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예종 미술원 공방과 장인들 통해 현대미술의 과정 보여줘

현대미술이 어려운 것은 과정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모든 사회 영역이 그렇듯, 미술에도 전문적 이론과 기술이 쓰이고 있으며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복잡다단한 단계가 있다.

전시장에서 관객과 마주하는 미술작품은 새로운 인식의 문이기 이전에 그것이 거쳐 온 과정의 축적이다. 하지만 그 점은 종종 간과된다.

전시장의 작품은 작가의 머릿속에서 금방 툭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곤 한다. 그래서 관객들은 알쏭달쏭한 작가의 말만 읽곤 어렵다고 고개를 젓는다.

작가의 설명 역시 작품을 구성하는 한 단계에 불과하고, 사람을 대할 때처럼 한 작품의 밀도를 한눈에 헤아릴 수 없는 것이 당연한데도 말이다.

왜, 대신 어떻게, 라고 물으면 한결 쉬워진다. 저 조각의 독특한 모서리 부분은 사실 작가의 의도가 아닌 재료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을지 모른다. 저 영상 작품의 아련한 분위기는 특정한 카메라와 필름을 사용한 때문이다. 저 설치 작품의 정교한 디테일은 천을 다루는 숙련된 솜씨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이런 이야깃거리들이 풀려나와 난해한 미술 용어를 뒷받치기 때문이다. 미술작가의 '실존적 고뇌'에 근거가 생기는 셈이다.

서울 종로구 안국동의 갤러리175에서 열리고 있는 전은 현대미술의 과정을 전면에 내세운다. 주인공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의 공방과 그곳의 장인들. 목재를 다루는 공방, 도자와 유리를 만드는 공방, 모형을 제작하거나 영상 기술이 총집결된 공방의 풍경과 도구들이 작품 대신, 아니 작품으로 전시되어 있다.

"공방이야말로 미술작품의 자궁이 아닐까요?" 전을 기획한 황준하 씨는 "미술 전시가 꼭 작품과 작가에 대한 것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미술원 재학 중 보고 겪었던 작업 과정이 그에게는 더 '미술'에 가까웠던 것이다.

이론을 가르치는 교수만큼이나 기술적으로 미술 작품에 기여하는 장인들을 조명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만약 그들의 조력이 없었다면 미술에 대한 많은 아이디어가 작가들의 머릿속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공방에서의 일을 찍은 사진과 영상은 현대미술의 추상성을 구체적이고 물질적으로 설명해준다. "인간의 의식이 일하는 과정 내부에 갇혀 있음"을 다시 보자고 제안한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의 <장인>이 떠오른다.

우리가 물건을 다루는 행위에는 태도와 판단이 배어 있으므로, 물건들이 종교적, 사회적, 정치적 가치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물건을 다루며 배우는 행위는 직물의 질을 판별하거나 물고기를 제대로 잡는 방법에 대해 심사숙고하는 자세를 요구한다.

질 좋은 천이나 잘 만든 요리에서 우리는 좋고 훌륭하다는 것, 즉 '선'의 폭넓은 범주들을 탐색할 수 있다." 현대미술이 뜬구름이 되어 버린 것은 작품 역시 인간 노동의 산물임을 숨겨 왔기 때문이 아닐까.

장인의 기술이 자연스럽게 예술로 이어지는 과정도 흥미롭다. 전시장 한쪽에는 장인들이 직접 만든 작품들이 있다. 각각 "도대체 어떻게 만든 것인가"와 "도대체 어떤 뜻이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동시에 끌어내는 기술집약적 미술 작품이다. 인간의 얼굴과 일상의 온갖 집기들을 한 데 뭉뚱그려 놓은 한선욱 장인의 도자 작품은 한 편의 묵시록 같다.

영상 기술을 담당하는 장인 허덕희는 자신들의 일을 요리사, 무술가, DJ 등에 빗댄 연출사진을 찍었다. 유리 장인 김종묵은 유리공 안에 낱낱의 키보드 자판을 꼼짝 없이 가두어 놓곤 '백분토론'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도구와 노동, 기술과 환경 등 재료를 보는 것은 작가와의 대화, 평론 읽기만큼이나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유용한 방법이다. 전은 1월27일까지 열린다. 02-720-9282.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