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피아니스트 탄생 200주년 맞아 백건우 등 리사이틀 러시

악마와의 뒷거래 소문이 무성할 정도로 악마적 기교를 뽐내던 바이올린의 비루투오소, 파가니니(1782-1840). 피아노에서 그같이 극한의 경지에 도달하고자 했던 이가 프란츠 리스트(1811~1886)다.

피아니스트들조차 섣불리 연주하기를 꺼리는 고난도 스킬은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던 리스트의 대가적 면모를 짐작하게 한다. 로베르트 슈만은 그의 '초절기교 연습곡'을 두고 오직 리스트만이 이 곡을 제대로 연주할 수 있다는 말을 남겼을 정도다.

교향시와 리사이틀의 기원, 프란츠 리스트

빼어난 기교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알려진 리스트는 알고 보면 기교를 넘어서는 혁신적인 음악인이었다. 현재 독주회라는 의미로 쓰이는 '리사이틀'이란 용어와 형태의 연주회도 그가 처음 열었다.

채 10년이 안 되는 기간 동안 1000여 차례의 연주회를 열었던 그는 대규모 홀에서 독주회를 가진 최초의 피아니스트였다. 폭넓은 레퍼토리를 가졌던 그가 모든 곡의 악보를 암기해 연주하던 모습은 지금의 연주자들에게도 이어지는 전통이 되었다.

피아니스트 지용
4악장의 교향악이 아닌, 하나의 긴 악장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교향시를 창시하기도 했는데, 그가 남긴 교향시는 13곡이나 된다.

지금의 오스트리아인 서부 헝가리에서 태어난 리스트는 어릴 적부터 신동으로 이름이 났다. 겨우 12살의 리스트에게, 파리에서 만난 피아노 제작자는 피아노의 극한 기교를 실험할 수 있는 7옥타브 그랜드 피아노를 선물하기도 했다.

아마추어 음악가였던 아버지에게 처음 피아노를 익혔던 그는 빈으로 이주한 후엔 체르니 연습곡으로 유명한 카를 체르니에게 피아노를 배웠다. 이후 모차르트의 라이벌이자 그 자신 역시 천재적인 작곡가였던 안토니오 살리에리에게 음악 이론과 대위법을 사사했다.

조국을 떠올리며 '헝가리 랩소디'란 제목의 곡을 열아홉 곡 남긴 그는, 스위스와 이탈리아에서 받은 느낌을 담은 '여행가의 앨범', '순례의 해', 장송곡, 소나타 b단조, 파우스트 교향곡, 합창곡 외에 수백 개의 피아노 곡을 남겼다.

콘서트 무대에서 빼어난 연주로 큰 인기를 끌었던 그는 1848년 콘서트 무대를 떠나 남은 생애엔 지휘와 작곡, 교육에 몰두한다. 이 시기에 리스트는 바이마르 궁정악장을 맡기도 했는데, 이때 바그너의 <로엔그린>도 초연하는 등 그와 깊은 교분을 나누게 된다. 겨우 자신과 두 살 차이인 바그너가 자신의 둘째 딸과 결혼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피아니스트 이대욱
리스트 그 자신도 개인적인 인생이 그다지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뛰어난 연주로, 파리의 지성과 예술의 중심이던 살롱에 자주 초대되었던 리스트는 수많은 아티스트들과 교류했다. 더불어 상류층 여성들과도 염문을 뿌리기 일쑤였는데, 그 중 한 명이 여섯 살 연상의 마리 다구 백작부인이다.

4년간 이 여인과 스위스와 이탈리아에서 지내면서 세 명의 자식을 나았는데, 그 중 둘째 딸이 바그너의 부인이 된 코지마이다. 리스트 자신은 결혼과는 거리가 멀었던지, 사실혼 관계였던 마리 다구 백작부인을 뒤로하고 쫓아간 여인과도 결혼이 성사되지 못했다.

결국 결혼을 포기하고 어릴 적 꿈이었던 성직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수사 서품을 받았다. 이후 오라토리오 <그리스도>, <헝가리 대관식 미사>와 같은 대규모 종교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백건우에서 지용까지

지난해와 올해 2년 연속 가장 호화로운 향연을 벌이고 있는 구스타프 말러에 가려졌던 리스트가 탄생 200주년을 맞아 클래식 공연장에 속속 모습을 드러낸다. 건반 위의 구도자 백건우를 비롯해 이대욱, 손열음, 지용 등의 피아니스트가 올해 리사이틀을 기획하고 있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이 대열에 합류할 연주자들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피아니스트 백건우
'앙상블 디토'의 신예 은 지난해 10월, 데뷔 앨범 <리스토마니아(Lisztmania)>를 발표했다. 프란츠 리스트의 광적인 팬을 뜻하는 리스토마니아로 이미 지난해 11월 독주회에서 리스트의 탄생 200주년 축포를 쏘았던 그가 올해 3월 앙코르 공연을 통해 축제의 분위기를 이어갈 예정이다.

베토벤, 메시앙 등 한 작곡가를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백건우는 오는 6월 19일과 2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리스트 곡에 도전한다. 그날의 연주 프로그램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이미 1970년대, 런던 위그모어홀에서 리스트 전곡으로 6주간의 대장정을 달성한 바 있다. 당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백건우가 40년 만에 다시 펼쳐놓는 리스트는 어떤 모습일지 기대를 모은다.

오는 9월에는 금호아트홀에서 리스트의 향연이 펼쳐진다. (한양대학교 교수)이 9월 22일 리스트의 '순례의 해 제1년'과 10월 13일 '소나타 b단조', 11월 17일 '시적이고 종교적인 선율'을 들려준다. 같은 장소에서 은 10월27일 '리스트 에튀드와 쇼팽 에튀드', 11월 24일 '리스트 소나타와 슈만 판타지', 12월 29일 '리스트 편곡 작품'을 통해 리스트를 2011년의 한국에 초대한다.


피아니스트 손열음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