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여배우' 등 에피소드로 구성된 작품 속 각기 다른 사연

2007년 폭식과 혹독한 다이어트 경험이 있는 20대 여성 6명이 모여 '몸말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바디 모놀로그'공연이 준비 중이다. 여성의 몸가꾸기 열망뒤에 숨은 자기 소외, 신체의 변형과 함께 바뀌는 인간관계에 대해 꾸준한 소통을 통해 만들어진 창작작품이다.
키 160cm, 몸무게 31kg, 프랑스 출신의 모델 겸 배우 이벨 카로는 최근 28년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열세 살 때부터 시작된 심각한 신경성 식욕부진증이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으로 전문가들은 판단한다.

이 증상은 음식을 먹지 않고 운동을 하거나 음식을 폭식하고 다시 구토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자살도, 범죄로 인한 타살도 아닌,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은밀한 속정은 그녀의 죽음과 함께 묻히고 말았다.

특이하게도, 증상이 발생하는 남녀의 비율이 1:10으로, 여자들이 절대 다수다. 그녀의 죽음을 단지 생명을 위협하는, 춘기 소녀들의 철없는 행동에 대한 경고로서만 받아들여야 할까.

두 명의 여자가 마주 섰다. 거울을 보듯 턱을 내려 턱 아래 살이 접히는지 살펴본다. 뱃살을 손가락으로 집어보고, 가슴과 엉덩이를 쑥 내밀고는 S라인을 만들어 본다.

등살을 점검하기 위해서다. 그리고는 뒤로 돌아 허릿살을 앞쪽으로 모아가며 자신의 뒷모습을 이리저리 확인한다. 공연 첫 장면에 등장하는 '거울 신'은 모든 여성들이 공감할 법한 모습이다.

이곳은 지난해 12월 28일 찾아간 <바디 모놀로그>의 연습실 현장. 6명의 여성이 자신이 겪은 몸의 경험을 은유적으로 혹은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이 공연은 2010년 KT&G 상상마당에서 진행하는 두:드림[Do Dream] 공모를 통해 선정됐다.

여성 몸에 대한 연극은 이미 국내에서도 공연된 바 있다. 두 편 모두 이브 엔슬러 작이다. 오랜 세월 침묵을 강요당했던 여성의 성기가 자유를 선언하며 속 시원히 여성의 성을 이야기했던 <버자이너 모놀로그>, 자신의 뱃살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된 '과연 여자의 좋은 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통찰이 담긴 <굿바디>가 그것이다.

<굿바디>에서 이브 엔슬러는 얼굴과 몸이 예뻐지기만 하면 람들에게 랑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여성들의 가장 '위험한' 문제라고 결론짓는다. 물론 많은 여성들이 이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를 그녀는 묻지 않았다.

<바디 모놀로그>는 <굿바디>가 들춘 현상의 이면을 바라본다. 한 여성이 자신의 몸을 (일종의) 학대 혹은 혹하는 이유를 파고들어 간다.

쉽리 꺼내기 어려운 내밀한 상처와 속내를 들추어낸다. 그리고 묻는다. 그녀들이 자꾸 먹고 토하기를 반복하는 것은 위(胃)의 허기짐이 아니라, 결국 정서의 허기이자 관계의 허기가 아닐까,라고.

바디 모놀로그(사진제공:몸말 프로젝트)
자신 역시 단식과 폭식의 경험자이자, 춤 테라피스트이기도 한 연출가 정옥광 씨는 "자신의 몸에 가장 많은 관심을 두고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상태가 다이어트를 하거나 연애를 할 때라고 생각했다"며 작품의 배경을 설명했다.

'벌거벗은 여배우', '휴가와 휴가 이', '한밤의 러닝머신' 등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작품 속엔 각기 다른 연을 가진 인물이 등장한다. 무용가도 있고, 무대미술가, 연극이론 전공생, 그리고 청소년인 이들은 작품 속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연기한다. 자신이 직접 연기를 하기도, 아니기도 하다.

어떤 이는 다른 람과의 관계를 거부한 채, 한 람에게만 유독 애정을 갈구한다. 그리고 어떤 이는 냉장고를 열고 닫듯, 폭식과 거식을 오간다.

또 다른 이는 살찌는 것이 두려워 술을 마신 후에도 강박적으로 러닝 머신을 달린다. 그들은 목표를 정하고, 지키지 못한 자신을 벌하고, 다시 약속을 지키라며 채근한다.

이 같은 자신과의 싸움은 비단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정은 다를지언정, 많은 이들의 내면에서도 벌어지는 모습이다. 누군가에게는 자신과의 약속이 금연, 금주, 혹은 시험의 합격 등일 뿐이다.

'이것만 해결되면, 나는 좀 더 나은 람이 될 수 있고, 더 많은 이들의 관심과 애정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하고 많은 이들은 생각한다. 몸을 가만 두지 못하는 그녀들에게 결국 이것이 고된 자기와의 싸움이자, 관계의 개선을 위한 몸부림인 것이다.

<바디 모놀로그>의 최연소 배우인 18세의 윤채영 양은 '거식증 일기'라는 제목으로 블로그를 운영할 정도로 자신의 증상을 이야기하는 데 익숙하다.

여전히 증상이 진행 중인 그녀는 "흡연자가 담배가 생각나는 순간에, 애주가가 술이 생각나는 순간에, 식이장애 환자는 음식이 떠오른다. 하지만 음식은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보니 유혹의 순간이 더 많고, 더 숨기거나 드러나기도 쉬운 것 같다"고 말한다.

20대 후반의 무용수이자 퍼포머인 현지예 씨는 체질적으로 말랐기 때문에 경험한 것들-남에게 일부러 먹는 모습을 보여준다거나, 마른 몸에 대한 편협적이고 서늘한 시선을 느낀다거나, 말라서 복 없어 보인다는 등의 폭력적인 언-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실제로도 보이지 않는 억압으로 말수를 줄여왔던 그녀는 극중에서 입을 닫은 채 '냉장고 속으로 들어가는' 캐릭터로 표현된다.

공연은 연극과 춤, 퍼포먼스 등을 오간다. 배우로 무대에 서는 이들뿐 아니라 두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설치작품이나 진을 통해 전달하기 위해 공연장 전체를 갤러리처럼 용한다. 관객들은 의자가 아닌 바닥에 앉아 그들의 경험을 엿보고 공유한다.

"앞으로 이 작품이 어디에서 이야기되고 또 다른 삶을 는 람들의 어떤 허기와 마주하게 될지 궁금하다. 우리들이 풀어놓는 이야기가 여성들만의 것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정옥광 연출) 여자의 몸에서 시작되었지만 결국은 그들의 속내를 들춘 <바디 모놀로그>는 1월 13일부터 19일까지 KT&G 상상마당 라이브홀에서 공연된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