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발달은 곧, 인간 스스로의 육체적․ 정신적 해방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현대사회의 모든 정보, 심지어 사상까지도 디지털화되고 있는 이 시대는 얼마만큼의 자유와 해방이 보장되고 있을까.

불행히도 인간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움켜줬던 문명의 칼을 스스로에게 겨누고 있다. 모든 것을 데이터화하며 누리는 이기적인 여유로움에 대해 작가는 '자본주의가 낳은 인간의 가장 큰 폭력 중 하나'라고 말한다. 우울증, 불면증과 같은 현대인의 정신적인 질환은 이러한 폭력이 빚어낸 폐해이며 더한 구속을 낳고 있다는 것이다.

서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실제로 해리성 장애라는 정신병을 앓았다. 그는 자신의 고통을 그림으로 형상화하며, 스스로를 위한 치유를 해왔다. 이러한 병의 시각화는 '어떤 '증상' 혹은 '증후'라는 병명적 데이터로 취급 받는 '비형상적 개념들'에 대한 추모와 치유'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우울증, 불면증, 근육통과 같은 현대인들의 질병과 해체, 악몽, 차멀미 등 누구나가 한 번씩은 겪어봤음직한 고통을 반구상의 기법으로 그려냈다. 이처럼 병이나 환각을 소재로 한 작품들은 인간의 이기에 대한 반증이며, 동시에 치유이다.

작품 속에 꿈틀대는 고통은 결코 잡히지 않는 제 몸집을 으스대며 문명의 이기를 비웃는 듯하다. 이번 전시에 출품되는 20여 점의 작품들은 작가가 꿈꾸는 고통으로부터의 진정한 해방이다. 2월 9일부터 2월 25일까지. 갤러리 담. 02)738-2745



이인선 기자 kelly@hk.co.kr