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한 국제학술심포지엄 열러

홍경택, Master & Slave, 2010
대중적이고 순간적이며,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가능한 이것. 동시에 재미있고 섹시하면서 익살스럽고 매혹적이며 값싸기까지 한 이것은? 바로 리차드 해밀턴이 정의한 '팝아트'다.

영국의 아티스트인 그는 <오늘날 우리 가정을 이토록 색다르고 실감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길고 모호한 제목의 최초의 팝아트 작품을 선보였다. 논란의 여지 없이 미술사에서 인정하는 팝아트의 탄생이다.

이후 팝아트가 크게 발전한 곳은 미국이다. 로버트 라우젠버그와 앤디 워홀을 거치면서 20세기 현대미술사에서 가장 강력한 지지를 받으며 대중적 친화력을 발휘하고 있는 팝아트. 그 영향력은 동양에까지 미쳐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이데올로기의 경계마저 지우며 현대미술사의 지배적인 사조로 자리잡았다.

현재 한·중·일의 팝아트를 조명한 를 전시 중인 국립현대미술관이 지난 1월 27일, <동아시아 팝아트의 시원과 전개>에 관한 국제학술심포지엄을 마련했다.

유럽과 미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아시아 특유의 역사와 사회, 문화적 현실에 기반한 팝아트가 한·중·일 삼국에서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를 살펴본 자리다. 박정하 성균관대 교수, 윤진섭 호남대 교수, 황두 독립큐레이터, 황주안 항저우미술대학 교수, 타테하타 아키라 국립국제미술관장, 사와라기 노이 타마미술대학 교수 등이 각국의 팝아트 전개에 대한 주제를 발표했다..

김동유, Marylin Monroe(Park Chung Hee), 1999
대중소비사회가 피운 코리안 팝

거대한 그레이스 켈리의 초상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엔 무수히 많은 배우 클라크 게이블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한때 연인이었던 그들을 초상화 속 초상화로 연결한 김동유 작가는 체 게바라의 초상을 수천 개의 피델 카스트로의 얼굴로,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얼굴은 엘리자베스 여왕의 작은 얼굴들로 완성해냈다.

국내의 대표적인 팝 아티스트인 김동유는 홍경택, 이동기와 함께 한국 미술계에 팝의 붐을 일으킨 사람이다. 이들 작품이 해외 옥션에서 거래되면서 한국에서의 팝아트는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그 조짐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 팝아트의 시초로 여겨지는 1967년 <청년작가연립전> 이후, 70년대 '하이퍼 리얼리즘' 붐에 기대어 시시콜콜한 일상적 사물들, 곧 팝적인 소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코카콜라 병을 극사실 기법으로 묘사한 고영훈이 대표적이었지만, 이는 단순한 소재에 머물러 팝아트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대중이 소비의 주체로 떠오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단초가 되고 있다.

왕 광이, VISA, 1994
'미술은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 하에 작업한 민중미술 그룹, '현실과 발언'의 초창기 멤버들-민정기, 주재환, 오윤-의 일부 작품에서 그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의도적으로 상스럽고 키치적인 표현은 고상한 취향의 모더니즘 미술과 정면 대응하는 동시에 대중 속으로의 침투를 꾀했다.

동서를 막론하고 팝은 대중소비사회에서 발아한다는 점에서 보면, 60년대보다는 70년대에, 그보다는 80년대와 90년대에 팝아트 발전의 기반이 잘 닦였다. 90년대 중반,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만 달러를 넘어섰고 본격적인 대중소비사회에 진입하게 됐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 자라난 세대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며, 대중가요부터 패션, 컴퓨터 산업, 정치, 예술계 등 구석구석에 영향력을 미쳤다.

당시부터 지금까지 팝아트를 고수하는 이들 중엔 '아토마우스'로 유명한 이동기와 자본주의 시대가 잉태한 물신주의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김준이 있다.

2000년대 이후 한국의 팝아트는 20~30대의 젊은 작가들이 주도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의 현실에 상상력을 더해낸 '순응적 팝'을 하는 작가들이 있는가 하면, 이 같은 현상을 비판적이고 풍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저항적 팝'을 하는 작가들이 있다.

무라카미 타카시, Cosmos, 1998
정치적 팝아트의 탄생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와 구색이 맞는 장르가 팝이지만, 그 어떤 것과도 무리 없이 어우러진다는 강점이 아시아 미술계 '장기집권'의 비결이기도 하다. 구소련이나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정치와 결합한 정치적 팝아트(Political Pop Art)는 1980년대 초부터 90년대까지 나타나고 성장했다.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을 발휘한 정치적 팝아트 작가는 왕 광이, 위 요우한, 리 샨, 리오 따홍 등 문화대혁명을 비롯해 개혁과 개방을 경험한 세대다. 그들은 마오쩌둥이나 문화대혁명 당시의 포스터나 건축물 등 정치적 의미가 담긴 이미지를 사용한다. 팝 아트의 틀로 중국의 정치를 들여다보는 특징에 주목한 평론가 리시엔팅은 그들의 작업에 '정치적 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990년대 이후 개혁 개방과 경제발전에 국가가 전력을 쏟으면서 대중적 소비 욕구도 터질 듯 부풀었다. 그러나 급격하게 변하는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극심한 혼란에 휩싸였다.

전통적인 가치의 전복, 관계의 박탈, 정신적 방황을 동반했다. 쩡 판즈의 <가면> 시리즈는 이런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쩡 하오는 물질의 풍요와는 반대로 삭막해진 인간관계를 포착했다. 90년대 이후에는 혼란기에서 발생하는 문제점과 고속 경제성장 중에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들을 포착한 크리티컬 팝이 대두되었다.

나라 요시토모, My Drawing Room 2008
30여 년간 이어진 중국 현대미술에서 사회의 변화와 긴밀하게 호흡해온 팝아트는 이제 좀 더 다원적인 관점과 다양한 형식으로 중국 사회의 문제를 담아내고 있다.

네오팝 이후 마이크로팝

일본의 팝아트는 1960년 전후로 조짐이 포착되지만 본격화한 것은 1990년대 이후 네오팝의 등장이다. 1960년대 출생 작가들을 중심으로 한 네오팝은 기존의 틀과 특정 장르의 속박에서 벗어나 여러 장르의 교배로 탄생했다.

문화적으로 록음악을 비롯해 SF영화, 프라모델,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의 수혜를 받고 자란 이들은 1980년대 후반의 일본의 고도 경제성장까지 경험하면서 응축된 에너지를 펼쳐놓았다. 네오팝과 오타쿠 문화는 긴밀한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네오팝 아티스트는 나카하라 코다이(中原浩大, 1961), 무라카미 타카시(村上隆, 1962), 야노베 켄지(ヤノベケンジ, 1965) 등이다. 특히 무라카미 타카시는 90년대 중반 이후, 일본을 대표하는 동시에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작가다. 일본 전통 미술의 평면적 표현을 세련된 애니메이션적 도안과 색채로 치환하는데, 그 테크닉과 센스는 탁월하다.

네오팝 이후 1970년대 출생 작가들을 중심으로 모습을 드러낸 마이크로 팝. 이것은 제도적 윤리나 이데올로기에 기대지 않고 독자적인 삶의 방향과 미학을 추구한다. 이미 잊힌 공간이나 일상적 사물에 주목한 이들은 그들과의 낯설고 새로운 관계성을 바탕으로 기존과는 다른 소통을 시도한다. 주류가 아닌 비주류 문화가 뿜어내는 창조력과 새로운 의식의 발현이다.

미술평론가 윤진섭 호남대 교수는 "팝은 보는 각도에 따라 얼마든지 그 외연을 넓힐 수 있는 다소 모호한 개념"이라고 말한다. 그 유연성은 당초 이전의 미술사조가 가지지 못한 대중과의 강력한 친화력으로 치환되기도 한다.

그러나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블로그와 포털사이트 카페, 유튜브,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미디어의 확산, 그리고 스마트폰의 대중화를 통해 예술은 점차 생활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윤 교수의 지적대로, "가공할 기술혁명의 시대를 맞이해 팝은 개념은 물론 범위에 대한 도전을 받고 있다." 21세기 팝아트는 어떤 모습을 가질 것인가, 유심히 살펴볼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