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 작품 (4) 전세대란강홍구, 이혜인 작가 등 작품 통해 도시 잔혹사 고발

연말 모임, 30대의 미혼자와 기혼자가 뒤섞인 자리의 화두는 단연 '집'이다. 서울에 사는 이상 민감하지 않을 수 없는 집값은 최근 전세가가 고공행진하는 덕에 더 뜨거운 이야기 소재가 되고 있다.

자신과 주변에서 일어나는 전세가와 관련한 사연을 하나씩 들어올린다. 여유자금이 있던 누군가는 3억을 올려달라는 집주인 요구에 잠시 사채 빚을 얻어 메웠고, 어떤 이는 300백만원에 합의했다며 다행스러워했다. 또 어떤 이는 몇 천만원이 상승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다.

또 다른 이는 대출로는 해결되지 않는 전세가를 감당할 길이 없어 오피스텔 월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다고 했다. 그나마 대안이라도 있는 사람은 행복한 축에 낀다. 발버둥쳐봐도 비빌 언덕 하나 없는 이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이 사태에 대해 부동산 전문가들과 정부는 각자 원인을 분석하느라 분주하다. 전문가들은 이명박 정부가 제시한 부동산 정책의 실패로, 전세 대란은 '시장의 복수'라며 날카롭게 지적한다. 경제평론가로도 활동하는 시골의사 박경철씨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정부+업계+언론의 합작품'이라며 비판했다. 더불어 부동산 문제는 국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라고 힘주어 말했다.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런 권리가 주어질 수 있을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마천루가 즐비한 대도시, 그러나 대다수의 서민들에게 그 핏기 없는 건축물은 냉혹하기 짝이 없다.

더구나 가장 밑에서 도시를 떠받들고 있는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도시는 안락하게 쉴 공간을 제공하지 않는다. 툭하면 그들을 도시 변두리로 쫓아내곤 한다. 이들의 노매드적 삶에 자의가 끼일 여지는 없다. 전세 대란 속의 서민의 모습도 이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

"우리 집이 사라졌습니다. 꿈이기를 바랐습니다"라는 독백으로 시작되는 <모는 집으로 가는 길을 모른다>(무브먼트 당-당, 연출 김민정). 모는 원래 집이 있던 자리를 미친 듯이 뛰어다니면서 집을 찾아 헤맨다. 도시 개발 논리를 앞세워 원주민의 삶의 터전을 앗아가는, 도시의 잔혹사는 사진작가들의 작품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수련자>, <미키네 집>(2005~2006), <사라지다-은평 뉴타운>(2009), <그 집>(2010) 등 집에 관한 연작을 해온 강홍구 작가. 이 중 앞선 두 연작엔 재개발 지역의 허물어진 집이 등장한다. 영혼이 빠져나간 그곳에서 발견한 장난감의 생생한 색감은 폐허 직전의 주택가와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이질적으로 반짝인다.

이곳에 살던 이들은 어디로 간 걸까. 그 단서를 이혜인 작가의 <빈 주소, 38번 국도 옆> 전시에서 발견할 수 있다. 38번 국도가 지나는 곳, 뉴타운 개발의 요충지인 그곳은 지역 주민들이 농사를 짓던 곳이다. 이제 그곳은 황무지이지만, 곳곳에 비닐하우스가 눈에 띈다.

가장 싼 값으로, 빠른 시간 안에 몸을 뉘일 수 있는 곳, 창고의 형태를 가진 거처. 완전히 정착하지 못한, 그럴 수 없는 도시 이주민의 서글픈 삶이 그곳에 있다.

재개발 지역, 빈 집의 내부를 촬영하는 최우영 작가가 말하듯, 그들은 결국 우리에게 '잊혀진 이웃'이 되고 마는 걸까. 70년대 산업화 시대의 가난한 노동자를 조명했던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그 난장이는 옷을 갈아입을 뿐, 여전히 우리 옆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