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in the Kitchen] (13) 해장국 가족 위해 밥벌이하는 아버지들의 애환이 한 그릇 가득 담겨 있어

송편과 팥죽, 떡국처럼 '시즌'마다 먹어줘야 하는 음식이 있다.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이지만 우리는 이런 음식을 먹으며 이 사회 테두리에서 '함께 산다'는 공감대를 갖는다. 나이를 먹으면 이런 음식은 점점 더 늘어난다.

연말이면 지겹도록 먹고 마시는 해장국과 폭탄주도 그 중 하나다. 요즘에는 신년회를 하는 사람도 많다고 하니, 폭탄주와 해장국 먹기는 1월까지 반복될 것이다.

밥벌이의 지겨움

어린 시절 얼큰하게 취한 아버지가 새벽녘 해장국으로 속을 달래던 모습을 볼 때마다 필자는 이런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왜 그러세요?' 어차피 깰 술은 뭐하러 그렇게 마셨을까? 저녁이면 또 취할 텐데 해장은 해서 무얼 할까? 폭탄주로 취하고, 해장국으로 술 깨는 일을 반복하는 아버지가 그렇게 이상할 수가 없었다. 떨어질 걸 알지만, 산꼭대기로 돌을 굴리는 시지푸스(Sisyphus)처럼.

자식은 이 말을 목구멍으로 삼키지만, 부인은 이 말을 삼킬 리가 없다. 그 시절 어머니는 이렇게 톡 쏘았다.

"도대체 왜 그러고 살아!"

그녀는 이렇게 바가지를 긁으면서 해장국을 끓였다. 한 겨울 뜨듯한 방안에는 술 냄새와 땀 냄새, 해장국 냄새가 묘하게 섞였다. 이 풍경은 우리나라 부부들이 가는 해와 오는 해를 맞을 때 겪는 한 전형인 듯싶다. 김규나는 단편 '북어'에서 이 풍경을 이렇게 썼다.

'미금은 냉동실을 열고 마트에서 세일할 때 사다 놓은 황태를 찾았다. 뭐가 이뻐서. 구시렁거리면서도 내일 아침에 술국을 끓여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언제 다 먹었는지 황태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한쪽 구석에 비닐봉지에 넣어 둘둘 싸놓은 북어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김규나, 단편 '북어' 중에서)

갖가지 냄새로 범벅된 방에서, 코를 막고 시위하던 어머니를 향해 아버지는 "이 냄새는 돈 냄새"라고 얼버무리며 해장국을 먹곤 했다.

세상 모든 아들들은 폭탄주로 취하고, 해장국으로 술을 깬다. 세상 모든 딸들은 바가지를 긁으면서 해장국을 끓여댄다. 적어도 한국에서 살다 보면 이렇게 된다.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 장면을 소설가 김훈은 유려한 문체로 이렇게 썼다.

'밥벌이도 힘들지만, 벌어놓은 밥을 넘기기도 그에 못지않게 힘들다. 술이 덜 깬 아침에 골은 깨어지고 속은 뒤집히는데, 다시 거리로 나아가기 위해 김 나는 밥을 마주하고 있으면 밥의 슬픔은 절정을 이룬다. 이것을 넘겨야 다시 이것을 벌 수가 있는데, 속이 쓰려서 이것을 넘길 수가 없다.' (김훈 '밥벌이의 지겨움' 중에서)

(어제) 노동의 끝과 (오늘) 노동의 시작, 그 사이에 해장국이 있다.

노동의 끝과 시작에서

해장국. 숙취를 푸는 국이다. 서울식 해장국은 소뼈를 푹 고아 우거지, 콩나물, 무를 넣고 끓인 토장국이다. 원래는 술국이었지만 선짓국과 함께 요즘은 해장국으로 쓰인다. 이밖에도 콩나물국, 북엇국을 비롯해 복국, 대구탕, 곰치국, 계란탕, 올갱이국,, 재첩국, 물메기탕, 물회와 짬뽕까지 다양한 국과 탕이 해장국으로 쓰인다.

노동의 시작과 끝에서 먹는 게 해장국이라면, 점심 때마다 해장국집 앞으로 집결하는 아버지들은 또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솥에서 북적북적 끓고 있는 기이 선짓국인 모앵인데 맞돈 드릴 기니 국부터 두 그릇 떠놓으소. 허 참. 그리고 본께 백정이 없어도 안 되것네. 백정이 없이믄 이 집 장사 못할 거 앙이가.' (박경리, 장편 <토지>)

'앨리스가 솔방울 만한 선지를 한 숟갈 퍼 올렸다. 맞은편에 앉은 성창수와 지병식은 선지를 한 쪽으로 몬 후 뜨거운 국물부터 훌훌 마셨다. 북한산 동쪽 끝자락 도깨비빌딩 지하 11층에 자리 잡은 해장국집 <흙>은 대뇌수사팀의 단골 식당이었다.

스티머스를 가동한 날에는 따로 약속을 잡지 않아도 <흙>에 모였다. 5대째 선지해장국만 판다는 주인 노파의 주장에 따르자면, 원래 <흙>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여의도 20층 빌딩의 9층과 10층을 썼다고 한다.

2040년부터 가축의 피를 날것이든 익힌 것이든 요리하여 파는 일 자체가 불법이 된 후 선지 해장국집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이 시작되었다. 지금은 지하 10층 이하에 숨어 알음알음 찾아오는 손님만 받았다.' (김탁환, 정재승 장편 <눈 먼 시계공>)

전자는 일제시대, 후자는 2042년 해장국집 장면이다. 술자리 잦은 요즘 같은 때 더 빈번하지만 기실 아버지들의 해장국 먹기는 연중무휴, 시즌을 가리지 않는다.

술 먹고 친해지고, 술 깨며 노동하기는 지극히 한국적인 노사문화에서 비롯되는 바, 2042년에도 술 먹은 다음 날 (혹은 술과 함께) 아버지들은 해장국을 먹어야 하는 것이다.

해장국 먹는 장소가 조금씩 변한다 해도, 그 옛날 장돌뱅이가 먹던 해장국과 2042년 과학수사대가 먹는 해장국의 간극은 멀지 않다. 아버지 노동의 종결과 서막 사이, 해장국이 놓여야 하므로.

서창, 해장국집

사람이 밥만으로 살 수 없듯이, 직장 또한 노동의 공간만은 아니다. 그곳은 지난한 시간을 함께 견뎌내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소다. 점심마다 삼삼오오 모여 선짓국, 복국, 북엇국, 감자탕을 인이 박히도록 나눠먹는 장면은 시간을 함께 견디려는 분투처럼 보인다. 스시와 브런치와 컵케이크가 범람하는 21세기지만, '피자 나눠먹기' 따위로 시간을 견뎌내기란 힘든 법이니까.

필자도 이제 해장국을 먹는 나이가 됐다. 토끼눈을 뜨고 '도대체 왜?'라고 던진 그 질문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김훈의 말을 빌리자면 사람의 밥은 사람들 사이 관계 속에서 굴러다니므로. 그래서 내 밥과 너의 밥이 뒤엉켜 있으므로.

'친구들아, 밥벌이에는 아무 대책이 없다.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이걸 잊지 말고 또다시 각자 핸드폰을 차고 거리고 나가서 꾸역꾸역 밥을 벌자. 무슨 도리가 있겠는가. 아무 도리 없다.' (김훈 '밥벌이의 지겨움')

새해다. 2011년이란 글자는 여전히 낯설고, 날씨는 차고, 살아갈 수백 일이 기다리고 있다. 새해를 맞는 어린이의 마음은 설레겠지만, 새해를 맞는 어른들의 마음은 불안하다. 지난한 시간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술 한 잔, 해장국 한 그릇 나눌 생각이 간절해지는 '시즌'이다. 한 겨울 뜨듯한 방에 퍼지던 아버지의 술 냄새와 땀 냄새, 해장국 냄새가 그리운 날이다.

'비 오다 그친 날, 슬레이트집을 지나다가/ 얼굴에 검버섯 핀 아버지의 냄새를 맡는다// 양철 바케쓰에 조개탄을 담아 양손에 쥐고 오르던 길/ 잘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언 손으로 얼굴 감싸쥐어도/ 겨울 새벽은 쉬 밝아오지 않고,/ 막 피워낸 난로 속 불꽃은 왜 그리 눈을 맵게 하던지(…)// 한달치 봉급을 들고 아들이 돌아오면 아버지는 마른 정강이를 이끌고 해장국 집으로 갔다(…)// 살다 허기지면 찾아가는 그 집/ 금빛 바늘처럼 날렵한 울음 사이로/ 까마귀 한 마리 잎을 흔들며 날아간다' (전성호, '서창, 해장국집' 중에서)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