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양성 프로그램 거친 최원종, 임세륜, 이성구 연출작 선보여

이성구 연출의 <사리-0>
연출가가 연출가를 키우는 연극계의 실험 프로젝트가 곧 결실을 볼 예정이다. 서울연극협회가 신인 연출가들을 발굴, 육성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진행해온 차세대 연출가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요람을 흔들다'가 드디어 그동안의 성과를 공개했다.

본격적인 경쟁 시작한 3인의 신예

서울연극협회가 4일 발표한 3팀의 본 공연 대상자들은 약 5개월 동안의 심사와 경쟁을 거치며 공연을 준비했고, 지난 5일부터 차례로 자신들의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 5일부터 를 선보이며 시작된 본 공연은 9일 , 14일 이성구 연출의 <사라-0>으로 이어진다.

최원종 연출의 <에어로빅 보이즈>는 십여 년 동안 공연해온 홍대 근처의 메탈클럽이 폐업을 하면서 데스메탈 밴드의 멤버들이 에어로빅 대회까지 나가는 우여곡절을 그렸다.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는 술에 취하면 자신을 구타하던 남편과 노동자의 삶을 거부하는 아들이 잇따라 죽자 운명에 따르기보다는 혁명의 길에 나선 어머니를 보여준다. 이성구 연출의 <사라-0>은 '사랑'을 테마로 하여 채울 수 없는 욕망과 결핍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최원종 연출의 <에어로빅보이즈>
특히 이번 과정에서는 극단 대표나 페스티벌 예술감독 등 선배 연출가들이 멘토가 되어 공연 지원을 하는 '<위대한 탄생>식' 의 인큐베이팅 시스템이 화제가 됐다. 지난해 7월 출발한 이 사업은 공모 후 8명의 신인 연출가들이 12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되며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멘토 그룹에는 김성노 한국연극연출가협회장, 김석만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 김철리 전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예술감독, 박장렬 서울연극협회장 등 영향력 있는 연극단체장들을 비롯해 나진환 극단 피악 대표, 양정웅 극단여행자 대표, 박재완 극단 루트21 대표 등 현장에서 한국연극을 이끌고 있는 선배연출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1차 관문이었던 10월 쇼케이스에서는 8명의 신예 중 3인이 본 공연 대상자로 선정됐다. 이 관문을 통과한 이가 최원종, 임세륜, 그리고 이성구 연출가다.

심사에 참여했던 박재완 루트21 대표는 "요람을 흔들 만큼 도전적인 작품을 위주로 뽑았다"고 선정 기준을 밝히며 "세 작품 모두 전통적인 연극 흐름과 새로운 감각과 적절히 잘 드러났다"라고 평가했다. 이들은 이후 자신의 멘토들과 함께 토론회와 멤버십 트레이닝, 개별 멘토링 등을 통해 새해 초 작품을 완성시켰다.

첫 발 뗀 연출가 양성 프로젝트

임세륜 연출의 <고리끼의 어머니>
가장 먼저 관객과 만난 최원종 연출가는 "이 공연이 끝났을 때 '너는 연출 말고 시나리오나 써라'라는 말을 안 듣기 위해 열심히 했다"고 소감을 밝히며 "배우들이 땀 흘리면 관객들이 좋아한다는 속설도 있듯이, 데스메탈과 에어로빅을 통해 변화의 열망을 지닌 34살의 고통과 희망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리끼의 원작에 브레히트의 번안본을 섞은 임세륜 연출가는 "1인 1역부터 8역까지 하는 배우들이 있다"며 "그 역마다의 차이를 눈 여겨 보면 흥미로울 것"이라고 관전 포인트를 설명했다.

한편 인물들의 내면 세계에 초점을 맞춘 이성구 연출의 <사라-0>을 멘토링했던 박장렬 서울연극협회장은 "이 작품은 정서적으로 내면을 따라가는 여행"이라고 설명하며 "그림으로 보면 뭔가 난해하지만 동시에 흥미로운 점이 마치 달리의 그림을 닮았다"고 평가했다.

이들 신진 연출가들에게 이번 프로그램의 의미는 무엇보다 풍요로운 제작 환경이다. 최원종 연출가는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서 멘토에게서 기술적인 부분도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풍족한 제작비와 연습실 지원 등 좋은 여건에서 작업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며 이번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에 대한 의미를 부여했다.

임세륜 연출가 역시 "젊은 연출가들이 풍부한 제작비를 받는 것은 어렵다"며 "가능성 있는 인재들이 연극의 길을 포기하지 않도록 장려하고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성구 연출가는 "작업할 때 내 멘토였던 양정웅 연출가가 한 말이 생각난다.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 '왜 하려고 하나',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이 말들은 지금도 고민 중이고 앞으로 할 작업에서도 계속 화두가 될 것 같다"고 되돌아봤다.

하지만 자신만의 공고한 세계를 가진 연출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다른 연출가들의 조언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임세륜 연출가도 "젊은 예술가이기 때문에 멘토가 필요하다기보다는 연령이나 경력과 무관하게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고, 이번 프로그램도 그런 점에서 의미 있다"고 말한다.

임세륜 연출가의 멘토였던 박재완 루트21 대표도 이에 동의하며 "대본상의 문제점이나 연출의 관점, 작품 방향 등을 조언하는 협력연출의 입장을 견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고집 없는 연출가는 없지만 고집과 아집을 구분할 줄 아는 것도 중요하다"며 객관적 시선에 대한 중요성을 당부했다.

이번 프로그램은 16일까지 모든 공연을 마친 후 24일 합평회를 통해 1편의 우수작을 선정한다. 우수작으로 선정된 작품은 올해 서울연극제 참가 자격이 주어지며 해외 연극제의 출품도 타진할 예정이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