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영훈 작곡가의 명곡들 무대서 되살아나

뮤지컬 <광화문연가> 배우 송창의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해 갔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1988년 가수 이문세의 5집 앨범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에는 주옥 같은 곡들이 많다. 수록곡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붉은 노을', '시를 위한 시', '안개꽃 추억으로' 등은 지금도 386세대들에게 아련한 추억을 안겨준다. 젊은 세대들에겐 귀에 익숙한 멜로디와 가사로 따스한 감성을 전한다.

그 속엔 또 하나의 히트곡 '광화문연가'가 있다. 광화문 네거리와 덕수궁 돌담길, 그리고 정동길은 '광화문 연가'의 가사 속에 녹아 연인들의 추억을 되새긴다.

20년이 지난 이 노래가 색다른 옷을 입고 대중에게 다가간다. 바로 뮤지컬 <광화문 연가>이다. 2008년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작곡가 이영훈이 2004년부터 준비했던 작품이다. 고인의 마지막 유작이었지만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로부터 8년 만에 그의 꿈이 무대에 오른다. 세 남녀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고 이영훈을 담다

뮤지컬 <광화문연가> 제작발표회 사진(사진=(주)광화문연가)
"하늘 아래에서 지켜보고 있을 고인을 생각하니 무척 기쁩니다. 고인은 창작뮤지컬계의 한 구석에서 뮤지컬 <광화문연가>와 함께 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해 왔습니다. 그리고 고인의 꿈이었던 광화문의 세종문화회관에서 초연을 하게 되어서 너무 기쁘고 기대가 됩니다."

방송인이자 고인의 친구, 뮤지컬 <광화문연가>의 공동기획자 김승현은 <광화문연가>의 제작발표회에서 고인이 무척 그리웠던 모양이다. 마치 고인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광화문연가>의 진행과정과 완성의 단계를 소소하게 설명했다.

지난 1월 24일 서울 중구 서울프라자호텔에서 열린 <광화문연가> 제작발표회는 고 이영훈을 회상하기에 충분하리만큼 그의 음악세계가 깊이 조명됐다. 대중가요 <광화문연가>가 뮤지컬로 태어나기까지의 과정이기도 했다.

3월 20일부터 4월 10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광화문연가>는 고인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 작품이기도 하다. 극중 유명 작곡가 상훈과 그의 후배 현우 그리고 그들이 사랑하는 여인 여주의 이야기다.

<광화문연가>는 세 사람이 엇갈린 사랑을 하는 시간적 공간과 시대적 자화상을 들춰낸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상훈 앞에 관객들은 80년대 광화문 거리와 시위현장, 라이브 카페 등 추억의 장소들을 들여다볼 수 있다. 동시에 극중 상훈의 모습에선 작곡가 이영훈이 그대로 살아있다.

현재의 상훈 역에 뮤지컬배우 박정환이 캐스팅된 것도 생전 고인의 모습과 비슷했기 때문. 심지어 김승현은 "마치 영훈이가 노래를 부르는 것 같다"고 말했을 정도다.

고인은 1985년 가수 이문세를 만나 아마추어 작곡가로 대중음악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문세의 3집과 4집, 5집이 연이어 성공하면서 두 사람의 공동작업은 당대 가요계의 흐름을 바꿔놓았을 정도로 대단했다.

그 세 개의 앨범에 실린 스물다섯 곡은 '이영훈표' 발라드라는 이름으로 대중에게 각인되며 애잔한 멜로디와 가사로 열광케 했다. 20대의 고인이 품었던 음악의 열정이 고스란히 살아나는 순간이었다.

이후에도 고인은 작곡가로, 음반 프로듀서로서 활동하며 2008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대중음악사에 없어서는 안 될 인물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런 그의 20대부터 40대 이후의 모습을 무대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상훈이 그랜드피아노 앞에서 연주하는 장면은 괜한 것이 아니다.

<광화문연가>의 임영근 프로듀서는 "처음부터 고인과 시나리오 작업을 함께 했다. 그 시나리오 중 37% 정도가 이 작품에 반영될 것"이라며 "전체적인 뼈대는 시나리오의 50%가 넘는다. 그러나 60~70%는 새로운 작업이었다"고 언급했다.

반 이상을 원래 시나리오에서 새롭게 각색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새로운 작업은 고인과 그의 음악세계를 재조명하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연출을 맡은 이지나씨는 "이영훈 작곡가를 떠날 수 없었다"며 "남자주인공(송창의, 윤도현, 박정환)들에게 작곡가의 모습을 투영했다. 역시나 천재적인 음악인의 모습이 투영되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주크박스 뮤지컬의 새로운 축

'그대와의 대화', '옛사랑', '소녀', '난 아직 모르잖아요', '깊은 밤을 날아서', '빗속에서', '이별이야기', '그녀의 웃음소리뿐', '이 세상 살아가다 보면', '가을이 오면',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사랑이 지나가면', '붉은 노을'... 히트곡을 나열한 것이 아니다. 뮤지컬 <광화문연가>에 오르는 노래들이다. 우리의 귀에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이영훈의 곡들이다.

총 30개의 곡들은 <광화문연가>에서 새록새록 피어 오른다. 특히 뮤지컬 속에서 주 무대가 될 라이브카페 블루아지트에서의 장면들은 우리의 향수를 자극할 정도의 음악들이 흘러나올 예정이다. 상훈과 현우, 여주가 부르는 곡들은 추억의 보따리를 풀어놓듯 귀를 기울이게 만들 것이다.

"워낙 이영훈 작곡가의 곡들은 대중을 울리고 웃긴 경력이 있다. 신곡은 손댈 때 쉽지만, 워낙 손댈 곳이 없는 곡들을 만질 때는 힘이 든다. 원곡에 충실했다." 편곡을 맡은 작곡가 이경섭 씨는 주크박스 뮤지컬의 장점을 되도록 살렸다고 했다.

한 작곡가의 곡이 무대를 장악하는 만큼 원곡에 대한 충실도는 어느 정도 예상된 바다. 더욱이 가수 윤도현(상훈 역)과 리사(여주 역), 아이돌그룹 비스트의 양요섭(지용 역) 등이 주요 역할을 맡아 더욱 리얼한 상황에서 노래를 들려준다. 대중음악이 울려 퍼지는 자리이기에 실제 가수가 부르는 멜로디는 그 현실감의 무게가 달리 느껴질 듯하다.

제작사 (주)광화문연가 측은 "국내에서 대중가요들을 이용하여 뮤지컬을 만들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지만 스토리 위에 각각의 노래를 짜깁기한 공연이 대부분이었다"며 "국내에서 단일 작곡가의 대중음악으로 만들어진 작품으로는 최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주크박스 뮤지컬의 젖줄로 알려진 는 스웨덴 출신 그룹 아바의 곡들로 채워진 뮤지컬이다. 'Mamma Mia', 'Gimme! Gimme! Gimme', 'Dancing Queen' 등은 아직도 어깨를 들썩이는 곡들이다.

국내에선 뮤지컬 <달고나>와 <젊음의 행진> 등이 인기 대중가요를 섞어 만들어 주크박스 뮤지컬의 명성을 이어왔다. <광화문연가>는 한 작곡가가 만든 곡이 무대에 올려지는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뮤지컬 평론가 겸 순천향대 원종원 교수는 "주크박스 뮤지컬은 대중적이고 친근한 장르다. 무대에서 라이브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게 큰 매력"이라며 "무대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광화문연가>를 보면서 펑펑 울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나 연출가 인터뷰

뮤지컬 <광화문연가>는 어떤 줄거리를 갖고 있을지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노랫말 속에는 지난 사랑에 대한, 연인에 대한 그리움이 듬뿍 담아있을 뿐이다. 익숙한 노래를 바탕으로 어떠한 창의적인 뮤지컬이 만들어졌을지도 흥미롭다. 각색과 연출을 담당한 이지나 연출가에게 들어봤다.

뮤지컬 <광화문연가>의 작업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대중적임에도 불구하고 방대한 작업임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잘 알려진 '광화문연가'도 좋지만, '그대와의 대화'라는 곡을 메인 테마로 해서 피아노 반주로 들어갈 계획이다. 많이 알려진 곡을 테마로 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유명 히트곡의 나열이 아니라 '이런 곡도 있구나'를 관객들이 알아가셨으면 한다."

초연을 세종문화회관에서 하는데, 공연장이 너무 크지 않나.

"처음에 너무 크다고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이영훈 작곡가도 원했고, 광화문에 있는 극장에서 하는 게 맞는다고 본다. 큰 극장에 맞게 시대상을 크게 다룰 예정이다. 일단 스토리가 아닌 세월의 깊이에 따라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무대를 연출할 계획이다. 세월의 흐름을 따라 진행될 것이다."

그렇다면 시대적 포인트는?

"1980년대에서 2011년 현재까지다. 사실 뮤지컬 연출에서 과거 스토리는 너무 쉽다. 이영훈 작곡가와 같은 우리 또래의 사람들에게는 잘 맞는다. 사회적 배경인 민주화운동 등 고뇌에 들끓는 청춘의 시대를 그리는 것 말이다. 하지만 극을 통해 그보다는 젊은이들의 고뇌를 희망으로, 진취적으로 그려냈다. 스스로 작품을 통해 행복해지고 싶다. 결국 환희와 생동감 있는 장면들을 넣어, 보고 있으면 행복해지는 작품으로 만들 것이다."



강은영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