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5주기 추모 굿, '블루룸' 앞 소지 행사 예술의 뿌리 돌아보다

지난 1월 25일 안국동 한쪽 어귀에서 태평소 소리와 장구 소리가 요란했다. 얼핏 방울 소리도 들리던 이곳에선 한바탕 잔치가 벌어진 듯 맹렬한 추위에도 사람의 발길이 분주했다.

선운 임이조 서울시 무용단장의 헌향을 시작으로 3시 33분부터 갤러리 아트링크에서 추모제가 열렸다. 한옥의 'ㅁ'자 마당이 있는 이곳에서 잠시 후 추모굿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무속인은 현장에 모인 사람들과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몸을 푸는가 싶더니, 이내 작두를 탔다. 비디오 아트 창시자 백남준의 5주기를 맞아 열린 최재영 사진전 <백남준 굿>의 오프닝 행사 겸 추모제 현장이다. 현장에 모인 이들은 술을 나누고, 백남준과의 추억을 나누고 기록하며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현역 사진기자인 최재영씨가 이 사진전을 통해 선보인 백남준의 퍼포먼스 기록은 1990년으로 거슬러 오른다. 백남준은 자신의 생일인 7월 20일, 서울 현대화랑 뒷마당에서 플럭서스의 멤버이자 절친이었던 요셉 보이스를 기리며 굿 퍼포먼스를 펼쳤다.

총 20여 점으로 구성된 최재영 사진전은 '굿'이 백남준 예술에 미친 영향력을 만인에게 드러낸 기록이기도 하다. 사진 속 백남준은 어설프지만 진짜 무당처럼 신명 난 모습이다.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그는 당시 1시간 동안 진지한 굿판을 벌였다.

2011년 1월 26일 여성사전시관에서 열린 윤석남 작가의 '블루룸' 소지 행사
눕혀놓은 피아노 위에 쌀이 든 밥그릇을 올려놓기도 하고 망자가 된 요셉 보이스 사진 위에 쌀을 뿌리기도 했다. 당시 굿판에는 수백 명의 관객이 참석했고 한국은 물론 프랑스 방송국에서도 촬영해 프랑스 전역에 방송했다.

'굿'이라는 한국의 전통문화와 '퍼포먼스'라는 서양의 아방가르드 문화가 결합하고 이에 열렬한 관심을 보이는 세계적 공감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어릴 적부터 무속신앙을 믿던 어머니 덕에 한국의 샤머니즘에 익숙했던 백남준의 사상이나 예술은 한국을 떠나기 전 제의에 이미 뿌리내리고 있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문인희씨는 "표면적으로는 혼란이나, 무질서, 파괴를 연상시키는 것이 '굿'이고 백남준의 해프닝 퍼포먼스지만, 그 두 행위의 이면에는 20세기 현대미술의 화두였던 이슈들, 즉 예술과 대중의 상호적인 접근성(accessibility), 참여성(participation), 비결정성(indeterminacy), 우연을 통해 연결되는 동시성(synchronicity through randomness), 삶의 수행성(performativity) 등이 함축되어 있다"며 굿과 현대미술의 관계를 설명했다.

굿에 내재한 제의적 요소들이 미술에 적용되어 해프닝이나 비디오 아트를 탄생시켰다는 것은 미술사적으로도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같은 그의 예술적 뿌리는 2005년 뉴욕의 한 스튜디오에서 열린 그의 생애 마지막 퍼포먼스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아리랑 악보를 찢어서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악보 조각을 먹였다.

백남준의 추모 굿판이 벌어진 다음 날, 여성사전시관에는 여성주의 미술작가 7명의 전시 <워킹 맘마미아> 전시를 마치며 조촐한 '소지(燒紙)' 행사가 열렸다. 불 밝히는 촛불 하나, 시루떡과 귤 그리고 술로 차린 소박한 차례상이 <블루룸> 앞에 차려졌다. 윤석남 작가가 무조신인 바리데기를 소재로 완성한 작품이다.

2011년 1월 25일 아트링크에서 열린 백남준 5주기 추모제
오귀대왕의 일곱째 딸로 태어나 버림을 받은 바리는 아버지를 살릴 약을 구하기 위해 온갖 궂은 일을 다했다. 그 희생의 대가로 받은 빨강, 파랑, 노랑, 하얀색의 꽃도 차례상 옆에 자리했다. <블루룸> 앞에서 윤석남 작가가 공손히 엎드린다. 그리고 <블루룸>의 일부인 한지 작품 몇 장을 떼어내 불을 붙였다.

무가에서 굿을 하거나 제사를 지낸 후 부정을 없애고 신에게 소원을 빈다는 의미로 지방이나 축문을 태우는 행위를 하는데, 이번 소지 행사는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졌다. 백남준 추모굿에서도 만날 수 있었던 광경이다.

백남준은 언젠가 자신의 아내 구보타 시게코에게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한국의 무속은 신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한마디로 소통이야.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이지. 점과 점을 연결하면 선이 되고, 선과 선을 이으면 면이 되고, 면은 오브제가 되고 결국 오브제가 세상이 되는 게 아니겠어? 신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한국의 무속은 따지고 보면 세상의 시작인 셈이지." 같은 맥락에서 그는 줄곧 자신을 '굿장이'라고 칭하며 제의와 예술과 연결짓곤 했다.

예술이 제의와 한몸이던 고대 예술 이후, 예술은 분화를 거듭하며 제의적 요소를 자신의 몸에서 분리시켰다. 현대예술에서는 무용을 제외하고 제의를 창작의 소재로 종종 활용해왔다.

80년대의 연극에서의 마당극 논쟁이나 마임에서의 굿 퍼포먼스는 여전히 이분된 예술과 제의의 관계를 고민하게 했다. 하지만 전통문화가 다시 현대예술의 새로운 모티프가 되는 지금, 제의는 한국의 현대예술에서 새롭게 의미를 부여받고 있다.

1990년 7월 20일 서울 현대화랑에서 벌인 백남준의 굿판, 사진=최재영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