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급 뇌성마비 행위예술가 자전적 얘기 담은 통해 메시지 전달

강성국 극, 연출의 'Oh! Baby'
'장애인도 예술을 할 수 있다'라는 말은 이제 촌스러운 선언이 됐다. 오히려 제한된 몸을 이끌고 표현하는 예술은 비장애인들에게 예상치 못한 충격과 참신한 아이디어를 선사한다.

하지만 '장애인 예술'을 보는 시선에는 대개 '나와 다름'이라는 무언의 경계짓기가 숨어 있다. 장애인들의 삶을 나와 같은 삶으로 보지 않으려는 폭력적인 편견인 셈이다.

일급 뇌성마비 행위예술가 강성국은 얼마 전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를 통해 비장애인들의 이런 편견에 메시지를 보냈다. 그가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현실로 돌아온 장애인의 신체

국내에도 소개된 바 있는 캐나다의 현대무용단 마리 쉬나르 컴퍼니는 의족을 사용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분을 해체하며 신체의 새로운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영국의 장애인 무용단 캔두코 컴퍼니 역시 장애인 무용수와 비장애인 무용수의 긴밀한 호흡을 통해 몸 활용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다.

강성국 작가
하지만 에서 가 보여주는 신체는 예술적 가능성을 위한 것이 아니다. 장애인의 실존을 보여주는 현실의 몸이다.

주체할 수 없이 움직이는 얼굴 근육과 끊임없이 떨리는 팔과 다리. 가만히 걸어가는 동작에서도 나타나는 미세한 경련들은 이미 그 안에 의 사연을 담고 있다.

두 사람뿐인 출연진과 소박한 스토리에 역동성과 긴장감을 불어넣는 것은 이 사연 담긴 몸의 움직임이다. 가 실제로 경험했던 사랑과 이별의 이야기를 투영시킨 는 일반인 연인에게 무엇 하나 제대로 해줄 수 없는 신체의 한계를 이야기한다.

이런 처지를 비관하고 좌절했던 감 작가의 감정의 편린들은 그대로 극 속에서 솔로 퍼포먼스나 드라마 전개의 모티프로 작용하고 있다.

장애를 가진 몸은 성별 구조의 태생적 균형마저 뛰어넘는다. 장애인 남성은 일반인 여성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약자다. 이런 관계 때문에 극 속 강성국은 연인 앞에서 위축되기도 한다.

또 작가 본인의 이야기이자 그의 부모의 이야기이기도 한 이 작품에서 장애를 가진 신체는 현재이자 미래의 불안 요소로서 기능하기도 한다. 아내가 혹시 자신처럼 장애를 가진 아기를 낳을까 고민하는 강성국의 모습은 그대로 벤자민 버튼을 연상시킨다.

사랑과 성, 출산 문제에 장애는 없다

그러나 는 드라마 안에서 이런 장애를 가진 몸을 보편적인 삶과 사랑의 서사로 감싸안는다. 마치 사랑에 계층이 없듯, 여자와 남자의 상황은 장애와 비장애의 구분을 떠나 대등한 입장에서 그려진다.

외롭고 답답한 현실에 반응하는 여자와 남자의 하루는 교차적으로 연출되며 싱글 남녀의 처지를 대변한다. 이윽고 동창생인 두 사람이 우연히 길에서 만나 티격태격 사랑을 꽃피우는 과정은 '장애인의 사랑'이 아닌 여느 연애사의 평범한 한 단면을 묘사한다.

처음엔 연인의 접촉을 꺼려하던 성국이 차츰 마음의 문을 열고 마침내 육체적 사랑에 이르는 과정은 하나의 '몸 시(詩)'처럼 은유적이고 상징적으로 다뤄져 감동을 준다. 장애인의 성이라는 일반 관객의 편견이 담긴 시선은 영상과 그림자를 활용한 두 배우의 애틋한 몸부림에 의해 서서히 무너진다.

특히 극 중 성국이 보여주는 2세에 대한 고민과 기대는 장애인만의 고민을 넘어 모든 부모들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이는 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는 "이제껏 내가 만나온 사람들과 2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면 대부분 자신처럼 자라길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하며 "키도 더 크고 얼굴도 더 잘 생긴, 자신이 가진 콤플렉스를 갖지 않은 아이를 바라는 이 세상 모든 부모의 마음을 담았다"고 연출 의도를 밝힌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도 아기가 출산되는 순간의 묘사다. 반라의 성국이 아내의 다리를 통과하는 장면은 그 자신의 실제 출산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머리가 아닌 다리부터 거꾸로 나온 '아기 강성국'은 그 영향으로 하루 동안 울지도 않고 생과 사의 기로에 있었다.

엄마가 밤새 안고 잔 후에 간신히 울음을 터트린 아이는 어느새 성장해 자신의 2세를 생각하는 어른이 됐다. 힘겹게 일어서서 천천히 걷기 시작하는 마지막 장면의 강성국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비틀거리지만 이내 힘차게 걷는 그의 모습은 벌써 아버지가 될 준비를 하고 있는 그 자신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강 작가는 "2세에 대한 고민과 불안은 장애인이나 비장애인들 모두가 거쳐야 할 과정이고, 분신은 우리가 살아가야 할 희망이 된다"고 설명하며 "설령 장애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작품 속 인물들처럼 서로 의지하며 행복하게 살면 되는 것"이라고 힘주어 주장한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