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씨어터 창, 4개 단편 모은 선보여 눈길

오늘날 현대무용이 발레나 한국무용보다 더 대중적이지 못한 것은 대개 난해하고 추상적인 주제와 움직임에서 비롯된다.

특히 대중 관객이 공감하지 못하는 비현실적이고 철학적인 주제로 안무를 한 작품은 갈수록 도태되고 있다. 그래서 최근 현대무용은 이런 관행에서 벗어나 사회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관객에게 화두를 던지는 '공감형'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그중 환경 문제는 요즘 무용계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제 중 하나다. 현실 문제에 대해 가장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를 해온 댄스씨어터 창의 김남진 안무가는 아예 <환경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공연을 선보여 이목을 끌었다.

주제를 직접적으로 지목하는 제목인 <환경 프로젝트>는 네 개의 단편을 한데 모은 기획 공연이다. <미친 백조의 호수 I, II>, <>, <> 등 평단과 관객의 고른 호평을 얻은 이 작품들은 이번에 한국공연예술센터의 선정으로 일주일간 관객과 만났다.

제목만으로는 환경 문제와 거리가 있는 듯하지만, 실제 삶의 단면들을 춤과 극적 설정으로 예술로 승화시키는 김남진 안무가 특유의 연출이 돋보인다.

두통
대개의 춤 공연들이 쓰레기나 자연 훼손 등 직접적으로 환경 문제를 언급함으로써 계도적인 태도를 취해왔다면, 이번 <환경 프로젝트>의 작품들은 좀 더 현실적이되 특정한 메시지를 주장하지는 않는다.

환경 문제를 소재로 한 공연들이 종종 공익적인 성격의 캠페인이 되어버리는 반면, 이 작품은 같은 주제를 다루면서도 예술적인 목적을 잊지 않는다. 기존의 작품을 패러디하거나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여러 가지 기묘한 설정들이 이를 입증한다.

2009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와 2010년 피지컬씨어터 페스티벌을 통해서 소개된 바 있는 <미친 백조의 호수 I, II>는 이런 점을 잘 보여준다. 클래식 발레의 대표작인 <백조의 호수>는 여기서 인간의 안일한 사고로 인해 점차 몰락해가는 자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매개가 된다.

김남진은 <백조의 호수>의 변주와 함께, 환경 문제가 어느 타인이 아닌 바로 나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김남진이 맡은 부분에서 키워드 아이템은 백조가 아닌 오리다. 공연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것은 처연한 백조의 몸짓이 아니라 바닥에 드러누운 김남진의 '오리발'이다. 이후 그는 죽은 오리를 머리에 쓰기도 하고 수십 개의 닭발을 입을 쑤셔넣기도 하면서 '미친 백조'의 몸부림을 이어간다.

Passivity
미친 백조는 "원더풀!", "뷰티풀!"을 외치지만 별안간 공중에서 쏟아진 검은 기름에 범벅이 된 백조의 모습은 전혀 '원더풀'하거나 '뷰티풀'하지 않다. 마치 자연을 오염시키고 있는 인간들의 모습을 반어적으로 빗대고 있는 듯하다. 이에 김채현 춤평론가는 "이 작품은 <백조의 호수> 음악과 조류 소재를 착용하고 생태계 위기를 환기하면서 세상을 더욱 뒤틀었다"고 평했다.

장애인 행위예술가 강성국이 맡은 부분에서도 이 같은 메시지는 그대로 이어진다. 검은 기름에 범벅이 된 강성국의 처절한 몸부림은 자연의 모습이며 동시에 언제가 처하게 될 인간의 모습을 반영한다. 이처럼 김남진은 이 작품에서 결국 인간은 따로 존재하는 것 같지만 여러 가지 사회적 이슈와 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증명한다.

한편 지난해 초연 후 이번에 다시 선보인 <>은 작년 1월 아이티에서 발생한 지진을 모티프로, 산업 발전이나 과학기술 등을 통해 자연을 정복하고 지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자연의 힘 앞에서 무력한 인간의 나약함을 보여준다.

아이티 대지진은 분명 자연재해지만 인재(人災)로 보는 해석도 있다. 인류가 계속해서 쌓아올리고 있는 대규모의 건물들이 지표면에 엄청난 압력을 가하고 있고 이것이 지각 판에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다.

또 여기에는 지표면 아래에 있는 물이나 기름 등의 자원을 지속적으로 뽑아올려 사용하는 상황도 대지진 원인의 한 축으로 작용한다. 결국 인류 문명을 위한 활동이 지표면 안팎의 불균형을 초래했다는 견해인 셈이다.

미친 백조의 호수 Ⅰ, Ⅱ
이런 인류의 활동과 그에 따른 결과는 <>에서 뇌를 바닥에 내려놓고 거기에 소변을 보고 짓이기는 퍼포먼스로 표현된다. 이어지는 비명과 고음역대의 음향 효과는 관객의 가슴을 오랫동안 압박시킨다. 이 먹먹하고 답답한 느낌은 관객을 대지진이라는 희대의 고통을 겪게 된 아이티인들의 상황으로 감정이입시킨다.

"도와줘요, 나 여기 있어요." "신이여,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모든 것이 무너져내린 공간에서 인간은 절규하듯 계속해서 도움을 요청하지만 상황은 비관적이다. 결국 남은 것은 끝없는 좌절뿐. 김남진은 관객에게 이 상황에서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이 같은 인간의 본성과 탐욕에 대한 연구는 <>에서 보다 집중적으로 전개된다. 무대 위에는 두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있지만, 주체가 없는 가짜 몸이 하나 더 있다. 세 명의 무용수는 분리 가능한 이 몸을 두고 각자 이전투구 양상을 보인다. 세 사람은 몸의 지배권을 두고 각축을 벌이다 어느 순간 자신의 주체성을 잃고 다른 사람의 의지에 몸을 휘둘리게 된다.

김남진은 이를 통해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양분된 약육강식의 세상을 살고 있는 인간 사회를 은유하며 타인이 입을 피해는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행동하는 이기적인 인간 군상을 그렸다.

'환경파괴의 주범은 누구인가'를 물었던 이번 공연에서 김남진 안무가는 결국 직접적으로 '범인'을 지목하고 있다. 그래서 공연 내내 김남진의 몸은 희생자인 동시에 범인이기도 한 딜레마의 고통으로 몸부림친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