 쓸쓸한 일"('시장 거리' 중)

대형마트, 친절한 기계음과 침묵의 흥정 사이

요즘 사람들에겐 재래시장보다 대형마트가 가깝다. 이 최신식 시장의 편의성은 조직적 구성으로부터 나온다. 물건들은 일정한 범주로 구분되어 있고, 통로는 반듯하다. 동선은 일정하다. 손님들의 소비 행동은 처음부터 끝까지 계산되어 있다. 재래시장에서처럼 옆길로 샐 염려는 없어 보인다. 사고 파는 목적만이 명백한 대형마트에서 그저 지나갈 뿐인 행인의 존재는 성립되지 않는다.

마트의 입구로 정제된 소리들이 마중 나온다. 쇼핑카트가 매끈한 바닥을 구르는 소리는 굴곡이 없다. 판매원들의 호객은 상냥하고 깍듯하다. 꼬박꼬박 '고객님'으로 추어 올려주는 소리들 덕에 손님의 어깨가 으쓱하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음악이 발걸음을 돕는다.

그러나 명백한 것은 단조롭다. 사고 파는 것 이외에 어떤 의도나 정서도 없는 소리들은 금세 지루해진다. 판매원들의 소리는 비슷비슷하고, 예측할 수 있다. 의외성은 없다. 지루할 즈음이면 어김없이 안내방송이 나온다.

지금 정육 코너에서 돼지 앞다리살이, 가정용품 코너에서 형광등이 파격 세일 중이라는 뉴스다. 이 사건의 호객을 따라 안정적이던 손님들의 행렬이 흐트러진다. 정육 코너와 가정용품 코너의 밀도가 잠시 높아졌다가 물건이 바닥나는 순간 다시 분산된다. 손님들의 갈 길은 때때로 소리에 의해 조종당한다.

그래서일까. 대형마트의 소리는 재래시장의 소리보다 결코 시끄럽지 않은데도 신경을 곤두서게 만든다. 마음을 덜어주는 '라디오 소리'는 없다. 폐쇄된 공간에서 팔고자 하는 소리들만 아웅다웅한다. 친절하지만 기계적인 소리들만 가득하다.

삶에서 우러나온 소리가 없는 것은 그곳이 삶의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판매원들은 그곳에 살지 않는다. 그들은 밥을 먹지도 엎드려 쉬지도, 자신만의 공간을 꾸리지도 않는다. 그들은 '판매원'의 역할만을 수행 중이다.

'고객님'을 향한 소리는 사지 않거나 살 수 없는 이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대형마트는 엄정한 논리의 공간이다. 세상은 사는 사람과 사지 않는 사람, 살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어져 있다.

물건의 쓸모는 구구절절 설명되지 않는다. 흥정은 손님 스스로 조용히 해야 한다. 같은 쓸모를 지닌 다양한 가격대의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다. 그 앞에 멈춰 선 사람들은 말이 없지만, 어떻게 더 싸고 만족스럽게 살 것인가, 하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느라 머릿속이 시끄럽다.

우리는 모르는 사이 장바구니마다 시장의 소리까지 담아 집에 돌아온다. 오늘 누군가는 두 시간 전까지 재래시장에서 푸드덕거리던 미꾸라지로 추어탕을 끓이고, 누군가는 대형마트에서 파격 세일한 돼지 앞다리살로 제육볶음을 한다.

어떤 식탁에는 장터에서 들은 각설이 타령이 함께 오르고, 어떤 식탁에는 대형마트에서 들은 판매원의 설명이 함께 차려진다. 같은 저녁상이되, 같은 저녁상이 아니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