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in the Kitchen (14) 초콜릿영화, 드라마, 소설에서 사랑의 메타포로 무한 변주

겨울은 고민의 계절이다. 크리스마스와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로 넘어가는 3개월 동안 사람들은 한 달에 한 번 꼴로 누구와 어디서 뭘 먹고 뭘 해야 할지 '플랜'을 짜야 한다. 애인이 있는 사람은 있는 사람대로, 없는 사람은 없는 사람대로 고민한다.

싱글에게는 크리스마스보다 밸런타인데이가 더 곤욕스러운 날이다. 그날은 예수도 가난한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니까. 백화점 명절 선물세트 코너는 설 연휴가 지나자마자 초콜릿 바구니로 채워진다.

대학시절, 연인들의 초콜릿 바구니를 보면서 꼭 이렇게 외치는 친구가 있었다.

"저 돈이면 술이 몇 잔이냐?"

달콤 쌉싸름한 맛

영화 '핫 초콜릿' (Hot Chocolate)
'여성이 남성에게 초콜릿을 주며 고백하는 날'. 포털사이트에 검색어를 입력할 때만 해도 '설마'했는데 진짜 이렇게 나온다. 밸런타인데이에 대한 네이버 백과사전 정의다.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을 먹는 풍습은 제과업체가 만들었다. 19세기 영국 제과업체 캐드베리사에서 처음 시작해 1960년 일본 최대 제과업체인 모리나가가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으로 사랑을 고백하자는 광고 캠페인을 하면서 현재와 같은 밸런타인데이가 일본에서 정착되기 시작했다.

이런 문화가 우리나라로 건너와 '여성이 남성에게 초콜릿을 주며 고백하는 날'이 됐다. 요컨대 '밸런타인데이=고백=초콜릿'이란 공식은 기업이 만든 상술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사 모든 걸 이렇게 팍팍하게 분석하다보면 "술이 몇 잔이냐"며 객기 부리다 초콜릿 한 조각 못 얻어먹은 그 시절 친구 꼴을 면하기 어렵다. 중요한 건 사랑의 메신저로 초콜릿만큼 요긴한 음식은 지금 지구상에 없다는 사실이니까.

영화, 드라마, 소설에서 초콜릿은 사랑의 메타포로 정말이지 지겹도록 등장한다. 그러니 관건은 그 뻔한 소재를 얼마나 새롭게 묘사하느냐는 것일 게다. 밸런타인데이 클리셰의 전형을 반복하는 드라마(KBS<꽃보다 남자>)가 있는가 하면, 같은 표현이라도 감각적으로 풀어낸 작품도 있다.

초콜릿을 소재로 한 소설의 대명사처럼 소개되는 작품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멕시코 여성 작가 라우라 에스키벨이 쓴 이 소설은 1월부터 12월까지 매월 한 가지씩 멕시코 요리의 레시피를 소개하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20세기 초반의 멕시코, 집안의 전통 때문에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지 못한 여주인공 티타와 언니의 남편이 된 페드로의 22년에 걸친 사랑의 이야기다. 이 소설에서 초콜릿은 9월의 음식이다. 당시 초콜릿은 마시는 음료인데 물의 양과 끓이는 시간에 따라 달콤하고 쌉싸름한 정도가 달라진다. 작가는 초콜릿 만드는 과정을 이렇게 묘사한다.

'초콜릿을 타는 것도 아주 중요했다. 서툴게 타면 최상급의 초콜릿도 맛없어질 수 있다. 덜 끓이거나 너무 오래 끓이면 걸쭉해지거나 탄 맛이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184페이지, '초콜릿과 주현절 빵')

소설에서 묘사하는 요리는 인생과 사랑에 대한 은유다. 이들은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초콜릿 맛과 닮았다. 작품의 원제목인 'Como agua para chocolate'은 (마시는)초콜릿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주인공 티타의 심리 상태를 표현하고 있다.

무라카미 류의 소설집<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는 32가지 요리를 각각 단편소설로 만든 책이다. 사랑과 추억과 수치심과 환희들이 각각의 요리와 어우러져 있다.

맛을 통해 인간은 상처를 치유하고 살아갈 힘을 얻는다. 여기서 작가는 유럽 남부의 저 아름다운 코트다쥐르 해안에서 맛본 '달콤한 악마' 무스쇼콜라를 매개로 관능적인 러브스토리를 쓴다.

'그녀는 '르 카프 에스테르'의 분위기에 푹 젖어서, 다른 호텔을 찾을 의욕을 잃고 말았다.(…)이제 더 이상 먹을 수 없어,라고 말하면서. 그녀는 무스 쇼콜라를 한 스푼 입에 떠넣고, 믿을 수 없는 맛이에요,라고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입 안에서 녹아서, 다른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 같아. 달콤하다거나 쓰다는 말도 맞지 않아. 그런 걸 넘어선 맛이야."'(46페이지, 단편 '코트다쥐르의 밤은 요염하다')

그녀는 남자와 함께 호텔에 머무는 동안 매일 이 무스 쇼콜라를 먹으며 환희의 밤을 보낸다.

초콜릿이 어때서?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 나누는 관습은 20세기 자본주의 시장이 만들었지만, 초콜릿을 먹으며 사랑을 나누는 것은 꽤 역사가 깊다. 초콜릿이 유럽에 처음 소개된 16세기, 스페인 상류층에서는 실제로 초콜릿을 최음제로 사용하기도 했다.

가학적 성애를 즐긴 것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사드 후작이 칸타리스라는 약물을 넣은 초콜릿으로 젊은 여인들을 유혹, 중독시킨 혐의(?)로 감옥에 갇힌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이런 퇴폐성이 질투라도 난 걸까? 17세기 스페인 시인 프란시스코 데 퀘베도는 초콜릿을 비난하는 글을 남겼다.

'담배 악마와 초콜릿 마귀가 몰려온다. 스페인에 앙심을 품은 마귀 군단이다. 우리 스페인에 소개된 화약과 담배, 초콜릿 컵 그리고 초콜릿 비터(초콜린 원료의 일종)에 잠재된 해악의 위력은 스페인 국왕이 콜럼버스, 코르테스, 알라그레오나 피사로를 시켜 인디언 제국을 괴롭힌 일보다 어쩌면 더 강력했기 때문이다.' (1628년 발표 '끼어드는 사람과 야주인 그리고 수다쟁이' 중에서)

어린 시절 내 어머니는 밸런타인데이가 '그런 날'이란 걸 듣고 와서 그날 저녁 밥상에서 초콜릿 상자를 건넸다. "단 거 안 좋아한다"는 아버지는 자식보다 먼저 초콜릿을 입에 넣었다.

낭만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던 아버지가 한 달 후 쭈뼛쭈뼛 사탕 봉지를 내밀며 화답했을 때, 필자는 제과점 상술을 욕할 일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모차르트 초콜릿상자와 제과점 사탕 봉지는 한 동안 집안에서 굴러다녔다. 김연수의 단편 '뉴욕제과점'의 한 장면을 읽을 때 그 시절 초콜릿 상자와 사탕봉지가 생각난다.

'처음 기회는 박정희가 죽고 난 뒤에 찾아왔다.(…) 내 마음 속에 지금도 남은 불빛들은 모두 그즈음 뉴욕제과점 전성기 시절의 것들이다. 설날에는 선물용 롤케이크와 케이크를, 2월 발렌타인데이에는 초콜릿을, 3월 화이트데이에는 사탕꾸러미를(…) 그 시절, 어머니는 그 대목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84페이지)

사람들은 밸런타인데이가 상업적이라고 욕하면서도 때가 되면 초콜릿과 선물을 산다. 기업의 뻔한 상술이지만, 그 상술이 얼어붙은 지갑을 열게 하고 식어버린 마음을 따스하게 데운다면 굳이 욕할 일 만은 아니다.

밸런타인데이다. 제과점, 편의점의 초콜릿 바구니들이 넘치다 못해 거리까지 점령한다. 졸업 시즌 꽃다발 포장이 업그레이드되는 것만큼 초콜릿 바구니 디자인도 해마다 업그레이드된다.

하루쯤 낭만을 부려도 좋을 날이다. 사랑이 어디, 청춘남녀만의 특권이던가.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