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은미와 할머니들 세대 간 소통 위한 실험

알록달록한 '몸뻬(왜바지, 일바지)'를 입은 무용수들이 나타나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이들이 보여주는 춤은 우아하거나 깊은 의미가 담긴 동작이 아닌, 그냥 '막춤'이다.

잠시 후 빨간 내복을 입고 재등장한 이들은 여전히 관광버스 안의 광경을 연상시키는 막춤 실력을 뽐낸다. 누구를 위하여 이들은 막춤을 추나. 이 춤은 누구를 위한 오마주인가.

막춤에도 미학이 있다

시끌벅적한 음악에 맞춰 몸을 '아무렇게나' 신나게 흔드는 이들의 춤에 이미 그 답이 나와 있다. 신기하게도 지역을 막론하고 비슷한 동작을 보여주는 할머니들의 춤과 닮아 있는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무용수들이 퇴장한 뒤 나오는 영상에서는 논두렁에서, 앞마당에서, 길 위에서 예의 막춤을 추고 있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이어진다.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공연의 장면들이다.

오는 18일부터 사흘 동안 연강홀에서 치러지는 이 공연은 안은미 무용단의 신작이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는 영상 속 할머니들이 직접 무대에 올라 막춤의 진수를 보여준다. 안은미 무용단은 이 할머니들의 춤에서 모티프를 얻어 자신들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한 새로운 막춤의 무대를 보여준다.

'무용'이나 '댄스'와는 거리가 먼 할머니들을 무대로 끌어들인 사람은 역시 현대무용가 안은미다. 그는 자신의 무용단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누비며 할머니들의 춤을 카메라에 담아왔다. 무대 위에서 존재하는 무용도 중요하지만, 20세기 역사를 담고 있는 할머니와 어머니 세대의 몸과 춤을 기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막춤의 미학'에 대한 안은미 식 연구인 이번 공연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무용단의 춤보다 오히려 '춤추는 할머니'들이다.

영상에서 보이는 할머니들의 춤은 역시나 평균적인(?) 관광버스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상반신은 활발하게 움직이지만 허리 이하는 얌전히 수평 운동을 반복한다. 안은미 씨는 이처럼 할머니들의 춤에 팔동작이 많은 이유로 "팔로 노동하는 생활이 많았던 데 원인이 있지 않을까"라고 의견을 밝힌다.

상하체가 따로 노는 사이 발은 땅에서 거의 떨어지지 않는다. 그 결과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할머니들의 춤은 나긋나긋, 건들건들, 쭈뼛쭈뼛하며 다 비슷해 보인다.

뭔가 역동적으로 표현하고 싶지만 그것이 발화되는 순간의 계면쩍음, 민망함 때문에 타협한 몸짓에선 웃음이 절로 난다. 하지만 할머니들은 춤을 추고 나면 어떠냐는 질문에 가슴 속 응어리가 확 풀린다는 의미로 "좋제, 속이 시원해지제"라고 답한다.

세대 간 소통을 위한 매개, 막춤

이번 프로젝트에는 비단 막춤의 재발견이라는 단순한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우리 사회에서 갈수록 고립되어가는 노인 세대와의 소통 의지도 담겨 있다.

안은미 씨는 "이제 노인들의 몸은 그 옛날의 노인들의 몸이 아니다. 그들의 몸의 에너지는 보다시피 왕성하다. 이제 우리 시대의 화두는 이들의 춤과 몸이 젊은 세대와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에 있다"고 말한다.

그는 춤이 그 소통을 위한 효과적인 매개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국에서 춤은 창작이나 관람 할 것 없이 철저히 젊은 세대에 제한돼 이루어진다. 폭넓은 주제와 소재를 자랑하는 현대춤에서도 아직 노인들의 춤이나 몸에 대한 본격적인 고찰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다.

국내에서 노년층의 커뮤니티인 노인정이나 양로원은 노인들을 오히려 다른 세대와 격리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그래서 이번 공연은 그 자체보다 세대 간의 소통에 관한 사회문화적 운동이자 실험의 의미도 있다.

이런 소통 의지는 제목인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에 고스란히 담겼다. '조상님'은 지금은 돌아가신 옛사람을 가리킨다. 지금보다 더 옛날에도 비슷한 춤을 췄을 조상님들과 마찬가지로 화면 속 할머니들 역시 후세인들에게 자신들의 자취를 춤을 통해 남긴다. 이들보다 젊은 관객도 언젠가는 '조상님'이 된다.

이 때문에 이 프로젝트는 태생적으로 세대와 연령을 초월하는 아카이브적 성격을 띠고 있다. 그래서 안 씨는 할머니들을 '살아 있는 문화 뮤지엄'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런 사회적 의미 외에도 예술적 성취도 분명히 있다. 안은미 씨가 찾아낸 접점은 바로 새로운 춤 문화의 창달이다. 춤의 역사는 무대 위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브라질, 스페인, 아르헨티나 등 춤 강국의 춤 문화는 무대가 아닌 일상 생활에서 이루어진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보다 확장시켜 언젠가는 전 세계 할머니들의 춤을 담고, 더 나아가 할아버지, 아저씨, 청소년들의 춤도 담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다.

격동의 20세기를 살아낸 할머니들의 몸짓에서 여전히 뜨거운 생명력과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발견한 이번 프로젝트는 커뮤니티 댄스가 새로운 춤 패러다임으로 주목받는 시기와 맞물려 더욱 주목을 받게 됐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