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료, 후배 사진작가들 강운구 작가 사진으로 칠순상 차려

<강운구를 핑계삼다> 전의 강운구 사진작가 / 임재범 기자
"말 그대로 저는 '핑계'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핑계가 이렇게 황홀한 것인 줄을 처음 알았습니다."

지난 12월21일 사진작가 강운구는 '핑계' 자격으로 한 잔치에 초대받았다. <강운구를 핑계삼다>라는 제목의 사진전이다. 잔치가 열린 갤러리 류가헌의 문을 열고 들어서니 사방이 강운구 작가로 가득하다.

웃는 모습, 열변을 토하는 표정, 생각에 잠긴 모습, 뒷모습, 걸음걸이…. 이갑철, 이창수, 최광호, 구본창 등 동료, 후배 작가 30여 명이 저마다 카메라에 담아둔 강운구 작가 사진으로 한 상 차렸다. 말하자면 '강운구'라는 특산물을 재료 삼은 요리대회 광경 같다.

"여기 제 청춘의 초상이 있네요." 강운구 작가가 30여 년 전 얼굴을 가리켰다. 주명덕 작가의 사진이다. "이건 중앙대 강의 나갔을 때 학생들 채점하던 장면이에요. 이 사진작가가 그땐 제 학생이었거든요. 이건 제 첫 전시 땐데, 여기 계신 분들 중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네요. 겨우 16년이 지났을 뿐인데요." 사진마다 사연이 불려 나왔다. 조용했던 전시장이 금세 왁자해졌다.

하나의 생 안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있는가. 결기 있기로 유명한 강운구 작가의 눈도 시간의 지층을 더듬느라 아득했다.

주병수, '2004년 2월, 한계령에서'
지하철에서 몰래 찍힌 '파파라치 컷'도 있었고, 끝끝내 기억이 명료해지지 않는 흑백 사진도 있었다. "나도 모르는 강운구가 많네요." 그날 저녁, 강운구 작가는 손님들에게 이 '강운구들'을 소개하느라 바빴다.

'핑계' 자격으로 참석한 강운구 작가를 도슨트로 등 떠민 이 '주객전도' 사진전의 정체는 무엇일까. 동료, 후배 사진작가들이 강운구 작가의 칠순을 맞아 벌인 일이다. "나이 내세워 뭐 하는 걸 그토록 싫어하는" 강운구 작가에게 혼날까봐 전시 제목도 <강운구를 핑계삼다>로 지었고, 허락은 막판에야 구했다.

사진전을 둘러볼수록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한 사람의 다양한 면모보다 한 사람을 향한 한결같은 경의다. 감히 정면에서 찍지 못한 사진도 많다.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는 강운구 작가의 뒷모습들에는 그때 그의 후방을 사수하던 이들의 마음이 깃들어 있다.

서헌강 작가는 '아버지와 스승의 그림자'라는 이름으로 작가 자신의 아버지 그림자 사진과 강운구 작가 그림자 사진을 나란히 배치해 놓았다. 노순택 작가는 버려진 TV 앞에 선 자신의 그림자를 찍고 적었다.

"선생님, 이런 풍경 앞에 서면 왜 선생님 얼굴이 떠오를까요? 어렵습니다. 풍경이…." 근대화에 밀려난 농촌 곳곳에 버려진 TV를 카메라에 담았던 강운구 작가의 '어려운 풍경'을 패러디한 작품이다.

성남훈, '2004년 서울, 세미나. 그날, 사진의 여백만큼이나 넓고 선명한 삶의 지문을 내 가슴에 남겨 놓으셨다.'
성남훈 작가는 몇 년 전 열린 세미나에서 강연하는 강운구 작가의 모습을 여백과 함께 간직하고 있었다. 강운구 작가가 "사진의 여백만큼이나 넓고 선명한 삶의 지문을 내 가슴에 남겨 놓았다"고 기억하면서.

그러므로 사진작가들에게 이 전시는 인연을 기리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강운구 작가가 국토 구석구석을 누비며 지켜온 한국 다큐멘터리사진의 역사를 기리는 것이며, 스스로 이어갈 것을 다짐하는 의미다.

지난 10월에는 강운구 작가가 여러 지면에 기고하거나 인터뷰한 글과 말을 엮은 <강운구 사진론>이 출간됐다. 이 책에 실린 '밥 사진론'은 얕고 현란한 디지털 사진에 현혹됐던 우리를 숙연하게 만든다.

"사진의 본질을 '기록성'으로 보자면, 기록성을 갖고 있는 사진이 가장 요긴한 것이 되는 셈이죠. 그와 마찬가지로, 쌀로 할 수 있는 가장 요긴한 것이 밥이지요. 밥이 가장 중요한 거고 보편적인 거예요.(중략) 사진적 인식은 결국 땅, 풍토, 문화적 배경을 인식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공부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에요. 여러 가지를 느끼고, 깨닫고, 살면서 터득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사진작가는 자기가 살고 있는 자기의 땅에 대한 애정이나 집착 없이는 그런 인식을 얻기가 상당히 어렵다고 판단합니다. 그렇게 되도록 여러 가지 정신이나 생활태도를 모아나가야겠지요."

강운구 작가는 많은 것을 보기 위해 온 국토를 속속들이 다녔다. 버스나 기차를 탈 때에도 졸지 않으려 애썼다. 바깥 풍경, 어둠 속으로 지나가는 흐릿한 불빛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노순택, '2006년. 선생님, 이런 풍경 앞에 서면 왜 선생님 얼굴이 떠오를 까요. 어렵습니다, 풍경아….'
"보지 않고, 외부를 통하지 않고, 대뜸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전시회 당일에도 지방을 돌다 오는 길이었다.

그래서일까. 최재영 작가의 카메라가 포착한 '라이카를 즐겨 쓰는 강운구의 눈'은 단단한 근육 같다. 실제로 보면 그런 느낌이 더 강하다. 그것이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의 눈이다. 어떤 눈은 단지 개인의 것이 아니며 단지 현재에 속한 것도 아님을 알려주는, 평생 단련된 결과물.

<강운구 사진론>에서 발견한 몇몇 문장들, 이를테면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확실하게 보는 방법이다. 기록해서, 두고두고 보자는 방법이다"는 <강운구를 핑계삼다>의 핑계로도 대단히 어울린다.

사진작가들이 경외를 바친 이 사진전은 한 사진작가의 업적이 아니라 사진을 매개로 길이길이 이어진 인연, 보고 기록한다는 것의 의미, 하나의 일에 정직하게 매진한 삶의 고단함과 고귀함까지 보여줬다. '강운구'를 확실하게, 두고두고 본 교훈은 사진계만의 것이 아니다.


주명덕, '1979년 당주동에 있는 주명덕 작업실을 찾은 강운구'
최재영, '라이카를 즐겨 쓰는 강운구의 눈. "선생님 사진이 있어야 연말에 술한 잔 먹을 수 있다 길래 사진 찍으러 왔습니다."
서헌강, '아버지와 스승의 그림자'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